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출판의 도전… K-문학 ‘세계로 가는 길’을 펼치다[Leadership]
가치있는 책을 세상으로… ‘우리 시 소개’ 역점 사업
시인 선정해 직접 번역 맡기고
일정한 색채·질 보장 위해 최선
출판계 사람들은 최근 10년을 돌아보며 출판계에 신생 출판사 창업의 적기로 여겨지던 두 번의 시기가 있었다고 입을 모은다. 먼저 개정 도서정가제가 도입된 2014∼2015년이다. 출판업계의 이익률이 개선될 수 있다는 기대 속에 ‘읻다’를 비롯한 수많은 출판사가 간판을 내걸고 새로운 실험의 시작을 알렸다. 두 번째 시기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독서 인구가 늘어나고 있음을 체감했던 2020∼2021년이다. 이때에는 ‘클레이하우스’를 비롯한 더 많은 소규모 출판사들이 닻을 올렸다.
그러나 매해 발표되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연간 국민 독서실태 조사에 따르면 연간 독서율 하락은 그칠 줄을 모른다. 감소하는 독서인구와 나날이 상승하는 인건비와 제작비 사이에서 소규모 출판사와 동네 책방은 물론 대형 서점과 출판사조차도 불황에 허덕이고 있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 한국을 넘어 미개척된 해외 시장의 독자들을 향해 K-문학을 적극적으로 수출하며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는 두 출판사의 대표들을 최근 만났다. K-시의 최전선에서 김혜순 시인의 ‘죽음의 자서전’(문학실험실)을 독일어로 번역했던 출판사 읻다·에이전시 ‘나선’의 김현우(41) 대표와 ‘어서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를 비롯해 3년간 80건 이상의 해외 판권 수출을 일구며 K-소설의 선봉에 선 출판사 클레이하우스의 윤성훈(39)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두 대표는 1인 출판사에서 시작해 조금씩 규모를 키우며 ‘작지만 강한 출판사’로 도약하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시집이 만들어지고 읽히는 이상한 나라” K-시집의 최전선 ‘읻다’ 김현우 대표
“이건 분명히 한국 독자들에게 필요한 책인데, 왜 우리 출판사는 펴내기 싫다고 하지?”
2015년 봄 같은 고민을 함께하던 젊은 출판인들이 기존의 일터에서 거절당한 기획을 손에 들고 의기투합했다. 출판사 읻다는 응당 세상에 나와야 할 책을 만들자고 다짐한 ‘노동 공유형 독립 출판 프로젝트’의 형태로 출발했다.
한데 모인 편집자·디자이너·번역가 등의 사람들은 명확한 목표 아래, 기존의 출판사라면 출간하지 못했을 미완의 작품들을 펴낼 수 있었다. 김 대표는 그 시절 펴낸 대표작으로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전쟁 일기’, 미즈노 루리코의 ‘헨젤과 그레텔의 섬’과 같은 책들을 꼽았다. 김 대표는 “노동 공유형 독립 출판이라는 건 지금 생각해보면 ‘의미 있는 일’을 ‘무보수’로 하자는 뜻이었다”며 웃었다. 서로가 좋아서 시작한, 어떤 대가도 받지 않는 가욋일이라는 것은 서로를 재촉할 수 없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작업 속도와 출간은 많은 사정으로 지연됐다.
결국 창업 3년 만인 2018년 읻다는 자금난에 부딪혔다. 온전히 출판사 일을 맡아서 일할 수 있는 대표가 필요했다. 그동안 번역가로 참여하던 김 대표가 방향타를 잡았다. 산적한 계약의 문제도 과감히 정리했다.
대표를 맡고 3년 동안 50권 이상의 판권을 사들였다는 김 대표는 “마치 외국의 좋은 문학을 둘러보고 다니는 ‘보부상’이 된 느낌”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어느 날 문득 ‘한국 문학에도 좋은 것이 많은데 왜 외국에서 알아보지 못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죠.”
읻다가 세계시인선을 출간하고 있던 출판사였고 번역가로서 시 번역이 다른 글과 다르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었기에 그의 시선은 자연스레 동시대 한국 시인들에게 향했다. 그러나 “해외에 소개되는 한국 문학 100권 중 95권이 한국문학번역원 등의 지원금으로 진행된다”는 김 대표의 말처럼 계약된 책을 펴내기에도 벅찬 1인 출판사의 조건에서 동시대 시인의 시를 번역해 펴내기에는 역량이 부족했다.
김 대표는 물러서는 대신 도전을 결심했다. 출판사의 명운을 걸고 편집자와 디자이너를 구해 팀을 꾸렸다. 출판사의 틀을 넘어 다른 출판사에서 펴낸 시집까지 번역하기 위해 전문 에이전시 ‘나선’을 만들기도 했다. “2∼3명이 함께 힘을 모을 때 혼자보다 20∼30배의 역량으로 의미 있는 실험을 계속할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팀이 구성된 후 읻다는 본격적으로 ‘줄줄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김행숙, 이수명, 황인찬, 이제니 등의 시인을 선정해 직접 번역본을 마련해 영어·불어·독일어·일본어 등으로 펴냈다. 지금은 김혜순 시인의 시집 ‘날개 환상통’(문학과지성사)의 불어 번역본 프로모션 활동에도 참여 중이다.
한 회사를 책임지는 리더로서 김 대표의 고민은 연속성이다. “독자들이 읻다의 책을 믿고 구매하기 위해선 일정한 색채와 질이 보장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선 동료들이 오랫동안 한 팀으로 일할 수 있어야 하죠.”
김 대표는 “대규모 조직을 뒤로하고 소규모 팀과 함께하기를 선택한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실험성”이라며 “읻다를 축구에 비유하자면 ‘1부 리그 하위 팀’ ‘2부 리그 팀’에 해당한다. 이기기보다는 패배할 경우가 더 많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마음을 간직하고 싶다”고 다짐했다.
■ Leadership - 휴남동 서점 대박… 클레이하우스 윤성훈 대표
‘수익0’에도 공격 마케팅… 우리 소설로 ‘간 큰 실험’
대형출판사 스타 편집자 출신
3년간 80건 해외에 판권 수출
◇“힐링 소설을 넘어 더 많은 한국 소설을 세계에 보여주고 싶다” K-소설의 최전선 ‘클레이하우스’ 윤성훈 대표
2021년 2월 출판사 클레이하우스를 창업한 윤 대표는 웅진지식하우스, 다산북스 등의 출판사에서 일하며 직접 펴낸 책들의 판매 부수만 도합 120만 부를 훌쩍 넘기는 소위 ‘스타 편집자’ 출신이다. 큰 회사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해봤다는 생각으로 더 많은 실험을 하기 위해 창업에 나섰다.
윤 대표는 자신만만하던 창업 초기를 돌아보며 “대형 출판사에서 일하며 배웠던 ‘공격적인 마케팅’을 1인 출판사가 돼서도 계속했다. 이런저런 지출을 제하고 나니 회사 계좌에 0원이 찍히는 날들도 많았다”고 말했다. 어느새 자신감은 한숨으로 변했다.
“새롭게 출판사를 창업하는 출판인들 사이에선 5권의 신간을 출시하는 동안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베스트셀러’가 나와야 한다는 속설이 있어요. 슬슬 조바심이 났던 것도 사실이죠.”
위기 속에 기회가 왔다. 윤 대표는 처음엔 문학 작품을 펴낼 생각이 없었다. 제작부터 수익까지 여러 면에서 1인 출판으로 접근하기 어렵다고 생각한 탓이다. 그러나 황보름 작가의 원고를 읽고 마음을 고쳐먹을 수밖에 없었다.
“전자책을 먼저 읽은 독자들은 종이책으로 출간되길 원하고 있었고, 당시 소설 시장 트렌드에도 딱 맞아떨어지는 ‘힐링 소설’이었죠.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황 작가의 책 ‘어서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는 출간 이후 국내에서만 30만 부 이상 팔려나가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올랐다.
‘어서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의 성공 이후 출판사의 성격도 달라졌다. “그전까지 한국 소설이 일본, 동남아시아 등의 국가에서 판매고를 올린 적은 있어도 시대상을 담아낸 ‘선생님’ 작가들의 책이 아닌 경우에 영미권에 수출할 수 있다는 생각조차 못했는데 황 작가의 책은 그런 편견을 부순 작품이에요.” 이후부터 클레이하우스는 한국 소설을 들고 해외 시장의 문을 두드렸고 3년간 80권 넘는 국내 작가의 판권이 해외에 판매됐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베스트셀러를 만들어 낸 이후였다. 혼자서 각종 인터뷰와 행사까지 소화하는 게 불가능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또한 윤 대표 역시 출판사의 지속성에 대해 고민했다. “출판 시장의 변화가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은 스스로 출판 시장을 이해하고, 무슨 책을 기획하고 어떻게 만들어 팔아야 하는지 나름의 답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변화의 속도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는 자신은 감히 없습니다. 혼자만의 판단이 통하지 않는 때가 올 것이라는 두려움을 늘 가지고 있어요.”
급변하는 출판 시장 속에서 윤 대표가 찾아낸 답은 ‘다양성’이다. “나이, 성별, 관심사도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일해야 생존하고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은 명백하죠.” 어느새 클레이하우스는 창업 3년 반 만에 식구가 4명으로 늘었다. 모두가 사양산업이라고 말하는 출판계에서는 이례적인 일이다. 윤 대표는 “오는 하반기에는 1∼2명 정도 추가 채용을 예정하고 있다”며 “5∼6인으로 이뤄진 팀이 돼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급선무의 목표”라고 말했다. “서로의 실험을 지지해줄 수 있는 팀이 됐으면 좋겠어요. 혼자서는 할 수 없고 동시에 너무 큰 조직에서도 할 수 없는 유일무이한 실험을 지속할 수 있는 조직이 돼야 사람들이 계속 함께 갈 수 있겠죠.”
장상민 기자 joseph0321@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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