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끼손톱만한 '칩' 하나로 2000억 잭팟…리모콘 시대 끝났다 [최형창의 中企 인사이드]
음성만으로 가전 제어…리모콘 시대 종말
글로벌 가전 MCU 4위…AI 칩으로 세계 1위 도전
반도체 경기 불황 속 2분기 흑자 전환 성공
새끼 손톱만 한 반도체 칩을 에어컨 앞에 세워뒀다. “에어컨 켜. 온도 내려. 다시 올려줘.” 사용자의 말 한마디에 에어컨은 즉시 반응했다. 가전제품 리모콘 조절 시대의 종말이 눈 앞에 펼쳐지는 순간이었다. 최원 어보브반도체 대표는 지난 16일 서울 대치동 사무실에서 “사용자의 음성을 이 칩이 학습하고 모델링한다”며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소리와 사용자의 목소리를 구분할뿐 아니라 가족 목소리만 인식하게끔 설정할 수도 있는데 이 칩을 가전 안에 집어넣기만 하면 된다”고 말했다.
토종 팹리스 자존심 어보브반도체
코스닥시장 상장사인 어보브반도체는 가전제품 두뇌 역할을 하는 마이크로컨트롤러유닛(MCU) 분야 토종 팹리스(반도체 설계전문 기업)의 자존심이다. 국내 가전 분야 MCU 공급 기업 중에서는 독보적인 존재다. 전세계적으로 비교하면 르네사스, 도시바, 마이크로칩에 이어 4위권일 정도로 높은 수준의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최 대표는 “매년 5억개 칩을 삼성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를 통해 만들어 전세계 가전제품 회사에 공급한다”고 소개했다.
이러한 어보브반도체가 지난달 기존 MCU에 내장형(온디바이스) 인공지능(AI) 기능을 탑재한 칩을 선보이며 글로벌 시장 도전장을 내밀었다. 최 대표는 “기존 가전제품 리모콘이나 홈 사물인터넷(IoT)에도 음성 인식 기능이 있지만 인식률이 낮은 편”이라며 “이번에 나온 칩은 AI 기능이 탑재돼 90% 이상의 인식률을 자랑한다”고 강조했다. 이 제품은 내년부터 양산에 들어간다.
LG시절부터 MCU 한우물, 중국 시장도 개척
LG반도체 출신인 최 대표는 1996년 그린칩스를 창업했다. 현재 어보브반도체는 최 대표가 2006년 하이닉스 전신인 매그나칩 반도체 사업부를 인수해 설립했다. 그는 “LG반도체 MCU사업부 창단 멤버였는데 이 사업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고 돌아봤다.
어보브반도체가 국내 최고 MCU 전문 팹리스로 성장할 수 있는 배경에는 삼성전자와 중국 시장이 있다. 최 대표는 반도체 설계 관련 연구개발(R&D)못지 않게 시장 동향을 파악하고, 산업을 꼼꼼하게 분석했다. 그는 “삼성전자 생활 가전은 미국 일본 MCU를 주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공급망 관점에서 경쟁력 있는 국내 회사가 있으면 좋을 것으로 판단해 우리가 내실을 다져왔다”며 “2011년 삼성반도체에서 MCU 공급 중단을 선언했을 때 이를 대체할 수 있는 기회를 얻어 지금까지 신뢰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세계 가전시장을 제패하면서 어보브반도체도 함께 성장하고 있다.
최 대표는 창업 초기인 1998년부터 중국 시장에 과감히 진출해 안정적인 수익 창출 구조를 만들었다. 그는 “중국에도 지역 반도체 회사가 있지만 기술력이 뛰어난 수준은 아니었다”며 “반면 우리 MCU는 유럽, 일본, 미국 보다 기술적으로 뒤지지 않으면서 가격은 합리적이니 중국 시장에 포지셔닝을 하기 좋았다”고 부연했다.
2분기부터 턴어라운드… "새로운 시장 선점"
어보브반도체는 중견기업으로는 이례적으로 KAIST 등 6개 대학, 8개 연구실과 산학 연계 R&D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최 대표는 “우리가 생각하는 미래 과제를 주고, 그 과제를 수행하는 교수들한테 지원을 했다”며 “학생들은 우리 회사에 와서 배우고 전부 발표까지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기업에선 일부 학과에 후원금만 지원해주지만, 우리처럼 실무적인 프로젝트를 직접 수행해보게 하는 건 거의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어보브반도체의 올해 상반기 매출은 1254억원, 영업손실은 8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부터 이어온 반도체 경기 불황 여파가 1분기까지 이어졌고, 2분기부터 흑자전환에 성공하며 반등했다. 최 대표는 “글로벌 MCU 시장 규모가 30조원”이라며 “AI MCU를 들고 가전 분야 세계 1위에 올라설뿐 아니라 이를 접목할 수 있는 새로운 시장을 선점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최형창 기자 call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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