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스 예우, 책임은 내가 진다"…곽빈의 이례적 투수교체 거부, 토종에이스 향한 국민타자의 의심은 없다

수원 = 박승환 기자 2024. 8. 19.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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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12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진행된 '2024 신한 SOL 뱅크 KBO 리그' LG-두산의 경기. 두산 선발 곽빈이 역투를 펼치고 있다./마이데일리

[마이데일리 = 수원 박승환 기자] "에이스에 대한 예우는 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두산 베어스 곽빈은 지난 17일 수원 KT위즈파크에서 열린 2024 신한은행 SOL Bank KBO리그 KT 위즈와 팀 간 시즌 13차전 원정 맞대결에 선발 등판해 7⅔이닝 동안 투구수 110구, 5피안타 2볼넷 4탈삼진 2실점(2자책)으로 역투하며 시즌 11승째를 손에 넣었다.

17일 경기 전까지 두 경기 연속 조기강판을 당하는 등 아쉬운 투구를 거듭했던 곽빈은 1회 멜 로하스 주니어-김민혁-강백호로 이어지는 강력한 상위 타선을 모두 땅볼로 요리하며 경기를 출발했다. 그리고 2회 시작과 동시에 선두타자 오재일에게 안타를 맞았으나, 황재균-김상수-배정대로 이어지는 타자들을 완벽하게 요리했고, 3회 또한 조대현을 삼진 처리한 뒤 심우준과 로하스를 모두 뜬공으로 돌려세우며 이렇다 할 위기 없이 KT 타선을 요리해 나갔다.

첫 위기도 최소 실점으로 잘 넘겼다. 곽빈은 4회말 선두타자 김민혁에게 볼넷, 후속타자 강백호에게 안타를 허용하면서 무사 1, 3루의 위기에 몰렸다. 여기서 오재일을 초구 128km 체인지업으로 병살 처리한 뒤 황재균을 좌익수 뜬공으로 묶어내며 단 1실점으로 이닝을 매듭지었다. 그리고 5회 김상수를 1루수 땅볼, 배정대를 삼진으로 잡아낸 후 조대현에게 안타를 맞았으나, 번트를 통해 내야 안타를 노린 심우준을 비디오판독 끝에 1루에서 아웃 처리하며 승리 요건을 손에 넣었다.

곽빈은 여유 있는 투구수를 바탕으로 6회에도 모습을 드러냈고, 이렇다 할 위기 없이 KT 타선을 봉쇄하며 퀄리티스타트(6이닝 3자책 이하)를 완성, 7회에도 모습을 드러내 황재균-김상수-배정대로 이어지는 하위 타선을 막아냈다. 7회 투구 종료 시점에서 곽빈의 투구수는 92구. 교체를 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투구수. 하지만 곽빈은 8회에도 마운드에 올랐고, 첫 타자 천성호를 우익수 뜬공으로 잡아내며 이닝을 시작했다. 문제는 이후였다. 대타 문상철과 5구 승부 끝에 볼넷을 내준 것.

2024년 5월 18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2024 신한 SOL Bank KBO리그' 롯데 자이언츠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가 열렸다. 두산 선발투수 곽빈이 사인을 주고 받고 있다./마이데일리
2024년 8월 6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진행된 ‘2024 신한 SOL Bank KBO리그’ LG-두산의 경기. 두산 선발 곽빈이 힘찬 역투를 펼치고 있다./마이데일리

곽빈의 투구수는 정확히 100구가 됐고, 두산 벤치는 곽빈을 교체하기 위해 박정배 코치를 마운드로 올려보냈다. 그런데 이때 곽빈이 고개를 저으며 박정태 코치의 교체를 거부했다. 이에 박정배 코치의 시선은 3루 더그아웃을 향했고, 이승엽 감독 또한 '토종에이스'에게 이닝을 매듭지을 수 있는 기회를 안겼다. 100구를 넘어 투구를 이어가게 된 곽빈은 로하스와 4구 승부 끝에 121km 커브로 삼진 처리하며 두 번째 아웃카운트를 쌓았고, 도미넌트스타트(8이닝 1자책 이하)까지 아웃카운트 단 1개만 남겨두게 됐다.

그러나 힘이 떨어진 상황에서 이닝을 매듭짓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곽빈은 김민혁과 승부에서 폭투를 기록하면서 스코어링 포지션에 주자를 내보내게 됐고, 결국 김민혁에게 적시타를 맞으면서 3-2으로 턱 밑까지 추격을 허용하면서 이병헌에게 마운드를 넘기고 교체됐다. 그리고 이병헌이 실점 없이 이닝을 매듭지은 뒤 9회 '마무리' 김택연이 마운드에 올라 1사 만루의 위기를 'KK'로 매듭지으면서 곽빈의 시즌 11승째가 완성됐다.

이승엽 감독은 18일 경기에 앞서 곽빈의 투구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사령탑은 "삼세번 아닌가"라고 말 문을 열며 "며칠 전에 봤을 때 '잘 던지겠다. 믿어달라'고 하더라. 한두 번 못 던진다고 해서 (곽)빈이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본인이 '믿음을 달라'는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있다. 사실 바꾸려고 했지만, 본인이 던지려고 했을 때는 에이스에 대한 예우는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2024년 8월 6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진행된 ‘2024 신한 SOL Bank KBO리그’ LG-두산의 경기. 두산 선발 곽빈이 힘찬 역투를 선보이고 있다./마이데일리
2024년 8월14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진행된 ‘2024 신한 SOL Bank KBO리그’ 롯데-두산의 경기. 경기 전 두산 이승엽 감독이 취재진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마이데일리

자칫 경기가 뒤집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이승엽 감독은 곽빈을 믿었다. 그는 "분명 90구가 넘어가고 100구에 가까워지면서 힘이 떨어진 것은 사실이다. 바꿔줄 타이밍이었다. 만약 거기서 뒤집어졌다면 책임은 100% 내가 지는 것이다. 살얼음판에 갖다 놓은 것처럼 조심스럽게 지켜봤는데, 에이스에 대한 자존심을 지켜주고 싶었다. 결과적으로 실점을 하나 더 했지만, 뒤에 (이)병헌이와 (김)택연이가 잘 막아줬다. 만약 패했다면 엄청난 대미지를 입었겠지만, 이겨서 에이스의 자존심도 지키고 승리도 할 수 있었다"고 웃었다.

마운드에서 교체를 거부할 정도의 강한 책임감과 승부욕을 보인 곽빈의 모습은 어떻게 보였을까. 사령탑은 "나는 좋은 것 같다. 곽빈이 실패를 두 번이나 한 뒤에 굉장히 준비를 많이 했다. 어제(17일)는 진짜 마음을 먹고 나왔더라. 7회가 끝났을 때 손가락에 살짝의 물집이 생기는 시점이었는데, 본인이 던지겠다고 하더라. 이미 마음이 (마운드에) 들어가 있었다"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결국 곽빈이 리드를 유지한 채 마운드를 내려갔고, 1점차의 리드를 지켜내고 승리했던 것이 이러한 비하인드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이승엽 감독은 스프링캠프 때부터 곽빈이 올해는 최고의 시즌을 보낼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만큼 곽빈이 어떻게 2024시즌을 준비했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곽빈은 올해 외국인 투수들로 인해 마운드 운용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도 로테이션을 거르지 않고 24경기에 등판해 134이닝을 소화하며 11승 8패 평균자책점 4.10을 기록 중이다. 지난해보다 평균자책점이 눈에 띄게 상승했지만, 지금의 흐름이라면 커리어 최다승까지 노려볼 수 있을 기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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