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의 영향력이 곧 자본"…본질 꿰뚫는 서바이벌 게임, 더 인플루언서 [스프]

심영구 기자 2024. 8. 19.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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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저격] (글 : 홍수정 영화평론가)


당신에게 한 가지 묻고 싶다. '인플루언서'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아주 좋지만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있다. 이 단어는 반드시 긍정적이지만은 않은 맥락에서 튀어나오곤 하니까. 관심을 끌려다 사고 친 인플루언서, 콘텐츠 만들다 물의를 일으킨 인플루언서... 오해는 말길 바란다. 나는 지금 이런 인식이 타당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 사회가 '인플루언서'에 대해 품는 보편적인 인상에 대해 말한 것이다.


넷플릭스가 최근 공개한 예능 시리즈 <더 인플루언서>를 처음 접했을 때, 나의 인상도 이와 유사했다. 화려하고도 자극적인 예고 영상은 관심을 끌려는 시도가 소란스럽게 이어질 것이라 넘겨짚게 만들었다. 물론 이런 부분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더 인플루언서>에는 몇 마디 말로 일축하기 어려운 성취가 담겨 있다. 그 이상한 반짝거림이, 이 프로그램을 다시 유심히 들여다보게 만든다.

<더 인플루언서>는 내로라하는 국내 인플루언서 77인 중에서 단 한 명의 우승자를 뽑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흔히 '서바이벌 게임'은 그 구성을 통해 연출자의 지향을 드러낸다. 게임은 곧 연출자가 바라보는 세상의 축소판이다. 참여자에게 요구되는 능력은, 연출자가 생각하는 세계의 생존 능력과 일치한다. 지력, 체력, 정치력 같은 것들. 그러나 세팅된 룰을 뚫고 자기만의 독보적인 방식으로 승리하는 플레이어를 보는 것도 서바이벌 게임의 묘미다. 그러므로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핵심은 게임의 구성이다. 아래부터 <더 인플루언서>의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으니, 유의해 읽어주기를 바란다.

<더 인플루언서>는 자극적인 설정으로 시작된다. 유튜브, 틱톡, 아프리카 TV 등에서 활약하는 네임드(유명인을 뜻하는 인터넷 용어)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그들의 목에는 목줄을 연상케 하는 기구가 채워져 있다. 여기에는 각자의 팔로워 수를 돈으로 환산한 수치가 표시돼 있다. 이른바 '몸값'이다.

시작과 동시에 <더 인플루언서>는 자신의 지향점을 확실하게 선포한다. '이것은 인간의 영향력을 자본으로 계산하는 게임입니다. 더 많은 관심을 끄는 사람이 더 많은 돈을 벌게 될 거예요.' 물론 이 선언은 노골적이고 품위가 없다. 하지만 이런 점을 비판하기보다 "뭐, 현실은 더하니까" 정도의 말과 함께 수용하는 것이 지금의 경향인 것 같다. 이성적이라 할지, 서글프다 할지 모를 일이지만.

프로는 총 5개의 라운드로 진행된다. 1라운드는 '관심'을 끄는 능력. 2라운드는 '라이브 방송', 3라운드는 '시선', 4라운드는 '댓글'을 얻는 능력 등을 본다. 그리고 파이널 라운드에서는 최대한 많은 '판정단'의 마음을 얻는 자가 승리한다.

<더 인플루언서>의 성격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것은 1라운드다. 참가자들끼리 '좋아요'와 '싫어요'를 보내고, 마지막에 점수를 산정하는 게임. 그러나 놀이가 끝날 무렵 참가자들은 하나의 규칙을 깨닫게 된다. 이것은 '좋아요'와 '싫어요'를 구분하지 않고 합산해 점수를 내는 게임이었다는 점 말이다. 이 룰은 상대의 호감은 사고 비호감은 피한다는 보편적인 상식을 깬다. 이 적절한 반전은 현대 사회에서 인플루언서란 무엇인가에 대한 철학을 잔망스럽게 드러낸다.


이어 각 라운드가 진행된다. 게임은 꽤 잘 짜였고, 자본의 냄새가 화려하게 진동한다. 하지만 이 와중에 가장 돋보이는 것은 참가자들의 플레이다. 이들은 긴장 속에서도 시선을 잡아끄는 기술, 팬들과 지루하지 않게 소통하는 노하우를 펼쳐낸다. 인플루언서로서의 실력을 가늠하는 진검승부.

그러나 라운드가 거듭될수록, 승부를 가르는 결정적인 요인 하나가 슬그머니 고개를 든다. 그것은 바로 게임의 핵심을 읽는 능력이다. 첫 번째 라운드를 보자. 이 게임이 통념을 벗어나기를 요구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들은 살아남는다. 이목을 끄는 사진을 찍는 게임도 그렇다. 참가자들은 웃음, 노출 등 단순한 코드에서 머물다 점차 '시선 집중'의 근본 원리를 건드리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여타의 서바이벌 프로그램과 <더 인플루언서> 참가자의 가장 큰 차이는, 이들이 매우 유연하다는 것에 있다. 사진 만들기 게임에서 이들은 다른 이의 필승법을 보고, 그것을 바로 받아들여 발전시킨다. 어떤 이들은 필승법이 일반화될 것을 고려해, 새로운 방식으로 자신을 차별화한다. 이들은 마치 실시간으로 바뀌는 환경에서 끈질기게 살아남는 카멜레온처럼 느껴진다. 아마도 그것이야말로 이들이 무자비하게 요동치는 플랫폼 산업에서 꿋꿋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일 것이다. 판의 흐름을 빠르게 감지하고, 그것을 유연하게 따라가며, 끝내 내 것으로 흡수해 버리는 능력. 그것이 인플루언서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임을 이 프로는 처음으로 드러낸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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