칫솔·비닐봉지 다닥다닥…‘주거용 우주정거장’에서 벌어지는 일

곽노필 기자 2024. 8. 19. 09:3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곽노필의 미래창
국제우주정거장에 대한 첫 고고학 연구 발표
우주비행사들, 물건 제자리 고정하는 데 급급
어수선하고 좁고 비위생적…사생활 보호 안돼
국제우주정거장 노드2 모듈의 보수정비 작업 구역(스퀘어3). 오른쪽에 승무원 침대가 보인다. 노란색 점선은 구역의 경계를 나타낸다. 나사 제공

“우주의 삶은 공상과학의 상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고대인의 삶을 파헤치는 고고학 방법론을 활용해 인류 최초이자 유일한 우주 서식지인 국제우주정거장(ISS)의 삶을 들여다본 최초의 우주고고학 연구 결과가 나왔다.

오스트레일리아 플린더스대 앨리스 고먼 교수와 미국 캘리포니아 채프먼대 저스틴 월시 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은 국제우주정거장의 일상을 사진에 담는 스퀘어(SQuARE) 실험을 진행한 뒤, 이를 분석한 연구 결과를 공개학술지 ‘플로스 원’에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우주정거장 승무원들은 무중력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각기 나름대로 지구 중력을 대신할 도구나 장치를 활용하고, 모듈 내의 공간도 자신의 필요에 맞게 조정하는 다양한 문화적 풍경을 연출했다. 연구진은 그러나 “우주정거장은 어수선하고 혼란스럽고 좁고 더럽고 프라이버시도 거의 없고 샤워시설도 없다”며 “우주에서의 삶은 공상과학이 묘사하는 상상 속의 이미지와 얼마나 거리가 먼 지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국제우주정거장의 우주비행사가 우주고고학 연구용으로 선정된 현장 구역을 사진으로 찍고 있다. 미 항공우주국 제공

가로-세로 1m 구역의 60일 변화 추적

이번 연구는 20년이 지나 노후화한 우주정거장이 퇴역해 사라지기 전에 우주정거장에서의 생활과 문화를 역사적 기록으로 남겨 훗날 우주 서식지 설계에 소중한 자료로 삼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옛 사람들이 동굴 등에 남긴 흔적을 통해 그들의 삶과 문화를 살펴보듯, 고고학적 관점으로 우주라는 활동 영역을 들여다봄으로써 사람들이 우주라는 전혀 새로운 환경에 어떻게 적응해 가는지 확인해 보자는 것이다.

미국과 러시아가 주도해 만든 국제우주정거장은 고도 400km 상공에서 90분에 한 번씩 지구를 돌고 있다. 2000년 말 처음으로 우주비행사가 체류하기 시작한 이후 지난 23년 동안 23개국 270명 이상의 우주비행사들이 머물다 갔다.

연구진은 우주정거장의 일과 휴식 공간을 대표하는 6곳을 조사 현장으로 정하고, 우주비행사들에게 2022년 1∼3월에 걸쳐 60일 동안 매일 이곳의 모습을 사진으로 촬영해 남기도록 요청했다. 5곳은 연구진이 정해주고, 나머지 1곳은 우주비행사가 흥미로울 만한 곳을 골라 임의로 정하도록 했다.

연구진은 유적 발굴을 위해 1m 정사각형 크기의 구덩이(시굴갱, test pit)를 파는 고고학 연구 방식을 따라, 사진에 담을 가로-세로 1m 크기의 공간을 정해 경계 지점에 테이프를 붙였다. 따라서 고대 유적지의 토양이 층별로 각기 다른 시기의 삶을 담고 있듯, 이 구역의 60일 사진 기록은 그 기간에 우주정거장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를 담게 된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에선 조사 구역 6곳 가운데 정비·보수 구역과 변기·운동기구 구역 2곳만 분석했다.

인류 최초이자 유일한 우주 서식지인 국제우주정거장(ISS)의 삶을 분석하는 최초의 고고학적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 항공우주국 제공

본래 용도로 사용한 경우 거의 없어

연구진이 분석한 첫번째 현장(스퀘어3)은 우주선 도킹 포트로 쓰이는 미국의 모듈 노드2에 있는 정비·보수 구역(MWA)이다. 4개의 침대가 있는 이 모듈은 유럽 및 일본 실험실 모듈과 연결돼 있다. 이 구역엔 40개의 벨크로 사각 테이프가 있는 파란색 금속판이 있고, 그 아래엔 장비를 고정하거나 실험을 진행할 수 있는 테이블이 있다. 벨크로는 한쪽은 꺼끌꺼끌하게, 다른 한쪽은 부드럽게 만들어 두 부분을 붙이면 떨어지지 않는 여밈 장치다.

이 구역은 원래 장비를 보수하고 정비하는 용도로 만든 공간이었다. 연구진은 그러나 본래 용도로 사용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밝혔다. 과학 활동도 아주 적었다. 조사가 진행된 60일 중 50일 동안 이 구역은 물건을 보관하는 용도로만 쓰였다. 연구진은 “접착 테이프 역할을 하는 벨크로가 많아서 임시 보관용으론 완벽한 장소였다”고 평가했다.

연구진은 “이 구역 사진에 등장한 모든 물품의 거의 절반(44%)이 벨크로, 클립, 비닐봉지 등 다른 물품을 고정하는 중력 대용물이었다”고 밝혔다.

국제우주정거장 노드3 모듈의 변기 및 운동기구 구역(스퀘어5). 러닝머신은 사진 바깥쪽 왼쪽에, 변기는 사진을 찍은 사람 바로 뒤에 있다. 미 항공우주국 제공

공공장소에 개인 세면도구…취약한 사생활과 위생

연구진이 분석한 두번째 현장(스퀘어 5)은 미국 모듈 노드3에 있는 변기와 운동기구 구역이다. 이곳은 우주비행사들이 가장 좋아하는 큐폴라 조망창과 창고 모듈로 가는 통로이기도 하다.

이 구역의 변기 맞은편 벽은 정해진 용도가 없이 노트북 컴퓨터 보관, 항균 실험 등 여러 용도로 쓰였다. 한 승무원은 실험 기간 중 52일 동안 이곳을 자신의 세면도구 보관 장소로 썼다.

연구진은 “변기와 운동기구 가까이에 개인 세면도구를 두는 것은 어느 정도 의미가 있지만 다른 사람들이 끊임없이 지나가는 공공적 장소에 세면도구가 있다는 것은 위생과 사생활 보호 면에서 우주정거장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이 구역에서도 전체 물품의 30%가 다른 물품을 고정하는 용도로 쓰였다. 두 구역의 조사 결과를 우주정거장 전체로 넓혀보면 이런 중력 대용물품이 얼마나 많이 사용되는지 짐작할 수 있다.

분실 물품 6천개…고정·보관에 우선순위 둬야

연구진은 “앞으로 지구 저궤도나 달 궤도에 설치할 우주정거장을 설계하는 사람들은 물품을 고정하고 보관하는 것을 다른 것보다 더 우선순위에 둬야 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고먼 교수에 따르면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우주비행사들이 분실한 물품은 6000개에 이른다. 따라서 물품을 제자리에 잘 보관하는 것은 그만큼 아주 중요한 일이다.

이번 프로젝트는 인간이 우주라는 새로운 환경에 어떻게 적응해가는지를 기록한 최초의 연구다. 한 우주비행사는 연구진과의 인터뷰에서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물건을 어디에 두고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어느 정도 같은 생각을 갖게 되었다”고 말했다.

고먼 교수는 “이번 연구에서 우주정거장 승무원들이 설계 및 임무 계획과 다른 방식으로 정거장 구역들을 사용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며 “미래의 우주정거장 설계자들이 이를 통해 귀중한 교훈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논문 정보

https://doi.org/10.1371/journal.pone.0304229

Archaeology in space: The Sampling Quadrangle Assemblages Research Experiment (SQuARE) on the International Space Station. Report 1: Squares 03 and 05.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