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 물, 사람의 연결… ‘전기료 0원’ 마을 자체가 에너지

김양진 기자 2024. 8. 19.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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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1.5도 라이프 시작하는 서대문구 ‘마을언덕’, 8년간 유지해온 에너지자립마을 금천구 금하마을
옥상 텃밭, 커피박 제품, 태양열로 무 말리기… 주민 사이 건진 아이디어로 탄소중립
2024년 8월9일 서울 서대문구 홍은1동에서 서대문구 주민들이 환경 자원을 탐방하고 있다. ‘마을언덕사회적협동조합’의 구진정 강사가 투명 페트병을 넣으면 포인트를 적립해주는 자원 회수 로봇을 설명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여기 할머니가 참 잘 고쳐요.”

2024년 8월9일 오전 10시30분, 서울 서대문구 홍은1동 포방터시장 초입. 골목길을 나란히 걷던 9명의 시민이 문득 멈춰 섰다. 무리 중 누군가가 오른쪽에 있는 옷 수선집을 가리켰기 때문이다. ‘바늘꽃 옷수선’이라고 적힌 간판은 새것이었지만, 낡은 천막과 외관에서 오랜 세월이 묻어났다. 이곳을 가리킨 사람은 홍은1동에 50년 넘게 거주한 주민이라고 했다.

스무 걸음 정도 더 옮겼을까. 이번에는 ‘수선하는 남자’라는 상호의 다른 옷 수선집이 나왔다. “최근에 안 쓰는 핸드백 끈을 가져와서 여기서 벨트를 만들었거든요. 8천원 들었어요.” 같은 주민이 설명을 잇자 다른 참가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우와.”

수리권과 시간은행

한 시간 전인 오전 9시30분, 홍은1동 주민센터 3층에 서대문구 주민 7명이 모였다. 이들은 서울시 산하 기관인 서대문50플러스센터가 지역자원순환실천단으로 선발한 사람들인데, 환경 관련 활동을 한다. 이날은 ‘마을언덕사회적협동조합’(이하 마을언덕)에서 나온 2명과 함께 홍은1동 환경 자원을 탐방하기로 한 날이다.

“오늘은 (탐방을) 시작하기 전에 계산부터 할 거예요.” 박혜린 마을언덕 마을사업팀장이 휴대전화를 꺼내 들고 정보무늬(QR코드)를 보여주며 말했다. 박 팀장이 얘기한 계산기는 한겨레21과 ‘1.5도 라이프스타일 한 달 살기’ 실험을 기획한 녹색전환연구소가 개인의 탄소배출량을 간단히 측정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어느 분야에서 (탄소가) 많이 배출되는지 나오나요?”

지역자원순환실천단에서 나온 박용임(64)씨가 보유한 가전제품을 기록하며 계산하던 단계에서 말을 꺼냈다. “전자레인지는 결혼할 때 가져와서 계속 쓰고 있는데, 나머지는 계속 바꿨어요. 세탁기는 특히 고장이 잘 나서 1년에 한 번씩 바꾸는 꼴이 됐거든요.” 그러자 다른 참가자가 말을 보탰다. “심지어 에이에스(AS)를 부르면 바꾸라고 해요.”

그 얘기를 듣던 박혜린 팀장이 말했다. “‘수리권’이라고 들어보셨죠? (가전제품 등을) 수리할 권리를 보장해야 하는데, 부품이 없다고 거짓말하는 기업도 있죠. 옷도 한 번 쓰고 버리지 않으면 수선해야 하는데, 우리 동네에 (수선할 수 있는 가게가) 있을까요? 우리가 오늘 탐방하자고 모였는데 먼저 계산기부터 돌린 이유도 여기 있어요.”

이들이 그러면서 찾은 곳이 포방터시장 골목이다. 이 골목에는 두 개의 옷 수선집과 함께 신발을 고쳐 쓸 수 있는 ‘구두수선’이라는 가게, 주민들을 대상으로 전자제품 수리 등을 강의하고 직접 고쳐주기도 하는 ‘녹색지대협동조합’과 같은 환경 자원이 자리잡고 있다. 참가자들이 골목에서 가장 큰 관심을 보인 ‘타임뱅크’라는 곳도 있다. 타임뱅크는 한 사람이 자신이 가진 재능을 활용해 도움이 필요한 다른 사람을 도와주고, 이때 들인 시간만큼 ‘시간화폐’를 적립해 다음에 필요한 도움을 받을 때 사용하는, 일종의 품앗이 개념의 ‘시간은행’이다. 간단한 집수리부터 카풀, 반찬 나눔, 반려동물 산책 등과 같이 일상적인 도움을 주고받는 데 쓸 수 있다.

홍은1동의 타임뱅크는 마을 어르신들의 사랑방 역할도 하고, 집에서 쓰지 않는 물건을 교환하는 장소로도 쓰인다. 환경만을 위한 장소는 아니지만, 이런 공동체는 마을에서 중요한 환경 거점 자원이 된다. 홍은2동에 산다는 신갑이(67)씨는 탐방을 마친 뒤 “아는 만큼 보이는 것 같다”며 자신의 지역에 타임뱅크 같은 거점을 운영하고 싶다고 했다. 박용임씨도 “요새는 재래시장에서도 수선집이 없어지는 추세인데 여긴 할머니가 하시는 수선집부터 신발까지 수선집이 다양하게 있는 게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2024년 8월9일 서울 서대문구 홍은1동에서 서대문구 주민들이 환경 자원을 탐방하고 있다. 주민들이 오른쪽 ‘수선하는 남자’라는 상호의 옷 수선집을 쳐다보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텀블러도 혼자 가지고 다니면 유별스러우니까

서대문구 사람들이 마을에 옷 수선집이나 가전제품 수리점 같은 환경 자원이 얼마나 있는지 조사하는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마을언덕은 2022년부터 서대문구 내 제로웨이스트(쓰레기를 최소화하는) 가게나 리필스테이션(소비자가 빈 용기를 가져와 상품을 담아가는 상점)과 같은 환경 자원을 조사하는 ‘지구를 구하는 동네길’ 사업을 벌여왔다. 지금까지 남가좌동과 연희동, 천연·충현동, 홍은·홍제동 등 4곳의 마을을 탐방하고 기록을 남겼다.

하지만 마을에 환경 자원이 얼마나 있는지 파악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했다. 무엇보다 마을 주민에게 이 환경 자원들을 활용할 필요성을 느끼게 할 모멘텀이 필요했다. 주민 개개인이 배출하는 탄소가 얼마나 되는지 분야별 수치로 파악하지 못하면, 배출의 심각성 역시 깨닫지 못하게 되고, 그러면 주변에 환경 자원이 충분히 갖춰져 있다고 해도 주민의 일상에는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때 박혜린 팀장은 한겨레21과 녹색전환연구소가 공동 기획한 ‘1.5도 라이프스타일 한 달 살기’ 실험을 알게 됐다. 실험을 통해 개인이 일상 속에서 얼마나 많은 탄소를, 특히 어떤 분야에서 많이 배출하는지 측정할 수 있으면, 이들이 마을에 있는 환경 자원을 적극 활용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박혜린 팀장은 7월 초에 시작한 한겨레21과 녹색전환연구소의 실험과 별도로서대문구 주민 11명과 함께 7월 말 또 다른 ‘1.5도 라이프스타일 한 달 살기’ 실험을 시작했다. 이날 홍은1동 탐방은 실험을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진행된 환경 자원 조사였다. 탐방 전 자신의 일상에서 나오는 탄소배출량을 직접 계산해보고, 마을에 있는 어떤 환경 자원을 이용해 줄일 수 있는지 현장에서 가늠해보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1.5도 라이프스타일 실험이 개인과 마을 인프라를 이어준 셈이다. 마을언덕은 조만간 1.5도 라이프스타일 실험 참가자들과 함께 홍은2동도 탐방할 계획이다.

“저희가 마을 내 환경 자원을 찾는 것도 하지만, 우리 동네 환경 의제도 같이 발굴하고 있거든요. (마을언덕이 있는) 홍은2동의 경우 리앤업사이클(재활용 및 새활용) 센터 같은 곳들은 있어요. 다만 교통은 좋지 않은 편이에요. 지하철역은 최소 1.5㎞ 이상 나가야 하고 버스 노선도 엄청 돌아서 오래 걸리거든요. 1.5도 라이프스타일 참여자 11명과도 한번 돌아보고 10월에 의견을 나누는 공론장을 만들 생각입니다.” 박혜린 팀장이 말했다.

2024년 8월9일 서울 서대문구 주민들이 홍은1동 포방터시장 안에 있는 ‘타임뱅크’를 방문해 설명을 듣고 있다. 이곳은 마을 어르신들의 사랑방 역할도 하고, 집에서 쓰지 않는 물건을 교환하는 장소로도 쓰인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그러니까 서대문구의 1.5도 라이프스타일 실험은 한겨레21과 녹색전환연구소의 실험에서 한 단계 더 진화한 도전이라고 할 수 있다. 한겨레21과 녹색전환연구소의 실험을 완주한 23명의 참여자들(제1526호 참조)은 목표 달성엔 실패했지만, 이들을 둘러싼 대중교통·의료·환경 자원 인프라의 지역 격차, 노동환경, 정부 정책과 기업의 의지 등과 같은 구조적인 문제가 개인의 탄소배출 의지를 얼마나 가로막을 수 있는지 체험했다. 반면 서대문구 주민들은 개인의 탄소배출을 줄이는 데서 멈추지 않고 이를 도울 수 있는 마을의 환경 자원을 공유하고, 더 줄이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부분을 찾아 지방자치단체에 건의할 계획이다. 모든 주민에게 영향을 끼치는 구조적 문제를 개선하는 방향이다. 무엇보다 1.5도 라이프스타일이 고립된 개인의 실천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과 함께하는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개인의 실천은 언제나 ‘나 혼자 이렇게 산다고 전체가 변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과 함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텀블러도 혼자 가지고 다니면 유별스러워 보이잖아요. 그런데 공간을 중심으로 사람이 연결되면 확실히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것 같아요.” 박혜린 팀장이 말했다.

서대문구처럼 1.5도 라이프스타일 실험과 마을의 환경 자원을 연결하려는 시도는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수준이다. 그런데 이 실험이 시작되기 전부터 공동체 차원에서 탄소배출량을 줄이고, 마을 자체를 하나의 거대한 탄소중립 거점으로 만들려는 시도는 10여 년 전부터 진행되고 있었다. 2010년대 서울에서 붐이 일었던 ‘에너지자립마을’이다. 한때 100개 이상 만들어졌던 에너지자립마을은 현재 어떻게 됐을까.

마을 주민 160명이 모인 에너지전환 조합

8월2일 오후 2시, 금천구 금하마을. 920가구(2023년 기준)가 사는 이 마을은 화석연료 중심의 에너지를 재생에너지로 바꾸는 에너지전환을 실천하고 있다. 이 마을에 2019년 5월 지어진 4층 건물인 ‘주민공동이용시설’에서는 주민들이 모여 마늘을 다듬고 있었다. 이금희(76)씨가 집에서 가져온 마늘 더미를 수북이 꺼내놓자 노민님(67)씨와 심상대(77)씨 등 30여 년 동안 함께한 이웃들이 일을 거들었다. 노민님씨는 “일거리가 있으면 다 싸서 여기 가져온다. 네 거 내 거 없이 그냥 이렇게 도운다”고 말했다.

다른 주민은 이웃과 나누기 위해 집에서 찐 옥수수를 가져왔다. 그러자 주민공동이용시설을 관리하는 주민 고보현씨가 오가는 주민에게 얼음물 한 잔을 건넸다. 마침 배달 온 택배 기사도 얼음 커피 한 잔을 마시고 갔다. 오후 3시가 되자 장 담그는 걸 배운다고 금천구 보건소 직원 두 명이 찾아왔다. 주민공동이용시설 옥상에는 4년 전부터 주민들이 함께 담근 장류가 담긴 장독 10여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같은 시간 회의실에서는 서울지역 환경운동가 10여 명이 찾아와 현안 회의를 하고 있었다.

주민공동이용시설 옆에는 2024년 4월 5층 건물로 완공한 ‘금천에코·에너지센터’가 있었다. 1층 입구에는 당면한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한 기후위기시계가 설치돼 있다. 기후위기시계는 지구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1850~1900년)보다 1.5도 오르는 시점까지 얼마나 남았는지를 표시한다. 이날 오후 2시30분께 기후위기시계는 ‘4년 353일 21시간 54분 37초’를 가리키고 있었다.

센터 1층엔 제로웨이스트 가게가 있다. 가게 중앙 스크린에서는 이 건물 옥상 태양광에서 생산되는 전력량과 감축한 탄소량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 가게에서 주민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은 건 친환경 세제(주방·세탁), 섬유유연제, 샴푸다. 여기는 리필스테이션이기도 해서, 주민들이 빈 용기를 가져와서 필요한 만큼 담아갈 수 있다. 천연성분만으로 만든 제품들이다. 또 못 쓰는 장난감으로 만든 가구들도 판매한다. 이 센터는 금천구를 넘어 광역단위 에너지전환 실천 운동의 거점을 지향한다. 주민 편의시설이기도 하면서, 에너지전환 운동가들이 모이고, 새로운 운동가들을 양성하는 플랫폼이 되는 것이 목표다.

“여기(두 건물)는 주민들이 즐기고 마시면서 함께 이용하는 플랫폼이에요. 음식을 나누는 공유부엌이기도 하고요. 매일매일 이렇게 연구모임들이 벌어지고, 교육 프로그램들이 돌아가요. 아파트에도 커뮤니티 시설이 있지만 30~50년 알고 지낸 우리 마을 주민들처럼 공동체 의식이 강하진 않을 거예요. 우리 마을이 생활 속에서 탄소중립을 실천해보자, 쓰레기를 줄이고 에너지를 절약해보자고 마음을 모을 수 있었던 것도 공동체 의식이 강하기 때문인 거 같아요. 흉보기도 하고 투덜대기도 하지만 따라오고 조금씩 바꿔가는 게 보여요.” 오희옥 ‘더금하에너지전환협동조합’(더금하조합) 이사장이 말했다. 오희옥 이사장은 금하마을 주민협의체 대표도 맡고 있다. 더금하조합은 금하마을 에너지전환 운동을 자립적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2022년 3월 주민 160여 명이 회원·준회원으로 참여해 만들었다.

2024년 8월6일 서울 금천구 금하마을 \'금천에코에너지센터\'를 찾았다. 센터 입구 정면에 기후위기시계가 설치돼있다. 지구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1850~1900년)보다 1.5도 오르는 시점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보여주는 시계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2024년 8월6일 서울 금천구 금하마을 주민공동이용시설 1층에서 한 주민이 빈 깡통을 분리배출기에 넣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태양광·빗물저장소·퇴비발전소… 전기료 0원

서울에서도 손꼽히게 오래된 저층 다세대·다가구 주택촌인 금하마을에서 ‘에너지자립’이라는 말이 나온 건 7년 전쯤이다. 2017~2019년 서울시 에너지자립마을사업과 2019~2021년 국토교통부 도시재생뉴딜사업 등의 지원사업으로 마을은 외형적으로 크게 변했다. 163개 주택 가운데 옥상 58곳(각 3㎾)과 주민공동이용시설(3㎾), 에코·에너지센터(21㎾)에 모두 198㎾ 규모 태양광 발전소(패널)가 설치됐다. 오희옥 이사장이 말했다. “모든 생명이 에너지원이 있어야 자라는 거잖아요. 우리가 호흡하는 게 전부 에너지예요. 금하마을 자체가 에너지원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태양광·빗물저장소·퇴비발전소 등을 만들었죠. 태양광 패널을 올린 가구는 전기요금이 마이너스예요. 에코·에너지센터의 경우 요즘 월 전기요금이 50만원 정도 나오는데, 생산되는 전기 가치는 150만원 정도예요. 향후엔 마을 전기생산 현황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연결할 거예요. 남는 전력을 판매해보려고도 하고 있어요.”

태양광 패널이 설치되지 않은 옥상 80곳엔 텃밭과 퇴비발전소가 들어섰다. 먹고 남은 음식물은 버려지면 쓰레기가 되고 탄소 발생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톱밥·미생물로 끊어졌던 자연의 순환고리를 이어줘 퇴비로 만들면, 채소를 키우는 에너지가 된다. 단절·파편화의 도시에서 연결을 고민하고 고민하다 퇴비발전소가 대안으로 제시됐다. 주민들은 20ℓ 통에 음식물 쓰레기를 담아와 퇴비발전소에 넣은 뒤 퇴비를 만든다. 오희옥 이사장이 이어서 말했다. “과거에는 집 앞 공간에 음식물을 모아다 퇴비를 만들어서 농사지었잖아요. 금하마을 원주민들은 대부분 30년 전엔 안양천변에서 농사지었어요. 1989년 택지개발을 하면서 대토를 받아서 지금처럼 사는 거죠. 주민들 얘기를 프로그램화해서 퇴비발전소가 나온 거예요.”

이뿐만이 아니다. 이 마을에선 내리는 빗물도 그냥 흘려보내지 않는다. 빗물저금통 10t짜리 1개, 1t짜리 12개 등 모두 13개를 설치해 빗물을 생활용수나 텃밭용으로 쓰고 있다. 아울러 마을을 감싸는 금하숲길(2021년 3월 개장)에 흐르는 320m 길이 인공 물길도 빗물을 이용해 흐르게 한다. 길 따라 지하로 2m 깊이 빗물저장소가 설치돼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시설들이 모두 주민 개개인의 에너지전환과 탄소중립 실천을 돕는다.

물론 시설들의 존재만으로 마을의 변화를 설명하기는 부족하다. 이날 주민공동이용시설 2층에 있는 ‘리빙랩’(연구실)에서는 ‘금하 맥가이버’로 불리는 이중호 더금하조합 연구부장이 커피박(커피 찌꺼기)으로 화분·열쇠고리를 만들고 있었다. 이중호 부장은 손재주가 좋아 가끔 마을에서 재능기부를 하다가 석 달 전부터 아예 풀타임으로 연구실에 출퇴근하고 있다. “주민들이 커피박이 버려지는 게 아까우니 한번 활용해보자고 해서 시작했죠. 여러 번 실패하면서 지금의 방법을 알아냈어요. 커피박은 구우면 탈 수도 있어요. 말려서 만들죠. 숯을 섞어보다, 빵가루를 섞어보다 했죠. 커피박 화분에 스칸디나비아 모스를 넣어서 500원, 1천원에 팔기도 해요. 많이 팔리진 않아요.” 이중호 부장이 웃으며 말했다.

2024년 8월6일 서울 금천구 금하마을 주민공동이용시설에서 내려다본 마을 모습. 옥상마다 태양광 패널이 설치되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2024년 8월6일 서울 금천구 금하마을 \'금천에코에너지센터\' 뒤편의 모습. 10t짜리 대형 빗물저금통이 설치돼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마을 한복판 공공시설을 에너지센터로

오며 가며 주민들이 툭툭 던진 아이디어가 이중호 부장의 손에서 제품이 됐다. 태양열을 이용해 팬을 돌려 무를 말리는 기계인 ‘태양열 무 말리기’도 그렇게 만들어졌다. 마을 아이들이 수력발전의 원리를 이용할 수 있는 ‘작은 수력발전기’도 생겼다. 주민공동이용시설 앞 수경재배 시설도 태양열을 이용한 장치다. 붕어와 새우의 배설물을 상추와 부레옥잠이 먹고 물을 정화한다. ‘똥도 자원’이 되는 평범한 자원 순환구조를 이 발명품이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부레옥잠과 새우가 늘어나면 떼어내 판매도 한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한 달에 두 차례 마을에 혼자 사는 노인들을 주민공동이용시설에 불러 식사를 대접한다.

이중호 부장 외에도 재봉틀을 다루는 재주가 있는 주민, 집수리를 잘하는 주민, 기타를 잘 치는 주민들이 나와서 재능을 나눈다. 이들이 때로는 탄소중립과 이어지는 일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그저 동네 주민들을 위한 일을 하면서 연결과 유대를 재확인하는 것이다. “에코·에너지센터 자리에 주간보호시설이나 노인운동시설을 짓자는 의견도 많았어요. 주민들이 마을 한복판에 있는 이 공공시설을 에너지전환 문제를 고민하는 에코·에너지센터로 쓰자고 합의한 것 자체가 굉장히 큰 일이었다고 평가해요.” 금하마을 주민이면서 에코·에너지센터 운영을 총괄하는 센터장인 서은주 금천지시(GC)생태포럼 대표가 말했다.

그의 설명이 이어진다. “에너지전환 운동이라는 것도 주민들과 호흡하지 않으면 없어지는 거잖아요. 그간 많은 지원사업이 그렇게 돈만 쓰고 사라졌어요. 탄소중립 하면 나오는 구호들이 있잖아요. 비닐 안 쓰기, 손수건 쓰기, 가까운 거리 걸어 다니기 등등…. 당장에 이런 걸 실천하자고 하는 것도 중요하죠. 그런데 불편한 생활을 감수할 수 있는 인식을 높이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커피박으로 만든 화분이나 열쇠고리를 갖고 주민들끼리 ‘커피의 99.8%가 찌꺼기로 버려진대’라고 환경 얘기를 하고, ‘(커피 원산지에선) 10살밖에 안 된 아이들이 커피콩을 딴대’라면서 인권 얘기도 하는 거죠. 자주 모이니까 이런 얘기를 할 수 있어요. 저희가 생산한 전기 얘기를 하면서 한전이 전력 판매망을 독점하는 문제도 이야기하고요. 에너지가 생산되는 지역과 그 에너지를 가져다 쓰는 서울이 같은 전기료를 내는 게 정의로운지, 서울까지 오면서 전기가 손실(2022년 기준 송·변전 손실률 3.53%)되는 문제부터 에너지분산정책(2024년 6월 분산에너지활성화특별법 시행)까지 주민들과 얘기를 나눠요.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생물종 다양성의 날(5월22일), 자연순환의 날(9월6일), 채식의 날(10월1일) 등등 환경 관련 날이 되면 거리에서 캠페인도 해요. 매주 토요일엔 30분씩 집집이 불을 끄는 행사를 합니다. 일주일에 한 번 모여서 기후 영화도 보고요. 리빙랩에서 만든 물건들을 보면서 모든 게 에너지라는 걸 한 번 더 인식해보는 거죠.”

2024년 8월6일 서울 금천구 금하마을 주민공동이용시설 옥상의 모습. 작은 텃밭이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보텀업 방식의 에너지전환 시도

금하마을이 처음부터 에너지전환을 모토로 공동체가 모인 건 아니다. 금하마을은 금천구의 월경지(한 행정구역 내에서 격리된 지역)로 소외당하던 곳이었다. 1970년대 뱀이 지나간 것처럼 굽이쳤던 안양천이 강을 곧게 만드는 직강화 공사로 물길이 바뀌면서, 마을의 서쪽에 있던 안양천이 동쪽으로 옮겨 갔다. 이때 지형적으로 금천구로부터 떨어져 나가 소외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2013년 서울시 도시기반본부가 일방적으로 ‘시흥대교를 2m 더 높인다’는 계획을 세우면서 주민들은 주민협의체를 구성해 반대 운동에 나섰다. 시흥대교와 인근 도로가 높아지면 마을이 상대적으로 저지대가 된다는 게 반대 이유였다. ‘금하마을’도 이때 주민들이 지은 이름이다. 주민들은 서울시 도시기반본부와 17차례 간담회를 열었고, 결국 시흥대교에서 경사로를 놓아 인근 도로는 그대로 두는 방식으로 설계를 변경하기로 했다. “금하마을의 생존권과 박탈감 회복에 대한 절규였다. 그 경험이 지금까지 금하마을 사람들이 힘과 재능을 모아 살길을 찾는 동력이 됐다”고, 오희옥 이사장이 말했다.

주민협의체는 시흥대교 설계 변경의 결실로 서울시로부터 주거환경관리사업(2014~2017년)을 따냈다. 마을의 빛을 가리던 대로변 방음벽을 유리 벽으로 바꾸게 했고 원래 마을을 감싸던 안양천으로 통하는 횡단보도가 설치됐다. 오희옥 이사장과 서은주 대표는 마을 살리기 운동이 성공한 전국의 마을들을 찾아다니기도 했고, 2018년에는 도시재생 분야 권위자인 최찬환 전 서울시립대 교수(건축학)를 찾아가 금하마을 도시재생사업 총괄을 맡게 했다. “금하마을 도시재생사업을 맡게 되고, 주민들이 열심히 나서니, 저도 신이 나서 일주일에 3번 정도 풀타임으로 일했어요. 보통 도시재생 총괄코디네이터들이 한 달에 한두번 가서 회의할 뿐 그렇게 자주 가진 않거든요. 정말 많이 개선됐는데, 전부 주민들이 협조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이었죠. 그런 점에서 전국적인 재생사업 표본 마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최 전 교수의 평가다.

최 전 교수는 금하마을의 에너지전환 시도가 주민 주도의 보텀업(bottom-up) 방식으로 이뤄진 점에 대해서도 말을 이어갔다. “(에너지나 기후위기 관련) 정책만 돌아가고 일반 국민은 그 중요성을 모른다면 실행력이 없는 거죠. 금하마을처럼 풀뿌리에서 시작하는 걸 정책이 도와줘야죠.”

하지만 금하마을과 같이 에너지자립마을이 유지되고 있는 건 특별한 경우다. 2011년 서울시에서 시작한 에너지자립마을사업은 2020년부터 자치구 주도 사업으로 바뀌어서 2024년 현재 운영 현황도 파악하기 어렵다. 서울시는 2021년까지 에너지자립마을을 100개 이상 만들었는데, 2022년 마지막으로 낸 통계에서 사업이 유지되고 있는 마을은 31개 정도다. “지원이 끊어지니 많은 마을이 무너지는 데 6개월도 안 걸렸어요. 서울시 주도로 만들었으니 서울시가 빠지면 무너지는 게 당연하죠.” 한국 최초의 에너지자립마을로, 2010년부터 에너지전환 공동체 운동을 이어가고 있는 서울 동작구 ‘성대골마을’(상도3·4동)의 김소영 성대골사람들 대표의 지적이다.

2024년 8월6일 서울 금천구 금하마을 주민공동이용시설 1층에서 주민들이 모여서 함께 식사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따라 하다보니 눈이 뜨여요”

이런 상황에서 7월30일 환경부는 신규 댐 후보지 14곳을 발표했고, 오세훈 서울시장은 8월9일 신혼부부 주택을 명분 삼아 그린벨트 해제를 발표했다. “에너지전환 문제는 사회적 최우선 과제로 놓고 각성해야 풀릴 문제예요. 다 같이 해결하려고 여러 방면에서 얘기를 시작해야 할 때예요. 에너지전환 운동의 핵심은 삶이에요. 에너지전환을 위해 사람들과의 관계를 만들어내는 거죠. 에너지전환만 얘기하기보다 공동체 의식이 만들어지는 게 중요해요.” 김소영 대표가 덧붙였다.

다시 금하마을로 돌아가 주민공동이용시설을 찾은 주민들에게 ‘에너지자립마을을 하자는 데 뜻을 모은 이유’를 물었다. 이금희씨가 말했다. “여기는 도시지만 다른 데 같지 않아요. 서로 어느 집에 뭐가 있는지 아주 잘 알아요. 에너지자립마을이다, 도시재생이다, 여기 모여서 마을을 위하는 게 좋아요. 탄소중립 같은 것도 자꾸 따라 하다보니까 눈의 뜨여요. 이제는 생각해서 음식물 쓰레기로 퇴비를 만들게 되고요. 재미있어요.”

이금희씨의 이 말에 1.5도 라이프스타일 살기가 단순히 ‘한 달’ 실험에 그치지 않고 일상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개인의 노력만이 아니라 금하마을과 같은 공동체 건설, 자연과 함께 순환하는 지역경제, 국가와 행정의 적절한 지원과 기업의 노력이 함께 어우러져야 한다는 명제가 모두 담겨 있었다.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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