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인사이트]글로벌 공급망 협력, 한국의 리더십을 기대한다
무역환경 변화로 안심할 수 없어…
전 세계가 주목한 韓 공급망 대응,
첫 CRN 의장국으로서 리더십 기대
[조상현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 하반기 수출이 순조롭게 출발했다. 7월 수출은 575억달러로 역대 7월 중 두 번째로 높은 실적을 기록했다. 반도체를 필두로 디스플레이, SSD와 같은 IT 수출이 탄력적으로 회복된 덕이 컸다. 특히 반도체 수출은 역대 최대 실적을 웃돌면서 수출 회복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IT 수출 회복세에 힘입어 부진했던 대중국 수출도 부활하고 있다. 3월부터 플러스로 반등한 중국향(向) 수출은 7월 들어 회복 흐름이 두 자릿수로 더욱 빨라졌다. 반도체와 중국 수출은 2000년 이후 우리의 수출역사를 주도해 온 양대 축이다. 그래서 올해 반도체와 중국 수출의 약진은 마치 ‘성공 방정식’처럼 무척이나 익숙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아직 안심할 수 없다. 과거의 성공 경험에만 기대기에는 무역환경이 너무나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EU도 탄소중립의 명분을 앞세운 신(新)통상규범을 속속 내놓으면서 역내 수입 공급망을 까다롭게 하고 있다. 2026년 본격시행을 앞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는 역외 기업에 정당한 탄소비용 지불을 요구하고, 에코디자인 규정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제품의 생산, 유통, 소비, 폐기 등 전 주기를 투명하게 소명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미국과 EU는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최소화하기 위해 원산지 요건을 대폭 강화하는 방향으로 공급망 생태계를 강화하고 있다.
한중 무역구조도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중국은 ‘2025년 국산화 70% 달성’을 국가적 목표로 설정하고 자급률 향상에 집중하고 있다. 중국의 중간재 자급률이 상승하는 만큼 중간재 수입은 줄어들게 된다. 중간재 수출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는 중국의 자급률 상승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중국은 희토류를 포함한 세계 최대의 핵심광물 자원보유국이기도 하다. 만에 하나 중국이 전략적으로 핵심광물 수출통제 나설 경우, 중국에 핵심광물 수입의존도가 높은 우리 산업은 예기치 못한 공급망 차질을 겪을 수도 있다.
다행인 것은 우리나라 주력 시장의 공급망 변화의 흐름을 놓치지 않으면서 만만(滿滿)의 대응 체계를 마련해 왔다는 점이다. 공급망 기본법, 소부장 특별법, 자원안보법 등 공급망 3법이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그리고 여야의 공조로 조속히 의결된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8월 이후에는 총 5조에 달하는 공급망 안정화 기금도 본격적으로 투입될 예정이다. 산발적으로 관리해온 핵심광물은 전문기관으로 일원화되고 있고, 새만금 등 신규 비축기지 사업도 순조롭게 진행 중이다. 올해 5월부터 소부장공급망센터의 주도로 조기경보시스템(Early Warning System)이 본격 가동되면서 현장정보에 기반한 선제 위기 대응 능력도 크게 개선되었다.
한국의 체계적인 공급망 대응은 국제사회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최근 한국이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공급망 협정 이행기구인 위기대응네트워크(CRN)의 첫 의장국을 맡게 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CRN 의장국인 한국은 향후 2년 동안 다자간 공급망 공조를 위한 구체적인 액션플랜을 설계·운영하게 되며, 이를 위해 산업부는 7월 중순 CRN 사무국 역할을 담당하는 전담조직도 신설했다.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의 약화와 보호무역주의의 확산으로 각자 분절화의 길을 걸어온 국제사회는 IPEF 공급망 협력을 통해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이번 기회에 한국이 글로벌 공급망 협력의 성공적인 청사진을 제시해 주도권을 발휘한다면, 미래 글로벌 공급망 협력의 새로운 프레임을 선점할 수 있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 수출은 안정적인 공급망 기반 위에서 지속가능한 수출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 오는 9월 미국 워싱턴에서 사상 최초로 다자간 공급망 협력을 주도할 한국의 준비된 리더십을 기대한다.
김형욱 (nero@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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