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동해유전, 기후영향평가 비껴가” 평가 의무화 추진

옥기원 기자 2024. 8. 19.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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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혜 의원, 개정안 발의
온실가스 배출량, 정부 발표대로라면
나라 연간 전체 배출량의 아홉배 달해
정부가 포항 영일만 석유 탐사와 관련해 올해 연말부터 실제 시추탐사에 나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사진은 동해 가스전 북동쪽 44㎞ 심해지역에 있는 방어구조(울릉분지 6-1광구 중·동부지역)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까지 나서 올 연말부터 경북 포항 영일만에서 시작할 동해 석유·가스전 탐사 시추 사업(‘대왕고래 프로젝트’)을 띄우고 있는 가운데, 이 사업이 기후변화에 미칠 영향을 평가받게 하는 법률 개정안이 국회에서 발의됐다. 이미 국외에선 법원을 중심으로 막대한 온실가스 배출량을 이유로 새로운 화석연료 개발 사업에 제동을 거는 사례들이 나오고 있는 추세다. 환경단체들은 대왕고래 프로젝트 과정에서 우리나라 전체가 한 해 동안 배출하는 탄소량의 9배가 배출될 것으로 우려한다.

박지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6일 석유·가스 탐사 등 해양을 이용·개발하는 사업에 대해 온실가스 배출 및 감축 효과와 저감대책의 적정성 등을 따지도록 하는 내용의 ‘해양이용영향평가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우리나라는 2022년 하반기부터 ‘탄소중립·녹색성장법’에 의거해 공항과 항만, 산업단지 건설 등 국가의 주요 계획이나 대규모 개발사업의 기후변화 영향을 미리 평가하고 대책을 마련하도록 하는 ‘기후변화영향평가’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다만 해저광물 채취 등 해양 이용·개발 사업은 해양이용영향평가법의 적용을 받는데, 이 법에는 기후변화 영향을 평가하는 규정이 없다.

개정안은 “해양이용·개발 사업으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 및 감축 효과와 온실가스 배출이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새로 규정하고, “해양이용·개발에 따른 온실가스의 배출량과 온실가스 저감대책의 적정성”을 해양이용영향을 평가하는 항목에 넣도록 했다. 석유·가스 추출하는 사업에서 나오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미리 조사할 뿐 아니라 그것을 감축할 대책까지 만들어 그 적정성을 평가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또 해양환경을 보전하겠다는 목표치를 ‘탄소중립·녹색성장법’에서 규정하는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와 연동해 설정하도록 했다. 사실상 현행법에 기후변화영향평가 제도를 새로 추가한 수준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실에서 열린 국정브리핑에 참석해 동해 석유·가스 매장과 관련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외에선 온실가스 배출량을 고려하지 않은 석유 개발 계획에 법원이 제동을 거는 사례가 나오는 등 점차 기후변화영향평가를 의무화하는 분위기다. 영국 대법원은 지난달 개트윅 공항 인근 유전의 석유생산 확대를 허가한 서레이 카운티 의회가 “기후변화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지 않았다”며 기존 사업 승인을 파기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석유 시추 시 배출되는 탄소뿐 아니라 해당 석유를 사용할 때 발생하는 추가 탄소량을 고려해 사업 추진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영국 환경단체 월드액션그룹의 요구를 받아들인 판단이다. 지난해 8월 미국 몬태나주 법원은 화석연료 개발을 승인해준 주 정부를 상대로 어린이·청소년들이 제기한 소송에서 “기후변화를 고려하지 않고 석탄·가스 생산 계획을 승인해준 것은 미래 세대가 깨끗한 환경에서 살아갈 주 헌법상 권리를 침해했다”는 취지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린 바 있다.

화석연료 개발은 시추·추출하는 과정에서 온실가스를 배출할 뿐 아니라 추출 결과물인 화석연료 전부가 연소되며 온실가스를 배출하기 때문에 기후변화에 주는 영향이 막대하다. 비영리 기후단체 ‘플랜1.5’는 동해 화석연료 매장 추정량이 최대 140억 배럴(석유가 4분의 1, 가스가 4분의 3)이라는 정부 발표를 근거로 ‘대왕고래 프로젝트’ 시추 과정에서 약 10억5천만톤, 추출한 연료가 연소하면서 약 47억7750만톤 등 전체 58억2750만톤의 탄소가 배출될 것이라 분석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석유·가스 전체 주기 배출량 배출계수를 적용해 계산한 결과다. 이는 2022년 한국 전체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인 6억5450만톤의 아홉 배에 달한다.

류종성 안양대 해양바이오공학과 교수는 “기존 기후변화영향평가 제도의 사각지대였던 해저 채굴 사업에서도 온실가스 배출량을 평가하는 모델을 수립해야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2030년까지 2018년 대비 탄소량 40% 감축) 약속을 이행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윤세종 플랜1.5 변호사는 “개정안이 통과할 경우 석유·가스 채굴 때 기후변화 리스크 등을 고려하지 않고 졸속으로 사업을 밀어붙이는 악순환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옥기원 기자 o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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