“귀 뒤로 땀 흐르며 숨이 턱턱”…역대급 더위 속 현장 근로자들

2024. 8. 19.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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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16~17일 야외 근로자 노동현장 취재
찌는듯한 폭염속 건설근로자 등 야외작업 고충 토로
땀에 흠뻑 젖는 건 기본…“그래도 마냥 쉴 수는 없어”
기상청 “당분간 무더위·열대야 현상 계속될 전망”
16일 오전 서울 은평구에 있는 한 상가 건물 공사 현장에서 건설 근로자들이 아스팔트 작업에 한창이다. 이용경 기자

[헤럴드경제=이용경·박지영 기자] 전국에 기록적 폭염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야외에서 일하는 현장 근로자들이 느끼는 어려움은 더없이 가중되고 있다. 헤럴드경제는 폭염과 열대야가 한창이던 지난 16일부터 17일 사이 주로 바깥에서 장시간 일하는 근로자들을 만나 고충을 들어봤다. 이들은 더위에 무방비한 환경에 노출된 채 고된 업무를 이어갔다.

16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한 복선전철 공사 현장에서 건설근로자 4명은 폭염 더위로 잠시 작업을 멈추고 공사장 한켠에 마련된 휴게실에서 잠깐의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공간은 1평이 채 되지 않았다. 성인 남성 4명이 앉아 편히 쉬기엔 비좁았지만, 소형 에어컨과 정수기까지 더위를 식힐 최소한의 장비는 갖춰져 있었다. 당시 바깥 온도는 33도를 기록했다.

크레인 작업자 진수환(65·남성) 씨는 “무더위가 계속되니 다른 때보단 확실히 힘든 부분은 있다”면서도 “매시간 10~20분 정도 휴식을 권고하는데, 작업을 하다가 도저히 안되겠다 싶으면 재량껏 곧장 일을 멈추고 휴게실에서 휴식을 취하기 때문에 나름 괜찮다”고 말했다. 또 다른 작업자 김모 씨는 “날이 무더우니 현장에선 아침 조회부터 시작해 저녁에 퇴근할 때까지 안전에 주의하라는 말을 듣는다”며 “일할 때마다 귀 뒤로 땀이 흐르고 숨이 턱턱 막힐 때가 많아 힘들지만, 여기는 그나마 쉴 공간이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16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대형 공사 현장에서 건설 근로자들이 크레인 작업을 하고 있다(사진 왼쪽). 이들은 이따금씩 현장에 마련된 휴게실(사진 오른쪽)에서 쉬었다. 이용경 기자

이 같은 대규모 공사 현장과는 달리 소규모 건물을 짓는 곳은 상대적으로 폭염에 취약했다. 같은 날 오전 서울 은평구에 있는 한 상가 건물 공사 현장엔 건설근로자 대여섯 명이 아스팔트 작업을 하고 있었다. 현장은 한증막처럼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지만, 마땅히 휴식을 취한 공간도 없었다. 작업자들은 이따금씩 건물 앞 도로에 걸터앉아 휴식을 취했다. 이날 만난 현장 소장은 “요즘엔 폭염 더위가 너무 심해 이른 아침부터 모여 작업을 시작한다”며 “햇빛이 너무 뜨거울 때면 아예 작업을 중지하거나 일을 빨리 마무리하고 조기 퇴근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스콘 작업을 하던 이모(58) 씨는 “아스콘이 공장에서 나올 땐 165도 정도로 나오고, 여기선 150도 정도는 나와야 (작업이)된다”며 “태양열은 푹푹 찌지 그러니까 막 구토하고 쓰러지기도 하는데, 연세드신 분들은 이런 여름날에 한 달 정도 일을 안 나온다. 아스팔트는 젊은 사람들도 힘들어 하는 작업이라 중간중간 10~20분씩 쉬는데, 그렇지 않으면 완전 거품 물어버린다”고 말했다.

16일 오전 서울 은평구에 있는 한 상가 건물 공사 현장에서 건설 근로자들이 아스팔트 작업에 한창이다. 이용경 기자

16일 오후 헤럴드경제가 찾은 또 다른 현장은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에 있는 철공단지다. 이곳에선 골목 초입부터 뜨거운 열기와 매캐한 화학 냄새가 진동했다. 한 철공소에서 만난 60대 작업자 A씨(여성)는 땀을 흘리며 두꺼운 강판을 3000도가 넘는 불꽃으로 절단하고 있었다. 작업장 곳곳에는 선풍기가 설치돼 있었지만, 바깥 날씨보다 최소 3배는 뜨거웠다. 하지만 A씨는 “원래 실내 온도가 뜨거워 평소보다 덥다는 생각은 안 든다”며 “바깥에 나가면 확실히 평소보다 덥긴 한데, 일할 땐 선풍기도 있어서 할만 하다”고 덤덤히 말했다.

16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에 있는 한 철공소에서 60대 작업자가 강판 절단 작업을 하고 있다. 이용경 기자

야외 근로자들의 어려움은 직역별로 다양했다. 약 80세대가 입주해 있는 오피스텔 환경미화원인 염모(73) 씨는 “원래 근무시간은 오전 9시부터 12시인데, 9시만 돼도 너무 덥고 숨이 턱턱 막혀 7시부터 10시까지 일하기로 했다”며 “분리수거, 복도 청소 등을 하다 보면 티셔츠 1개가 흠뻑 젖는 것은 예사”라고 말했다. 이어 “겨울보다 여름이 더 힘들다. 쉴 수 있는 곳이 1층 야외 주차장 밖에 없기 때문”이라며 “경비실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라서 지하에 있는 방재실에 플라스틱 의자 하나 두고 쉰다”고 덧붙였다.

오피스텔의 경우 일반 아파트 경비실과 달리 관리사무소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곳이 많아 에어컨을 쐴 수 없는 환경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환경미화원이 쉴 곳이 따로 마련되지 않은 경우가 있어 앉아서 쉴 곳도 마땅치 않은 실정이다.

한 오피스텔 앞에 100L짜리 분리수거된 쓰레기봉투 6포대가 쌓여있다. 이는 오피스텔 환경미화원의 업무 중 하나다. 박지영 기자.

급식 조리사들의 환경은 특히나 더위에 취약했다. 급식실 근로자이기도 한 정경숙 교육공무직본부 부본부장은 “여름에는 말로 표현이 안 된다. 가만히 서있어도 땀이 줄줄 나는데 급식실에선 모든 기구를 뜨거운 물에다 삶으니 기본 40도 이상”이라며 “아무리 에어컨을 켜도 열기를 감당 못한다. 40도 이상 온도에서 8시간을 쉬는 시간 거의 없이 일하는 셈인데, 어지럼증이나 홍조는 기본이고 위생복은 2~3벌 정도는 갈아입어야 할 정도로 땀이 몸에 많이 흐른다”고 설명했다.

급식실 근로자는 여름엔 기본 40도 이상 근무환경에서 근무한다. [독자 제공]

벼농사를 하는 박모(56) 씨도 더위 속 작업에 대한 고충을 토로했다. 박씨는 “7, 8월 여름에는 밭일을 거의 못한다. 해뜨기 전 4시에서 8시, 9시까지 일하고 이후에는 4시부터 2시간 정도 한다. 안 그러면 쓰러진다”고 말했다. 그는 “완전 한낮에는 밖에 나가면 체감온도 40도 정도라 5분, 10분도 바깥에 있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음식 배달이나 택배 기사들은 정해진 배송 수량을 맞추기 위해 무더위를 감내하고 있었다. 배달 라이더 B(43)씨는 “지난번 오토바이를 타다 넘어져서 아스팔트에 쓸린 적이 있다. 아스팔트 온도가 50도가 넘는 탓에 피부가 아스팔트에 붙어 떨어져 나갔다”며 “여름에 특히 힘들지만, 정해놓은 목표치까지 벌려면 쉬지 않고 일해야 한다”고 말했다.

택배 운송 기사 C(37)씨도 “하루에 많으면 400건까지도 배송한다. 티셔츠가 다 젖는 건 기본이고 갈아입을 시간도 없다”며 “특히 빌라촌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경우도 허다해 계단 오르내리다 숨이 막힐 때도 있지만, 쉴 시간은 따로 없다. 쉬면 배달량을 다 못채우기 때문”이라고 했다. 야쿠르트를 배달하는 D(59)씨는 “배달해야 하는 곳은 많은데, 날이 너무 더워 힘들다”고 토로했다.

16일 오후 영등포 일대에서 만난 야쿠르트 아줌마. 이용경 기자

공무원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화염과 사투하는 소방 공무원들도 여름철 폭염에 속수무책이다. 김길중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부위원장(소방)은 “최근 순직한 소방관도 더위에 근무하다 순직한 것이라 생각한다”며 “방화복에 공기호흡기 장비까지 하면 방화복만 입어도 기본 40도는 넘고, 활동하면 43~45도 정도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부위원장은 “방화복을 입고 기본 2~3시간은 일하니까 땀 때문에 벗기도 힘들다”며 “소방공무원은 6만8000명 중에 행정업무 인원을 빼면 4만명이 전국민을 상대로 현장에서 일하는 건데, 교대 인원도 없는 상황이라 소방관 충원이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질병관리청 ‘2024년 온열질환 응급실감시체계 신고현황’에 따르면 올해 5월 20일부터 이달 18일 오후 4시까지 발생한 온열질환자 수는 총 2741명(남성 2126명·여성 615명)이고, 이 중 추정사망자는 24명이다. 지난해 온열질환자 수인 2419명보다 300여명 높은 수치다. 특히 온열질환자의 31.9%(874명)는 연령이 65세 이상인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55.1%(1509명)가 열탈진인 것으로 조사됐다.

한편 지난 18일을 기준으로 서울에선 밤에도 기온이 25도 이상 유지되는 열대야가 28일째 이어지며 역대 최장 기록을 경신했다. 부산과 제주도도 각각 24일, 34일째 열대야가 이어졌다. 우진규 기상청 통보관은 “20일 강수가 시작하기 전까지는 지속해 기온이 상승하고 습한 수증기 유입으로 인해 무더위와 열대야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yklee@heraldcorp.com

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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