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예적금인데 수익률 10%?…디폴트옵션 성과 왜곡 논란[마켓인]
지영의 2024. 8. 19. 08:52
"디폴트옵션 도입 덕에 10% 수익률"이라는 정부
단순평균 아닌 상품별 가중평균으로 계산해야
수익률 4% 수준 불과…성과 부풀리기로 국민들 호도
시장선 "금융사가 했으면 금소법 위반 제재 받을 일"
단순평균 아닌 상품별 가중평균으로 계산해야
수익률 4% 수준 불과…성과 부풀리기로 국민들 호도
시장선 "금융사가 했으면 금소법 위반 제재 받을 일"
[이데일리 마켓in 안혜신 지영의 기자] “5.26% vs 10.8%”
정부가 발표한 일반 퇴직연금과 사전지정운용제도(디폴트옵션) 연 수익률이다. 물론 퇴직연금은 작년 한해 수익률이고 디폴트옵션은 도입 후 1년간 수익률이라 산정 대상 기간이 다르지만, 수익률 낮은 원리금보장상품 비중도 비슷한데 이렇게 디폴트옵션 성과가 두 배 이상 높게 나올 수 있을까. 답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수익률을 계산했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와 금융감독원이 퇴직연금 사전지정운용제도(디폴트옵션) 시행 1년 차를 맞아 수익률을 발표하면서 성과를 부풀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발표된 디폴트옵션 상품 수익률 10%는 왜곡이 심한 단순 평균 방식을 활용해 산출된 것으로, 실제 수익률은 4% 수준에 그치는 것으로 파악됐다. 시장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정부가 디폴트옵션 제도의 부진한 성과를 감추기 위해 수익률을 과대포장하는 부적절한 방식을 선택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 “수익률 10%? 실제는 4%”...성과 왜곡해 공표한 노동부·금감원
18일 이데일리 취재를 종합하면 고용노동부와 금융감독원은 디폴트옵션 도입 수익률 산출 방식에 대해 비공식적으로 수차례 논의를 거쳤다. 논의 끝에 두 기관은 디폴트옵션 적용할 수익률을 ‘단순 평균(산술 평균)’ 방식으로 채택한 것으로 파악됐다. 정기적으로 발표하는 퇴직연금 운용현황 통계 수익률 산출 방식을 가중평균으로 채택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지난 5월 노동부와 금감원이 발표한 ‘2023년도 퇴직연금 적립금 운용현황 통계’ 역시 가중평균 방식으로 산출됐다.
고용부와 금감원은 지난 13일 단순평균 방식으로 계산된 디폴트옵션 수익률 현황공시 자료를 공표하며 “1년 이상 운용된 디폴트옵션 상품의 연 수익률이 10.8%다. 연금자산의 건전한 축적을 견인했다”고 호평했다. 다만 발표 시 수익률 계산 방법에 대해서는 기재하지 않았다.
문제는 두 기관이 발표한 10%대 수익률이 실제 성과와 달리 극히 왜곡된 수치라는 점이다. 노동부와 금감원이 채택한 단순 평균 방식은 운용 성과 산정 시 쓰이지 않는 방식이다. 운용 상품별 운용 금액 규모가 달라 단순 평균을 낼 경우 왜곡이 심하기 때문이다.
실제 금액가중평균 방식으로 산출되는 일반적인 퇴직연금 수익률은 지난해 연간 기준 5.26%로 집계됐다. 전체 적립금의 87% 가량이 예적금 등 초저위험 상품으로 구성된 원금보장형에 쏠려있기에 예적금 금리를 웃도는 성과를 내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디폴트옵션 상품 역시 전체 적립금 중 89% 가량이 예적금 등 초저위험 상품으로 구성된 원금보장형임을 감안하면, 금액가중평균 방식으로 계산시 실제 수익률은 4.2% 수준에 그치는 것으로 파악됐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부적절한 수익률 계산법을 골라 금융소비자들을 기만했다고 비판한다.
서은숙 상명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상식적으로 봐도 가중평균으로 계산하는 것이 적절한 수익률 계산 방식이다. 단순평균방식으로 계산한 건 전혀 금융전문 지식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며 “디폴트옵션의 90% 가까이 쏠려있는 저위험 상품군은 확정금리형상품보다 금리가 낮은 일반 예금 금리 수준이다. 이를 고려해 가중평균으로 수익률을 계산하면 그냥 퇴직금연금운용수익률과 별 다를바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디폴트옵션 수익률만 일반적인 퇴직금연금 수익률과 다른 방식으로 계산한 것은 금융소비자들을 혼란에 빠지게 할 수 있는, 금융소비자법에 부합하지 않는 잘못된 정보 제공”이라고 평가했다.
한 퇴직연금 시장 전문가도 “금융사가 이런 식으로 수익률 발표를 했으면 금융감독원이 나서서 금소법 위반으로 제재를 하고도 남았을 일”이라며 “사실상 이번 수익률 발표는 대국민 사기극 수준”이라고 성토했다.
정부 해명은 “디폴트옵션 상품 성과 제대로 보여주려 한 것”
글로벌 시장에서 퇴직연금 수익률을 측정할 때 사용되는 표준 방식은 ‘금액가중 수익률’ 또는 ‘시간가중 수익률’이다. 통상 금액가중 수익률은 투자 성과를 파악하는 데에 이용되고, 시간가중 수익률의 경우 운용 역량을 측정하는 데에 쓰인다. 국내외 시장 참여자는 운용 성과를 공표할 때 부문 별로 금액가중 수익률 또는 시간가중 수익률 중 더 적절한 항목을 채택해 발표한다. 단순 평균을 내서 발표하는 경우는 사실상 없다는 이야기다.
정부 및 관계당국 측은 디폴트옵션 상품별 수익률을 제대로 보여주기 위한 방법이 단순평균이라 생각했다고 해명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발표 전부터 고용부와 수익률 산출 방식을 두고 오래 논의를 했다”며 “이번 공시 자체가 퇴직연금 디폴트옵션 상품 자체의 수익률이 어떻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목적이기 때문에 단순평균 값을 공시하자고 논의가 됐다”고 해명했다.
정부는 왜 수익률을 과장했나...“디폴트옵션 실패 때문”
시장에서는 정부가 디폴트옵션 제도 도입 실패를 감추기 위해 통계를 왜곡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디폴트옵션은 가입자들의 무관심이나 금융 지식 부족 등으로 인해 퇴직연금 운용 방법을 지정하지 않아 원리금 보장형 상품에 적립금이 몰리면서 수익률이 떨어지는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도입됐다. 그러나 가입자 대부분이 초저위험 상품에 쏠린 것으로 드러나 제도 도입 취지가 무색해진 상황이다.
당초 디폴트옵션 도입 전 논의 단계에서 시장 전문가들은 미국이나 영국 등 퇴직연금 선진국 모델을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선진국에서는 대체로 디폴트옵션 상품에 원리금 보장을 제공하지 않고, 실적 배당형으로만 구성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최종 도입 시 정부가 디폴트옵션에 원리금 보장형을 포함하면서 정책 도입 효과를 내기 어렵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시장에서는 이제라도 디폴트옵션 제도를 개편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고용부도 인지를 하고 있겠지만 디폴트옵션 적격 상품에서 원리금 보장을 빼는 게 맞다. 그게 무리라면 원리금 보장을 한시적으로만 설정할 수 있는 방향으로라도 가야 한다”며 “원리금 보장형은 대기성 자금 성격으로 3~6개월 한시적으로 설정하도록 하는 방향 등을 고려해볼 수 있다. 수익률 공시가 제대로 이뤄져서 이런 개선안 논의가 이뤄져야 하는데, (잘못 계산된) 10% 수익률로 이런 논의들을 묻히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지영의 (yu02@edaily.co.kr)
18일 이데일리 취재를 종합하면 고용노동부와 금융감독원은 디폴트옵션 도입 수익률 산출 방식에 대해 비공식적으로 수차례 논의를 거쳤다. 논의 끝에 두 기관은 디폴트옵션 적용할 수익률을 ‘단순 평균(산술 평균)’ 방식으로 채택한 것으로 파악됐다. 정기적으로 발표하는 퇴직연금 운용현황 통계 수익률 산출 방식을 가중평균으로 채택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지난 5월 노동부와 금감원이 발표한 ‘2023년도 퇴직연금 적립금 운용현황 통계’ 역시 가중평균 방식으로 산출됐다.
고용부와 금감원은 지난 13일 단순평균 방식으로 계산된 디폴트옵션 수익률 현황공시 자료를 공표하며 “1년 이상 운용된 디폴트옵션 상품의 연 수익률이 10.8%다. 연금자산의 건전한 축적을 견인했다”고 호평했다. 다만 발표 시 수익률 계산 방법에 대해서는 기재하지 않았다.
문제는 두 기관이 발표한 10%대 수익률이 실제 성과와 달리 극히 왜곡된 수치라는 점이다. 노동부와 금감원이 채택한 단순 평균 방식은 운용 성과 산정 시 쓰이지 않는 방식이다. 운용 상품별 운용 금액 규모가 달라 단순 평균을 낼 경우 왜곡이 심하기 때문이다.
실제 금액가중평균 방식으로 산출되는 일반적인 퇴직연금 수익률은 지난해 연간 기준 5.26%로 집계됐다. 전체 적립금의 87% 가량이 예적금 등 초저위험 상품으로 구성된 원금보장형에 쏠려있기에 예적금 금리를 웃도는 성과를 내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디폴트옵션 상품 역시 전체 적립금 중 89% 가량이 예적금 등 초저위험 상품으로 구성된 원금보장형임을 감안하면, 금액가중평균 방식으로 계산시 실제 수익률은 4.2% 수준에 그치는 것으로 파악됐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부적절한 수익률 계산법을 골라 금융소비자들을 기만했다고 비판한다.
서은숙 상명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상식적으로 봐도 가중평균으로 계산하는 것이 적절한 수익률 계산 방식이다. 단순평균방식으로 계산한 건 전혀 금융전문 지식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며 “디폴트옵션의 90% 가까이 쏠려있는 저위험 상품군은 확정금리형상품보다 금리가 낮은 일반 예금 금리 수준이다. 이를 고려해 가중평균으로 수익률을 계산하면 그냥 퇴직금연금운용수익률과 별 다를바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디폴트옵션 수익률만 일반적인 퇴직금연금 수익률과 다른 방식으로 계산한 것은 금융소비자들을 혼란에 빠지게 할 수 있는, 금융소비자법에 부합하지 않는 잘못된 정보 제공”이라고 평가했다.
한 퇴직연금 시장 전문가도 “금융사가 이런 식으로 수익률 발표를 했으면 금융감독원이 나서서 금소법 위반으로 제재를 하고도 남았을 일”이라며 “사실상 이번 수익률 발표는 대국민 사기극 수준”이라고 성토했다.
정부 해명은 “디폴트옵션 상품 성과 제대로 보여주려 한 것”
글로벌 시장에서 퇴직연금 수익률을 측정할 때 사용되는 표준 방식은 ‘금액가중 수익률’ 또는 ‘시간가중 수익률’이다. 통상 금액가중 수익률은 투자 성과를 파악하는 데에 이용되고, 시간가중 수익률의 경우 운용 역량을 측정하는 데에 쓰인다. 국내외 시장 참여자는 운용 성과를 공표할 때 부문 별로 금액가중 수익률 또는 시간가중 수익률 중 더 적절한 항목을 채택해 발표한다. 단순 평균을 내서 발표하는 경우는 사실상 없다는 이야기다.
정부 및 관계당국 측은 디폴트옵션 상품별 수익률을 제대로 보여주기 위한 방법이 단순평균이라 생각했다고 해명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발표 전부터 고용부와 수익률 산출 방식을 두고 오래 논의를 했다”며 “이번 공시 자체가 퇴직연금 디폴트옵션 상품 자체의 수익률이 어떻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목적이기 때문에 단순평균 값을 공시하자고 논의가 됐다”고 해명했다.
정부는 왜 수익률을 과장했나...“디폴트옵션 실패 때문”
시장에서는 정부가 디폴트옵션 제도 도입 실패를 감추기 위해 통계를 왜곡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디폴트옵션은 가입자들의 무관심이나 금융 지식 부족 등으로 인해 퇴직연금 운용 방법을 지정하지 않아 원리금 보장형 상품에 적립금이 몰리면서 수익률이 떨어지는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도입됐다. 그러나 가입자 대부분이 초저위험 상품에 쏠린 것으로 드러나 제도 도입 취지가 무색해진 상황이다.
당초 디폴트옵션 도입 전 논의 단계에서 시장 전문가들은 미국이나 영국 등 퇴직연금 선진국 모델을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선진국에서는 대체로 디폴트옵션 상품에 원리금 보장을 제공하지 않고, 실적 배당형으로만 구성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최종 도입 시 정부가 디폴트옵션에 원리금 보장형을 포함하면서 정책 도입 효과를 내기 어렵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시장에서는 이제라도 디폴트옵션 제도를 개편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고용부도 인지를 하고 있겠지만 디폴트옵션 적격 상품에서 원리금 보장을 빼는 게 맞다. 그게 무리라면 원리금 보장을 한시적으로만 설정할 수 있는 방향으로라도 가야 한다”며 “원리금 보장형은 대기성 자금 성격으로 3~6개월 한시적으로 설정하도록 하는 방향 등을 고려해볼 수 있다. 수익률 공시가 제대로 이뤄져서 이런 개선안 논의가 이뤄져야 하는데, (잘못 계산된) 10% 수익률로 이런 논의들을 묻히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지영의 (yu02@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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