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판 홍진호’ 이젠 털었네요
이정호 기자 2024. 8. 19. 06:10
만년2위→3전4기
태백장사 타이틀
장영진
지난 7월 충북 보은에서 열린 ‘위더스제약 2024 민속씨름 보은장사씨름대회’ 태백장사(80kg 이하) 결정전. 모래판에 오르는 청 샅바의 장영진(28·영암군민속씨름단)은 누구보다 절박했다. 장영진은 이때까지 한 번도 장사 타이틀을 얻지 못했다. 2021년 해남대회, 2023년 단오대회, 2024년 설날대회까지 세 차례 결승 무대에 올랐지만 모두 우승에는 실패했다.
이날 경기도 쉽지 않았다. 장영진의 상대는 올해 설날대회 8강전에서 접전을 펼친 김윤수(용인특례시청)였다. 비슷한 스타일의 두 선수가 만나자 쉽사리 승부가 나지 않았다. 첫판이 중요했지만 김윤수의 역습 안다리 기술에 걸려 첫판을 내줬다. 번번이 결승에서 좌절했던 장영진에게 패배감이 엄습했다.
다행히 두 번째 판을 극적으로 잡은 게 승부처였다. 계속되는 장기전 모드에서 들배지기에 실패한 장영진은 뒤이어 상대 오른발을 잡아채려고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그런데 빠져나가는 김윤수의 왼발을 걷어차다시피 한 행운의 왼발 발뒤축걸기가 걸리며 승부의 균형을 맞출 수 있었다.
매 경기 길어진 승부가 최종 다섯 번째 판까지 이어지자 두 선수 모두 모래판에 주저앉을 만큼 체력이 떨어졌다. 마지막에 웃은 건 첫 장사를 더 놓칠 수 없다는 간절함을 승부에 녹인 장영진의 차지였다. 장영진은 연장 끝에 밀어치기로 김윤수를 먼저 모래판에 눕힌 뒤 크게 포효했다.
장영진은 ‘3전4기’ 끝에 생애 첫 태백장사 타이틀을 안았다. 장영진은 본지와 전화 인터뷰에서 “대학 졸업 후 6년 차에 경험한 첫 우승이다. 꿈만 꾸던 목표였다. 솔직히 말하면 결승전 트라우마 때문에 내가 우승 못 할 줄 알았다. 늘 마지막에 집중력이 떨어졌는데 이번에는 ‘그냥 해보자’는 생각으로 붙었다”고 말했다.
장영진은 지칠 대로 지친 상황에서 벤치에서 김기태 감독과 윤정수 코치, 동료들의 끊임없는 자극에 승부욕을 유지했다. 승리 뒤에는 감독, 코치 앞에 가서 “저도 해냈습니다”고 소리쳤다.
장영진은 씨름을 시작한 뒤로 만년 2등이었다. 그래서 동료들은 ‘홍진호’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로 유명했던 홍진호는 당시 최고의 선수 중 하나였지만 우승 문턱에서는 많이 졌던 ‘2인자’였다.
장영진은 “상황을 돌이켜 보면 결승에 올라가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 같다. 나도 모르게 여기까지만 와도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지고 나서 엄청나게 분해 하는 내가 한심했다. 언젠가 그걸 꼭 넘어서고 싶었다”며 첫 장사 타이틀을 따낸 감격을 이야기했다.
경북 상주 출신인 장영진은 대구 비산초등학교 4학년 때 씨름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 단지 공부가 하기 싫어 간식도 많이 주는 씨름을 방과 후 동아리로 가입했다. 그런데 처음 나간 대구 지역 대회에서 상대 선수들을 가볍게 넘기고 우승하며 인생이 바뀌었다. 장영진은 “대회가 끝난 뒤 스카우트 제의가 왔다. 처음에는 달가워하지 않으시던 어머니가 ‘(씨름부있는 학교로)전학 가야 한다’고 하셨다. ‘씨름을 하기 싫다’고 했는데 강제로 전학을 갔다”고 떠올렸다. 장영진은 씨름 엘리트 코스를 밟을 수 있는 매천초로 전학을 갔다.
그렇지만 최고 결과는 늘 ‘2위’였다. 장영진은 “대학교 4학년 때 제주도에서 열린 시도대항전에서 처음 1등을 했다“고 밝혔다.
장영진은 스스로를 “크게 두드러지지 않은 선수”라고 표현한다. 그렇지만 장영진은 영신고-대구대를 졸업한 뒤 2019년 씨름 명문 영암군민속씨름단에 입단했다. 누구보다 성실하게 훈련하고 근성을 보인 결과다. 그는 “대학 4학년 때 영남대 전지훈련에서 영암군민속씨름단 김기태 감독님을 처음 뵀다. 이 팀에 들어오고 싶어서 감독님의 눈에 들기 위해 연습 때 열심히 했다. 그때 영암군민속씨름단 선수도 이겼다“고 말했다. 장영진은 태백장사를 따낸 뒤 김기태 감독을 얼싸안고 모래판에서 기뻐했다. 영암군민속씨름단은 2022년 10월 안산 대회에서 우승한 허선행 이후 1년 9개월 만에 태백장사를 배출했다.
장영진은 2024년 특별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지난 2월 3살 연하의 김하린 씨와 결혼했다. 그리고 이제는 두 달된 아들 하늘까지 셋이 가정을 이뤘다. 득남과 함께 곧바로 첫 태백장사에 올랐으니 그야말로 아들이 복덩이다. 장영진은 “올해 결혼과 출산, 또 내년에 군대 가기 전에 장사에 오른 것까지 모든 것이 선물”이라며 기분 좋게 웃었다.
내년 3월 입대 예정이라는 장영진은 “장사를 한 번 해보니 더 하고 싶다. 입대 전까지 일단 한 번 더 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며 더 커진 목표를 밝혔다.
이정호 기자 alpha@kyunghyang.com
태백장사 타이틀
장영진
지난 7월 ‘보은장사 씨름대회’서 80㎏ 이하급 연장 혈투끝 첫 V
6월 태어난 아들이 복덩이…“내년 입대전 한번 더 우승하고파”
지난 7월 충북 보은에서 열린 ‘위더스제약 2024 민속씨름 보은장사씨름대회’ 태백장사(80kg 이하) 결정전. 모래판에 오르는 청 샅바의 장영진(28·영암군민속씨름단)은 누구보다 절박했다. 장영진은 이때까지 한 번도 장사 타이틀을 얻지 못했다. 2021년 해남대회, 2023년 단오대회, 2024년 설날대회까지 세 차례 결승 무대에 올랐지만 모두 우승에는 실패했다.
이날 경기도 쉽지 않았다. 장영진의 상대는 올해 설날대회 8강전에서 접전을 펼친 김윤수(용인특례시청)였다. 비슷한 스타일의 두 선수가 만나자 쉽사리 승부가 나지 않았다. 첫판이 중요했지만 김윤수의 역습 안다리 기술에 걸려 첫판을 내줬다. 번번이 결승에서 좌절했던 장영진에게 패배감이 엄습했다.
다행히 두 번째 판을 극적으로 잡은 게 승부처였다. 계속되는 장기전 모드에서 들배지기에 실패한 장영진은 뒤이어 상대 오른발을 잡아채려고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그런데 빠져나가는 김윤수의 왼발을 걷어차다시피 한 행운의 왼발 발뒤축걸기가 걸리며 승부의 균형을 맞출 수 있었다.
매 경기 길어진 승부가 최종 다섯 번째 판까지 이어지자 두 선수 모두 모래판에 주저앉을 만큼 체력이 떨어졌다. 마지막에 웃은 건 첫 장사를 더 놓칠 수 없다는 간절함을 승부에 녹인 장영진의 차지였다. 장영진은 연장 끝에 밀어치기로 김윤수를 먼저 모래판에 눕힌 뒤 크게 포효했다.
장영진은 ‘3전4기’ 끝에 생애 첫 태백장사 타이틀을 안았다. 장영진은 본지와 전화 인터뷰에서 “대학 졸업 후 6년 차에 경험한 첫 우승이다. 꿈만 꾸던 목표였다. 솔직히 말하면 결승전 트라우마 때문에 내가 우승 못 할 줄 알았다. 늘 마지막에 집중력이 떨어졌는데 이번에는 ‘그냥 해보자’는 생각으로 붙었다”고 말했다.
장영진은 지칠 대로 지친 상황에서 벤치에서 김기태 감독과 윤정수 코치, 동료들의 끊임없는 자극에 승부욕을 유지했다. 승리 뒤에는 감독, 코치 앞에 가서 “저도 해냈습니다”고 소리쳤다.
장영진은 씨름을 시작한 뒤로 만년 2등이었다. 그래서 동료들은 ‘홍진호’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로 유명했던 홍진호는 당시 최고의 선수 중 하나였지만 우승 문턱에서는 많이 졌던 ‘2인자’였다.
장영진은 “상황을 돌이켜 보면 결승에 올라가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 같다. 나도 모르게 여기까지만 와도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지고 나서 엄청나게 분해 하는 내가 한심했다. 언젠가 그걸 꼭 넘어서고 싶었다”며 첫 장사 타이틀을 따낸 감격을 이야기했다.
경북 상주 출신인 장영진은 대구 비산초등학교 4학년 때 씨름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 단지 공부가 하기 싫어 간식도 많이 주는 씨름을 방과 후 동아리로 가입했다. 그런데 처음 나간 대구 지역 대회에서 상대 선수들을 가볍게 넘기고 우승하며 인생이 바뀌었다. 장영진은 “대회가 끝난 뒤 스카우트 제의가 왔다. 처음에는 달가워하지 않으시던 어머니가 ‘(씨름부있는 학교로)전학 가야 한다’고 하셨다. ‘씨름을 하기 싫다’고 했는데 강제로 전학을 갔다”고 떠올렸다. 장영진은 씨름 엘리트 코스를 밟을 수 있는 매천초로 전학을 갔다.
그렇지만 최고 결과는 늘 ‘2위’였다. 장영진은 “대학교 4학년 때 제주도에서 열린 시도대항전에서 처음 1등을 했다“고 밝혔다.
장영진은 스스로를 “크게 두드러지지 않은 선수”라고 표현한다. 그렇지만 장영진은 영신고-대구대를 졸업한 뒤 2019년 씨름 명문 영암군민속씨름단에 입단했다. 누구보다 성실하게 훈련하고 근성을 보인 결과다. 그는 “대학 4학년 때 영남대 전지훈련에서 영암군민속씨름단 김기태 감독님을 처음 뵀다. 이 팀에 들어오고 싶어서 감독님의 눈에 들기 위해 연습 때 열심히 했다. 그때 영암군민속씨름단 선수도 이겼다“고 말했다. 장영진은 태백장사를 따낸 뒤 김기태 감독을 얼싸안고 모래판에서 기뻐했다. 영암군민속씨름단은 2022년 10월 안산 대회에서 우승한 허선행 이후 1년 9개월 만에 태백장사를 배출했다.
장영진은 2024년 특별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지난 2월 3살 연하의 김하린 씨와 결혼했다. 그리고 이제는 두 달된 아들 하늘까지 셋이 가정을 이뤘다. 득남과 함께 곧바로 첫 태백장사에 올랐으니 그야말로 아들이 복덩이다. 장영진은 “올해 결혼과 출산, 또 내년에 군대 가기 전에 장사에 오른 것까지 모든 것이 선물”이라며 기분 좋게 웃었다.
내년 3월 입대 예정이라는 장영진은 “장사를 한 번 해보니 더 하고 싶다. 입대 전까지 일단 한 번 더 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며 더 커진 목표를 밝혔다.
이정호 기자 alp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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