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용 문 닫은 네카오, 돈줄 끊긴 스타트업…개발자 '혹한기'[판교의 위기②]
수요 높은 4~6년차 개발자 연봉 상승률 둔화
허리띠 졸라매는 기업들
신규·장기개발 올스톱
스타트업, 입사자보다 퇴사자가 더 많아
스타트업 VC 올해만 6곳 자본 잠식 빠져
# 클라우드 스타트업 A사의 올해 신입 개발자 채용 경쟁률은 105대 1이었다. 직원 20명인 이 회사가 머신러닝 신입 개발자에게 제안한 초봉은 4000만원. A사는 비교적 낮은 연봉과 인지도에 구인난을 걱정했지만, 전공자부터 비전공자까지 서류가 쏟아졌다.
A사 대표는 “지난 몇 년간 국비 장학금으로 개발자 학원에서 코딩을 배운 비전공자까지 합세하며 개발 인력은 늘었는데 그들이 취업 시장에 뛰어들 때가 되자 ‘개발침체기’가 왔다”며 “대기업은 4~7년 차 경력자만 찾으니 우리 같은 중소기업에도 지원자가 몰린 것 같다”고 말했다.
개발자들의 구직난은 판교의 위기, IT 산업의 위기를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올해 7~9년 차 개발자 연봉 줄었다
코로나 이후 연봉 인상과 인재 쟁탈전에 불을 지폈던 IT 업계의 개발자 붐이 사그라들고 있다. 대기업은 투자보다 생존에 집중하면서 신입 공채의 문을 닫았고 스타트업 시장은 고금리 여파로 투자 유치에 난항을 겪으며 입사자보다 퇴사자가 많은 현실이다.
인공지능(AI) 기술의 발달로 일부 초급 개발자의 역할을 AI가 하게 되면서 대리급 경력직이 아니면 취업 문턱을 넘기도 힘들어졌다.
네이버의 한 AI 개발자는 “개발 호황기에 개발자 양성 학원 붐이 일면서 비전공자 신입 개발자가 늘었고 스타트업, 이커머스 업계에서 빠져나온 개발 인력까지 겹치면서 ‘웃돈을 얹어가며’ 개발자를 모셔오는 시기는 끝났다”면서도 “하지만 AI 개발 역량과 서비스 이해도를 갖춘 4~7년 차의 ‘진짜 실력자’를 찾는 건 여전히 어렵다”고 말했다.
실제 개발자들의 연봉 상승폭은 지난해 상승률에 비해 크게 줄었다. 인적자원(HR) 기업 원티드랩이 2024년 1분기 IT·플랫폼·스타트업 업계 종사자 약 3만9000명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다.
개발자 이직 시 평균 연봉은 올해 1분기 기준 7868만원으로 작년 평균 연봉에 비해 4.8% 높았다. 개발자 직군 연봉 상승폭은 2022년 2.5%에서 지난해 7.9%로 뛰었다가 올해 들어 대폭 줄었다.
가장 수요가 높은 4~6년 차 개발자마저 연봉 상승률 둔화세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이들의 올해 1분기 기준 연봉은 5564만원으로 작년 평균 연봉에 비해 3.3% 늘었다. 반면 2022년은 11.7%, 2023년은 5.6% 상승했다.
7~9년 차의 연봉은 오히려 줄었다. 이들의 평균 연봉은 2021년 5302만원에서 2022년 5882만원으로 8.9%, 2023년 6396만원으로 8.7% 뛰었다. 하지만 올해 1분기 연봉은 6343만원으로 전년 대비 0.8%가량 후퇴했다.
돈 되는 것만 ‘KPI’ 넣는다…
신규·장기개발 올스톱
지난 3년간 개발자 연봉이 급격하게 뛰었고 최근 기업 실적이 흔들리고 있는 만큼 상승률이 주춤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인재 쟁탈전이 치열했던 2022년에는 기업이 연봉을 높여도 IT 업계가 구인난이 이어졌다.
2022년 4월 사람인이 기업 383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64.2%가 IT 인력 채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답했다. 잠재적인 이직 수요 역시 그만큼 컸다. 이런 상황에서 당시 개발자를 빨아들이는 IT 대기업들의 연봉은 더 파격적으로 올랐다. 카카오는 2022년 임직원 연봉 총액을 15% 인상했고 네이버 역시 평균 10% 인상 카드를 꺼냈다. 게임업계는 이미 2021년 연봉 인상 체계를 파격적으로 개편했고 가상화폐 거래소 등 신흥 연봉 강자들도 등장했다.
IT 업계를 중심으로 이뤄지던 인재 쟁탈전은 전 산업계로 번지면서 이직 도미노를 촉발했다. 디지털전환에 한창인 금융업계와 유통업계는 물론 스타트업과 제조업계도 개발자 모시기에 나서면서 전 직군으로 연봉 인상이 확산됐다.
원티드랩에 따르면 HR, 마케팅, 인사 등 비개발자 직군의 연봉은 2021년 4963만원에서 2022년 5476만원으로 10.3% 뛰었다. 하지만 인상률은 2023년 2.4%, 2024년 1분기에는 0.8%로 급락했다.
개발자 황금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2022년과 2024년의 주가 그래프만큼이나 기업들의 상황도 급변했다. 코로나 시절 비대면 서비스가 늘고 플랫폼 시장이 급격하게 성장하면서 기업들은 신규 개발에 뛰어들었다.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고 AI 등 혁신 기술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개발 인력이 대거 필요했다. 하지만 수익과 주가가 동시에 악화하며 비용 줄이기에 나선 기업들은 시간과 돈이 드는 장기 개발 프로젝트를 보류하거나 취소했다.
한 이커머스 기업 개발자는 “개발은 오픈 전까지 다 인건비인데 지금은 회사가 돈이 없어서 당장 매출이 나올 수 있는 것만 KPI(성과지표)에 넣고 오랜 기간 인력을 투입해야 하는 장기 개발 건은 다 취소하거나 보류하고 있는 상황이다”고 말했다.
2022년까지는 기업들이 기술 경쟁력에 투자했다면 이제는 기업들의 목표가 ‘생존’이 되면서 IT 역량 강화의 목적도 달라졌다.
핀테크 업계에서 일하는 C 씨는 “예전에는 삼성, LG 등 대기업 시스템통합(SI) 계열사의 목적이 ‘유지보수’라 개발자들이 개발 역량을 키울 수 있는 스타트업이나 테크 기업으로 몰리는 경향이 있었다"며 "요즘에는 테크 기업들도 ‘원가절감’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네이버·카카오, 신입 공채 꾸준히 줄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개발자들에게 ‘웃돈을 주고’ 모셔가는 시대는 지났다. ‘빅테크 투톱’인 네이버와 카카오 모두 하반기 신입 공채 계획이 없다. 이미 8월 중순에 접어든 만큼 업계에서는 양사의 올해 공개 채용이 사실상 끝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카카오는 상반기에도 공채를 진행하지 않았다.
2020년부터 3년간 상반기 채용 연계형 인턴을 진행했으나 지난해에는 하반기로 일정을 연기했다. 하반기에 진행했던 신입 개발자 공채는 지난해부터 열리지 않고 있다.
네이버 역시 매년 신규 채용 인원을 줄이고 있다. 네이버의 환경·사회·지배구조(ESG) 보고서에 따르면 신규 채용 인원은 2021년 838명에서 2022년 599명, 2023년 231명으로 매년 줄어들었다. 카카오 역시 2021년 994명, 2022년 599명, 2023년 231명으로 감소했다.
지난해 구조조정 소용돌이가 불어닥친 게임업계는 올해도 몸집 줄이기에 한창이다. 2분기 적자로 돌아선 엔씨소프트는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하며 인력 조정에 나섰다.
앞서 엔씨는 연내 4000명 중반까지 인력을 감축할 계획으로 권고사직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지난해 12월 말 기준 엔씨 임직원 수는 5023명이었다. 이와 함께 전체 임원의 20%에 해당하는 인원의 계약을 종료한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에 따르면 넥슨코리아에서는 대기발령 상태인 개발자들이 100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흥행 성적을 내지 못하고 서비스를 종료했던 게임에 몸담았던 이들이다. 넥슨은 지난해까지 세 자릿수 규모의 채용연계형 인턴을 통해 대규모 신입 채용을 했지만 올해는 내부인력의 재배치가 이뤄지지 않은 만큼 채용 규모가 줄어들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스타트업, 입사자보다 퇴사자가 많았다
스타트업 시장에는 더 거센 고용한파가 몰아치고 있다. 스타트업 정보업체 더브이씨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스타트업의 퇴사자 수가 입사자 수를 앞질렀다. 더브이씨가 투자 유치 이력이 있는 스타트업 6191곳을 조사한 결과다. 올 상반기 스타트업 시장 전체 고용 인원은 18만482명으로 지난해 말 대비 1.2% 줄었다.
이들 기업의 올 상반기 입사자는 4만5348명, 퇴사자는 4만5452명으로 104명이 순유출되는 ‘데드크로스’ 현상이 발생했다.
더브이씨가 관련 데이터를 수집하기 시작한 2016년 이후 스타트업들의 퇴사자 수가 입사자 수보다 많은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벤처 투자 호황기였던 2021년에 스타트업 입사자는 10만845명, 퇴사자는 6만8324명으로 입사자가 퇴사자보다 3만2521명 많았다.
이 같은 고용 인원 감소는 퇴사자가 늘어난 것보다 입사자가 줄어든 게 주된 원인인 것으로 분석된다. 올해 2분기 스타트업들의 퇴사자 증가율은 전년 동기 대비 1%였지만 입사자 증가율은 -5.3%를 기록했다. 더브이씨는 “최근 스타트업 투자 시장이 침체되면서 허리띠를 졸라매기 시작한 스타트업들이 신규 채용 규모를 대폭 줄이면서 나타난 현상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올해 작년보다 시장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감과 달리 스타트업 시장은 더 얼어붙었다. 스타트업이 사업 확장과 시장 경쟁을 위해 무리한 투자를 하며 적자와 부채가 쌓이는 상황에서 자금줄마저 말랐기 때문이다.
더브이씨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스타트업 대상 투자 건수는 전년 동기 대비 32% 급감했다. 투자금액은 19.5% 줄어들었다.
올해 VC 8곳 라이선스 말소, 6곳은 자본잠식 빠져
스타트업의 ‘돈줄’인 VC 업계가 고금리 여파로 투자금을 줄이면서 보릿고개가 이어지고 있다. 한국벤처투자협회에 따르면 올해 들어 6월까지 투자실적이 ‘0’인 VC만 60곳에 달했다.
올해 자본잠식에 빠져 경고를 받은 VC는 6곳이었다. 이런 추세라면 지난해 자본잠식에 빠진 VC 수(8곳)를 넘어설 가능성이 크다.
한국벤처투자협회에 따르면 자본잠식에 빠진 VC 수는 ▲2020년 1개 ▲2021년 4개 ▲2022년 4개로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VC는 설립 근거법인 ‘벤처투자 촉진에 관한 법률’(벤처투자촉진법)에 따라 자본잠식률 50% 미만을 유지해야 한다. 기준을 미충족할 시 중소벤처기업부는 자본금 증액, 이익 배당 제한 등 경영 개선 조치를 부과한다. 이후 9개월이 지나도록 이를 이행하지 못한다면 VC 등록 면허가 말소된다.
올해 상반기 이렇게 라이선스가 만료된 VC는 8곳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대표 창업지원사업인 팁스(TIPS) 지원금마저 지급이 중단됐다. 스타트업들은 자금줄이 막힌 상황에서 인력 구조조정과 임금 축소에 나서고 있지만 당장 수억원의 자금을 마련하기엔 역부족이다.
업계에 따르면 팁스 공식 운영기관인 엔젤투자협회는 연말까지 팁스 지원금 지급이 중단된다고 관련 스타트업들에 지난 7월 통보했다. R&D 지원 예산으로 직원 인건비 지급 및 사업 대금을 마련했던 스타트업들이 올해 하반기에 예정된 지원금을 한 푼도 못 받게 된 것이다. 지난해 시작해 내년(2025년) 종료되는 599개 과제가 대상이다.
이 사업은 민간 투자사가 초기 기술기업에 선투자하면 정부 자금을 매칭(최대 5억원)한다. 첫해에는 3억원, 2년 차에는 2억원을 지원한다. 하지만 당장 지원금이 중단되면서 통상 민간 금융기관의 대출이 어려운 팁스 선정 기업들은 벼랑 끝에 내몰린 상황이다.
예산 지원 중단 전 아무런 사전 예고 없이 통보를 받은 만큼 급하게 자금을 마련하기도 어려운 처지에 놓였다.
이기대 스타트업 얼라이언스 센터장은 “세수 부족으로 예산이 부족해 올해 하반기 정부 지원금이 내년으로 미뤄진 것으로 안다”며 “작년부터 투자 혹한기가 장기화될 것이라는 걸 예상한 스타트업들이 살아남기 위해 수익성 위주로 사업구조를 재편하고 있지만 고금리 상황이 지속되면서 VC까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만큼 ‘금리인하’가 가장 큰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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