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만들면서 ‘기록’ 남기지 않는 정부, 왜?

김원진 기자 2024. 8. 19. 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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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원회·TF 회의록’, 의대 증원 등 결정 과정 확인에 필요
교육부 “임의기구라 없다” 여가부 “약식” 논리로 법 피해
“절차적 명분쌓기 요식행위·윗선 책임 회피용” 불신 키워
이주호 교육부총리가 지난 16일 국회에서 열린 교육위원회와 보건복지위원회의 ‘의과대학 교육 점검 연석 청문회’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 박민규 선임기자

의대 증원, 교제 폭력 등 주요 현안을 다루는 정부 부처가 정책 결정과 관련한 회의록을 제대로 남기지 않는 사례가 지속적으로 확인돼 정책 결정 과정에 대한 불신을 키운다는 지적이 나온다. 각 부처는 “주요 회의가 아니다”라거나 “약식 정리도 회의록”이라는 논리로 법을 회피하고 있다.

18일 취재를 종합하면 교육부·여성가족부·보건복지부는 의대 정원 증원 등 주요 정책 현안을 다루는 위원회나 태스크포스(TF)의 회의록을 남기지 않거나 참석자의 발언이 담긴 형태의 회의록을 작성하지 않았다.

교육부는 내년도 의대 증원분을 배분하는 대학별 의대 정원배정위원회 회의록을 남기지 않았다는 입장을 지난 5월부터 고수하고 있다. 오석환 교육부 차관은 지난 16일 국회 청문회에서 “배정심사위 회의 (참고)자료는 파기했고 회의록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회의 결과를 회차별로 정리해 회의 결과 보고서로 정리한 자료가 있다”고 했다.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 17조는 주요 정책 또는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뤄지는 회의의 경우 회의록, 속기록 또는 녹음기록을 작성하도록 한다. 교육부는 정원배정위가 ‘주요 회의가 아니었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의대 증원 규모는 복지부에서 정했고, 교육부의 정원배정위는 주요 정책 결정이 아닌 보조적 역할에 그쳤다는 취지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국회에서 “배정위는 법정기구가 아니고 장관의 자문을 위한 임의 기구”라고 했다.

정원배정위는 지난 3월15일 첫 회의를 연 뒤 닷새 만에 32개 대학의 의대 정원 배분을 완료해 발표했다. 회의는 세 차례 진행됐다. 의료계 측 대리인단은 지난 16일 보도자료를 내고 이 장관 등을 공공기록물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고 밝혔다.

여가부도 장관이 주재하는 여성폭력방지위원회 회의록 대신 ‘개최 결과 보고’ 자료만 공개하고 있다. 위원만 28명인 여폭방지위는 여성폭력방지 정책, 제도개선, 사업 분석 등 여성 정책 전반을 다룬다.

이날까지 정보공개청구 등을 통해 2020년부터 올해까지 열린 여폭방지위 회의록 공개를 요청했지만 여가부는 개최 결과 보고 자료만 제출했다. 결과 보고 자료만 봐서는 각 참석자가 어떤 의견을 피력하고 어떤 논의가 이뤄졌는지 파악할 수 없었다. 여가부의 개최 결과 보고 자료에는 심의 안건과 ‘스토킹 사각지대 입법 공백 보완 필요’ ‘사이버 공간에서 성적 괴롭힘과 언어적인 성폭력도 지원받을 수 있도록 검토 필요’ 정도의 내용만 주요 의견에 담겼다.

여가부는 “회의 일시, 참여 인원, 주요 안건 등을 두루 담아 정리한 것도 회의록”이라고 주장했지만, 이는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의 ‘2024년 기록물관리 지침’과 배치된다. 국가기록원 지침은 회의록에 안건별 발언자 이름과 주요 발언 내용, 결정 사항, 표결 내용까지 포함하도록 규정했다.

복지부는 지난해 12월 기준 통합돌봄추진단, 장애인자립추진단 등 22개 TF를 운영했는데 국회에 “22개 TF 회의록은 없다”고 보고했다.

정부의 회의록 부실 작성 및 비공개 관행이 정책 불신을 키운다는 지적이 나온다. 각종 위원회와 TF는 절차적 정당성 확보를 위한 명분쌓기용에 그치기 쉽다는 것이다. 정책 과정의 불투명성을 키울 뿐만 아니라 정책 결정자의 책임을 줄이려 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전진한 알권리연구소장은 “정부가 회의록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할수록 형식적 회의였다는 의구심을 키우게 한다”며 “공무원은 원래 자기 보호를 위해 회의록을 남기려 하는데, 윗선의 책임을 덜기 위해 회의록 부재를 주장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했다.

김원진 기자 one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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