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 과학이야기] 삶의 무게와 측정표준

박주근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측정표준서비스그룹장 2024. 8. 1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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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일요일 끈적한 더위를 피해 보겠다는 생각으로 자동차의 에어컨을 한껏 틀어 놓고 집 주변을 돌아다니다가 허리가 굽은 노인이 폐지를 줍는 모습을 목격했다.

시각을 달리하여, 그러면 삶의 무게를 판단하는 기준인 '돈'을 대체할 수 있는 물리적인 실체에 대한 정량적 판단기준에는 무엇이 있을까? 약간의 비약에 대한 비난을 감수하자면, '측정표준'이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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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근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측정표준서비스그룹장

어느 일요일 끈적한 더위를 피해 보겠다는 생각으로 자동차의 에어컨을 한껏 틀어 놓고 집 주변을 돌아다니다가 허리가 굽은 노인이 폐지를 줍는 모습을 목격했다. 예전만큼 흔하지 않지만, 요즈음에도 폐지를 수집하는 나이 드신 분들을 종종 목격할 수 있다. 당사자의 마음이 어떻든, 이런 분들을 보면 무거운 삶의 무게가 느껴진다. 무엇 때문에 이러한 감정에 사로잡히게 되는 걸까? "아, 형편이 어려워 생활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게 폐지를 줍고 계시나 보다"라고 막연히 추측해 본다. 이는 아마도 경제적 동인이 마음속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삶의 무게를 정성적으로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것은 아마도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굳이 경제적 관점에서 세상을 둘러보면 이처럼 무거운 삶의 무게에 허덕이는 사람들을 우리 주위에서 흔하게 발견할 수 있다. 기실은 조직이라는 틀 안에서 사회생활을 하는 우리는 모두 '돈' 때문에 갈등과 불신을 자초하고 스스로 삶의 무게를 더한다. 피할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시각을 달리하여, 그러면 삶의 무게를 판단하는 기준인 '돈'을 대체할 수 있는 물리적인 실체에 대한 정량적 판단기준에는 무엇이 있을까? 약간의 비약에 대한 비난을 감수하자면, '측정표준'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삶의 무게를 판단하는 정성적 기준인 돈과는 달리 측정표준은 정량적으로 제품의 품질을 확인하거나 공정한 상거래의 기준으로 활용되는 과학기술 연구 활동의 결과물이다. 예컨대 산업현장에서 사용하고 있는 제품의 품질(혹은 정해진 양)을 측정하는 기기가 잘못된 측정값을 보인다면, 정부에서 허용한 판매기준을 만족하지 못하는 제품도 시장에서 판매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소비하는 사람들의 건강이나 안전 또는 경제적 후생에 자칫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물론 이는 산업현장에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최근 들어서는 삶의 질과 관련한 화학과 바이오 분야의 측정표준이 특히 공공분야에서 날로 그 중요성을 더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공공분야 혹은 산업현장에서 사용하고 있는 측정기기가 올바른 측정 결과를 나타내는지 어떻게 담보할 수 있을까? 현장에서 사용한 측정기기를 통해 측정한 값과 이보다 훨씬 정확하고 정밀한 측정기기가 측정한 값을 비교하여 판정하는 방법 이외에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 왜냐하면 세상에 절대적 진리가 없다고 여겨지는 것처럼 측정값도 절대적인 참값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공감대가 사람들 사이에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KRISS)에서는 국내에서 가장 정확하고 정밀한 측정표준을 개발하여 보급함으로써 공공분야나 산업현장에서 측정한 값의 신뢰성을 보장한다. 이때 '보급'은 산업현장에서 측정한 값이 얼마나 정확한지에 대한 판단기준으로 사용되는 표준물질의 형태로 제공하거나, 산업현장에서 운용하고 있는 측정기기와 이보다 더 정확한 측정표준기가 각각 측정한 결괏값을 서로 비교하는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측정표준은 소비자나 생산자의 경제적인 활동뿐만 아니라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 기여해 우리 모두의 '삶의 무게'를 덜어주는 또 다른 형태의 '돈'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야성적 충동이나 감성에 상당 부분을 의존하는 돈과는 달리 '과학적 활동에 기초한' 돈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이 고된 삶의 무게를 덜 수 있도록 '돈'도 많이 벌고 '측정표준'도 많이 보급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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