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비쌌나…정점 지난 판교 부동산[위기의 판교③]

2024. 8. 19.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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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교 직장인들이 거리를 걷고 있다. 사진=서범세 기자


“장남 김판교. 모든 사랑을 독차지하며 유산상속까지 약속받음. 엄마가 각종 철도, 교통, 기업 선물 보따리 철철 넘치게 줌. 비만이 걱정됨.”

한 부동산 커뮤니티에 올라온 ‘엄마가 사랑하는 신도시 가계도’의 일부 내용이다. 위례신사선 착공이 늦어진 위례신도시 주민이 푸념하듯 올린 우스개지만 수도권 신도시 중 대장 격인 판교의 입지를 잘 보여준다.

과천, 위례 등과 함께 경기도 최고 입지를 다투는 판교는 신분당선·GTX(수도권광역급행철도)-A 노선을 갖춘 교통편의, 전국 최고 매출의 현대백화점, 무엇보다 7만 개 상근 일자리를 품은 판교테크노밸리로 차별화하고 있다. 특히 베드타운이 많은 수도권에선 ‘자족형 도시’라는 강점이 크게 작용한다.

이 같은 강점을 바탕으로 판교 부동산은 서울의 웬만한 자치구를 능가하는 시세를 유지했다. 강남마저 구도심이 돼버린 서울과 달리 깔끔한 택지구획과 신규 입점 상가, 주변 녹지 등으로 인해 쾌적한 생활을 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네·카·라(네이버·카카오·라인)’를 필두로 넥슨, 엔씨로 대표되는 입주 기업들의 이름값 또한 중심지의 오피스, 상가 가격을 높게 형성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일각에선 “임대인들이 폭리를 취한다”는 볼멘소리도 나왔지만 넘치는 수요 덕에 방어선은 타 지역에 비해 탄탄한 편이었다.

‘높은 산’이 드디어 골짜기에 접어든 것일까. IT(정보기술) 업황이 악화하는 가운데 서울 핵심지를 달군 온기가 다다르며 반등을 기대하던 판교 부동산의 상승 동력이 기대보단 약한 모습이다.


 상권 중심도 하락 못 피해


판교신도시에서 교통, 업무, 생활인프라가 집중된 곳은 일명 ‘동판교’라 불리는 성남시 분당구 백현동과 삼평동 일대다. IT 관계자와 인근 부동산에 따르면 이곳 상권은 “되는 곳만 되는” 작은 규모의 ‘항아리상권’ 형태를 띠고 있다. 유동인구가 판교역 초역세권 알파돔시티 입주 오피스와 상가를 중심으로 북측에 위치한 먹자거리와 아브뉴프랑 등 주상복합 저층 몰 등지에만 집중돼 있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는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했다. 현대백화점이 위치한 알파돔시티 남쪽은 백화점에 수요가 집중되는 일명 ‘빨대효과’가 큰 데다 상가가 늦게 입주해 상권이 빠르게 형성되기 어려운 형편이다. 유튜브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지하상가 공실로 악명을 떨친 ‘힐스테이트 판교역’이 바로 현대백화점 맞은편에 있다.

판교테크노밸리 입주 기업들이 임직원 복지 차원에서 구내식당에 힘을 준 것도 상권의 확장을 막는 요인이었다. 게임업체 네오위즈, 넥슨은 식사를 무료 제공하며 다른 상당수 IT 대기업도 직원들이 저가에 구내식당을 이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이 때문에 2017년에는 지역 상인들이 현수막을 거는 등 항의성 시위에 나서기도 했다. 때마침 국내를 강타한 코로나19로 인해 문을 닫는 가게들도 생겼다.

지난해 엔데믹으로 사무실 출근이 재개돼 사정은 나아졌다. 언택트 기간 동안 전화위복으로 게임사 실적이 좋아지면서 회식도 잦았다는 설명이다. 한 IT업계 관계자는 “직원들이 대부분 구내식당을 이용하긴 하지만 지난해만 해도 점심이나 저녁 때 회식을 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올해 들어 분위기는 다시 달라졌다. 이 관계자는 “최근에는 실적도 안 좋고 입주기업들의 인력 감축도 이어지면서 함께 회식을 하는 분위기가 아니다”며 “성과급도 줄여서 다들 돈을 아끼는 추세”라고 덧붙였다.

상권데이터 플랫폼 오픈업에 따르면 먹자거리가 위치한 삼평동 상권의 매출은 하락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12월 약 435억9000만원을 기록한 추정 매출이 올해 상반기 내내 400억원대를 회복하지 못했다. 6월 매출은 389억7000만원으로 전월(396억7000만원) 대비 8.71% 줄었다.

최근 입지가 좋은 구분상가에도 몇몇 공실이 발생한 상태다. 재료 원가가 높아진 데다 객단가가 한정된 점심 장사만으로는 임대료를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판교 직장인들은 오피스 인근 밥값이 비싸다고 입을 모은다. ‘판교’라는 이름값으로 높게는 3.3㎡당 8000만~1억원에 달하던 상가 분양가의 영향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 2분기 판교 상권을 포함한 분당역세권 집합상가 임대료는 ㎡당 4만9500원으로 서울 평균(4만7700원)보다 높다. 인근 부동산 관계자는 “코로나19 이후 임대인들의 눈높이가 낮아졌다”며 “상가 문의가 많아 공실은 곧 해소될 것”이라고 밝혔다.

오피스 시장은 이미 지난해부터 움직이기 시작했다. 판교에는 개인이 거래할 만한 중소형 오피스·상업시설이 적지만 지난해부터 거래량과 투자규모는 확연히 줄었다.

전경진 밸류맵 시장분석팀장은 “임대차 시세는 매매와 달리 계약기간 동안 변동이 없어 시장 수요가 반영되기까지 시차가 발생한다”며 “유동인구 감소 효과는 점차적으로 반영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호가 오르자 아파트 반등 주춤

판교 푸르지오 그랑블 아파트 전경. 사진=서범세 기자




아파트 시장은 상황이 낫다. 오피스, 상가와 달리 판교 아파트 수요는 따로 있다는 것이다. 업계에선 일부 임원들을 제외한 이곳 직장인들 다수가 일명 ‘구성남’이나 더 남쪽인 용인, 광주 등에 거주한다고 보고 있다. “억대 연봉을 받던 개발자도 판교 집값을 감당할 수가 없다”는 설명이다.

대신 강남 접근성이 좋고 생활 인프라가 갖춰진 데다 분당, 용인 등에 배후수요도 있어 대기자는 매우 많은 편이다. 최근 수도권 핵심지 아파트에 매수세가 집중되면서 고가의 아파트가 밀집된 백현동, 삼평동 매매 거래량도 늘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8월 14일 집계기준)에 따르면 아파트 매매거래는 지난해 7월 40건에서 올해 같은 기간 77건으로 늘었다. 시세도 반등했다. 판교테크노밸리 도보권에 위치한 대장 아파트 ‘판교 푸르지오 그랑블’ 전용면적 103㎡ 타입은 최근 잠잠하던 거래가 늘다가 지난 7월 전고점인 27억3000만원을 돌파한 27억5000만원을 기록했다.

그러나 8월 들어 거래는 다소 뜸해진 상태다. 호가가 너무 올라서다. 집주인들은 최근 상승세를 바탕으로 직전에 실거래된 것보다 높은 가격을 부르고 있다. 이에 따라 매수세가 주춤하고 있다.

판교 소재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문의는 있는 편이나 호가가 높다 보니 가격만 듣고 쉽게 매수하지 못하는 분위기”라며 “휴가철이 지나고 호가가 떨어지면 거래가 조금 성사되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민보름 기자 br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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