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헤즈볼라 슈크르, 내부 통신 해킹으로 7층 유도 후 폭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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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의 무장단체 헤즈볼라의 최고 군사사령관 푸아드 슈크르는 그가 지난 7월 30일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사망할 때까지 이름이나 얼굴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비밀스러운 삶을 살았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8일 '이스라엘은 유령을 어떻게 죽였나' 기사에서 이스라엘이 헤즈볼라의 내부 통신망에 침투해 그를 살해할 수 있었다고 보도했다.
이스라엘 폭탄이 그의 아파트와 아래 3개 층에 떨어져 슈크르와 그의 아내, 다른 두 여성, 두 아이가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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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격 후 그의 시신은 이웃 건물로 날아가 늦게 발견
[서울=뉴시스] 구자룡 기자 = 레바논의 무장단체 헤즈볼라의 최고 군사사령관 푸아드 슈크르는 그가 지난 7월 30일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사망할 때까지 이름이나 얼굴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비밀스러운 삶을 살았다.
레바논 남부 다히예 지역 그가 살던 아파트 주변 주민들도 그의 얼굴을 본 적 없다며 “유령같았다”고 말했다.
슈크르는 너무 비밀스러워서 그의 죽음을 보도하는 레바논 언론 매체가 잘못된 사람의 사진을 게재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8일 ‘이스라엘은 유령을 어떻게 죽였나’ 기사에서 이스라엘이 헤즈볼라의 내부 통신망에 침투해 그를 살해할 수 있었다고 보도했다.
그는 한 주거용 건물 7층에 살았고 사무실은 그 건물 2층에 있었다. 이는 외부 활동을 줄이기 위한 것이다. 그는 죽기 몇 시간 전까지 슈크르는 헤즈볼라 최고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와 연락을 주고 받았다.
7월 30일 저녁 슈크르는 누군가로부터 5층 위에 있는 아파트로 가라는 전화를 받았다.
이어 오후 7시. 이스라엘 폭탄이 그의 아파트와 아래 3개 층에 떨어져 슈크르와 그의 아내, 다른 두 여성, 두 아이가 사망했다. 레바논 보건부에 따르면 70명 이상이 부상당했다.
그를 7층으로 오라는 전화는 주변 건물들 사이에서 겨냥하기 쉽게 하기 위한 것으로 전화는 헤즈볼라의 내부 통신망을 뚫은 사람에게서 나왔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 관계자는 말했다.
헤즈볼라와 이란은 정보 실패에 대한 수사를 계속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더 나은 기술과 해킹으로 역감시를 물리친 것으로 믿고 있다고 이 관계자는 말했다.
나스랄라는 올해 2월 자신의 전사와 그 가족에게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말라고 명령했다.
이스라엘의 도청을 막기 위해 헤즈볼라는 공개 채널뿐만 아니라 내부 통신망에서도 암호화된 언어를 사용했다고 헤즈볼라 관계자는 말했다.
슈크르가 표적이 된 날 이른 아침 헤즈볼라는 고위 지휘관들에게 위험에 처해 있다는 우려 속에서 해산하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헤즈볼라 관계자는 말했다.
이날 저녁 이스라엘의 공습 후 슈크르가 사망했는지 여부는 즉시 명확하지 않았다. 그의 아파트에서 시신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헤즈볼라의 일부는 그가 그날 오전 내려진 대피 명령으로 도망쳤을 것이라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시신은 이웃 건물에 튕겨져 나간 채 발견됐다.
슈크라가 가담한 1983년 1983년 12월 레바몬 베이루트 미국 대사관 폭탄 테러로 241명의 미국 군인이 사망했으며 이후 40년 동안 미국을 피해 다녔다고 WSJ는 전했다.
이 사건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회고록에서 자신의 8년 임기 중 가장 최악의 상황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1985년 6월 14일 아테네에서 이륙한 TWA 847편을 납치하여 베이루트와 알제 사이를 3일간 왕복 비행하며 이스라엘이 억류한 700명의 수감자를 석방할 것을 요구한 사건에도 가담했다.
그는 지난 10개월 동안 이스라엘과의 국경을 넘나드는 치열한 전투를 지휘하는 등 헤즈볼라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임이다.
그럼에도 거의 눈에 띄지 않는 삶을 살았다. 단체의 신뢰하는 참전 용사들의 작은 모임에만 나타났다.
그는 올해 초 이스라엘과 싸우다 죽은 조카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지만 지인의 말에 따르면 몇 분 동안만 참석했다.
‘유령’ 슈크르는 사망하자 그림자에서 벗어났다고 WSJ은 전했다. 추도식에서 그의 얼굴은 광고판에 인쇄되었다.
전장에서의 그의 삶의 영상이 대형 스크린에 투사되었고 내레이션은 그의 미덕을 귀청이 터질 듯한 음량으로 찬양했다.
그는 베이루트의 공동묘지에 시리아에서 싸우다 죽은 청년 옆에 묻혔다고 WSJ은 전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kjdragon@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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