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안마사를 독차지한다고요? [6411의 목소리]

한겨레 2024. 8. 19.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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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0년 경력의 시각장애인 안마사다. 필자 제공

허상욱 | 시각장애인 안마사

나는 20년 경력의 시각장애인 안마사다. 아홉살에 홍역을, 열아홉살에 폐렴과 결핵을 앓았다. 심한 고열이 있었고, 연속해서 시력 저하가 왔다. 스물아홉살에 초자체 혼탁 제거 수술을 했고, 2회의 망막박리 수술과 염증 제거 수술을 받았다. 수차례의 레이저 시술을 거듭했으나 1999년 말, 최종적으로 실명 판정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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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보이지 않는 게 어떤 미래를 의미하는지 처음에는 온전히 자각하지 못했다. 약시 시절에는 불편하긴 했지만, 그럭저럭 비장애인들과 발맞추어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20대 초반부터 다녔던 잼과 젤리를 만드는 식품회사에서는 저시력자임에도 불구하고 공장장이라는 직위까지 올랐으니 나름 불편함을 견딜 수 있었다. 그러나 시력이 전혀 없는 ‘전맹’이 되고 나서는 직업을 선택하는 것이 사치처럼 느껴졌다.

눈이 보이지 않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았다. 성남에서 대학가 근처의 당구장을 하나 인수하여 운영했다. 서비스가 좋다는 소문 속에 하루 기십만원의 매출이 있을 정도로 장사가 잘되었다. 그러나 실제 내 손에 들어오는 돈은 턱없이 적었고, 매번 금전 출납에 펑크가 났다. 종업원들을 관리하는 데 있어서 시력의 부재는 큰 장벽이었다.

1년을 채우지 못하고 당구장을 매각했다. 검정고시를 치르고 점자를 배우고 보행을 배웠다. 컴퓨터 초·중급 과정을 연이어서 한입에 쓸어 넣듯 해치웠다. 그러는 도중 아들이 태어났고, 부랴부랴 2001년 대전맹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안마사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서였다. 이 일 외에는 직업적 대안이 없다는 생각에 묵묵히 안마사 수료 과정을 감당하였다. 실습할 때마다 온몸은 땀에 흠뻑 젖기 일쑤였다. 고된 실습 뒤 점심시간에 밥을 먹을 때면 손이 후들후들 떨려서 국물조차 떠먹을 힘이 없었다. 그렇게 3년의 실습 과정을 마치고 나니, 손에는 힘겹게 취득한 눈물의 자격증이 한 장 들려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 안마사는 허울이 좋다. 유니폼을 깔끔하게 차려입고 손님들의 아픈 곳을 해결해 주니 거반 의사라 여겨지기도 한다. 손님들도 선생님, 선생님 하고 불러주니 기분도 나쁘지 않다. 언젠가는 안마 덕분에 산삼을 먹고도 해결되지 않던 발바닥 냉통이 깔끔히 해결되었다는 말도 들었다. 누군가는 하루 7, 8알의 두통약을 먹어야 하루 업무를 마칠 수 있었는데 이제 그 약을 먹지 않아도 된다는 말도 하였다. 호전되고 있다는 크고 작은 반응들은 안마 일을 지속하게 하는 큰 힘이 된다.

안마 일은 타인의 몸을 돌보는 일이지만, 내 몸은 등한시하는 육체노동이다. 동료 안마사가 “아이고! 오늘 삭신이 쑤시는 걸 보니 손님 많이 들겄네” 말하는 날은 여지없이 손님이 많이 든다. 날씨가 우중충하고 습도가 높은 날은 손님의 몸뿐 아니라 안마사의 근·골격계에도 여기저기 통증이 발생한다. 안마사의 급여는 시간을 얼마만큼 투여했느냐에 따라 달라지므로, 몸이 쓰러지게 힘든 날에도 웬만해선 안마 일을 쉴 수가 없다.

손님이 규칙적으로 드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손님이 없을 때는 하루 한 건도 못 하고 퇴근하는 날도 있다. 그러나 손님이 사정없이 밀어닥칠 때는 쉼 없이 하루 열여섯명의 손님을 받은 적도 있다. 언제 손님이 끊길지 모르는 형편에, 한 시간 일하고 몇 분 휴식시간을 갖는 노동 법규를 지키기는 쉽지 않다. 업주는 업주대로 안마사는 안마사대로 불법을 저지르며 묵인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조건 속에서 안마사들의 평균 재직 기간은 채 1년이 되지 않는다.

요즘 달갑지 않은 소식들이 언론 매체를 타고 들려올 때가 있다. 각종 마사지 협회에서 시각장애인 안마사 제도가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직업 평등권에 위헌의 여지가 있다고 수시로 대법원에 소송을 걸어오는 것이다. 직업 평등권보다 약자를 보호해야 하는 법이 상위법에 들어 있는 것을 무시한 터무니없는 소송이라 생각한다.

몇 년 전엔가 대전 홍명상가 지하도 입구에서 구걸하는 시각장애인의 바구니를 행인이 걷어찬 사건을 전해 들은 적이 있었다. 나 같은 전맹들은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거리에서의 구걸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다. 손님이 많으면 손가락이 아프고 손님이 없으면 배가 고플지라도, 안마사 일은 시각장애인이 일상에서 영위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직업이다. 불가피한 선택이자, 꼭 필요한 생존 수단이다.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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