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HBM 자립' K반도체에 불똥 튀나…"피해 최소화 협상 절실"
AI 반도체로 번진 미중 무역 갈등…삼성·SK에 불똥
中 'HBM 자급자족' 시도…韓에 잠재적 위험될 수도
전문가 "민간 맡길 게 아니라 정부 차원서 나서야"
[이데일리 김소연 기자] 중국이 인공지능(AI) 가속기에 들어가는 고대역폭메모리(HBM)의 자립에 드라이브를 걸면서 K반도체에 불똥이 튀고 있다. 중국의 AI 반도체 개발·양산 시도에 미국이 강하게 제재하는 과정에서 한국 기업들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당장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에 미칠 악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데 이견이 거의 없다. 다만 길게 보면 중국의 HBM 자립을 막을 수는 없다고 보고 있다. 그런 만큼 이에 따른 미중 갈등이 K반도체에 위협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정부가 직접 나서야 한다고 진단했다.
18일 세계 최대 특허관리 소프트웨어(SW) 기업 아나쿠아(Anaqua)와 외신 등에 따르면 중국 최대 D램 생산업체인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는 최근 3년간 총 129건의 HBM 관련 특허를 출원했다. 2022년 14건, 지난해 46건에 이어 올해 현재까지 69건으로 점점 늘고 있다. 중국은 지금까지 고성능 HBM을 사실상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데, 특허 급증세는 HBM 자립에 시동을 걸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미국은 이 같은 중국의 AI 반도체 개발에 수출 통제로 맞서고 있다. 특히 AI 반도체에서 가장 중요 분야가 ‘군사’다. 중국 팹리스나 국영 군사와 관련한 곳에서 AI 가속기 수요가 발생하고 있다. 미중 반도체 전쟁이 생각보다 장기화할 수 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문제는 그 핵심으로 자리한 게 하필 한국 기업들이 가장 주력하는 고급 메모리 제품인 HBM이라는 점이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HBM은 주로 AI 반도체에 응용되는데, AI 반도체에서 가장 중요한 분야가 군사”라며 “미국 입장에서는 중국의 AI 반도체를 견제할 수밖에 없다. 중국의 HBM 자립 시도에 완벽한 견제를 하지는 못하더라도 속도를 늦추는 조치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만에하나 미국이 모든 AI 가속기에 대한 중국의 수출 규제에 나선다면, 한국이 곧바로 타격을 입을 가능성도 있다. 삼성전자가 엔비디아의 중국 수출용 H20에 HBM3를 공급하고 있어서다. 이규복 한국전자기술연구원(KETI) 연구부원장은 “HBM 전반적으로 엔비디아 상황에 따라 변수가 생긴 것”이라며 “미국이 중저가 칩까지 제재에 나선다고 하면 삼성에 영향을 줄 수 있고, 엔비디아에 수출을 하는 SK하이닉스 역시 신경이 쓰일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정부가 엔비디아 제품에 대한 중국 수출을 금지한다면 국내 기업의 HBM 물량은 간접적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중국에서 AI서버를 구축하면 한국산 HBM을 적용할 수 있는데, 미국이 이 부분까지 규제한다면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HBM 자립이 삼성·SK 미칠 영향은
중국의 HBM 자립을 막기는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창신메모리는 이미 2세대 HBM 등은 만들어 낼 수 있다. 중국의 D램 기술력이 떨어지는 탓에 아직 국내 기업에 위협적인 수준은 아니지만, 잠재적인 위험은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다.
경희권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만약 엔비디아가 창신메모리 HBM을 쓰겠다고 하면 큰 문제가 되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낮아서 당장 국내 메모리 기업에 영향을 주진 않을 것”이라고 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중국 업체에 직접 판매하는 HBM 물량은 많지 않다. 다만 업계 일각에서는 중국 정부가 천문학적인 보조금을 뿌리면서 중국의 전반적인 D램 경쟁력이 높아진다면 얘기가 달라질 수 있다는 의견이 있다.
경 연구위원은 “애플이 양쯔메모리의 낸드플래시 128단을 적용할 것이란 보도가 나오자마자 미국 정가에서 이를 막은 바 있다”며 “만약 아이폰에 양쯔메모리의 제품이 들어갔다면, 지금의 5강 구도는 없을 것이고 국내 기업 한두 곳에는 큰 영향을 줬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미중 사이에 끼인 한국의 현명한 대처가 절실한 때라고 입을 모았다. 이종환 교수는 “장기적으로 한국 기업들은 중국에 수출을 계속해야 하기 때문에 미국과 협상 과정에서 돌파구를 찾을 필요가 있다”며 “예컨대 HBM 최신 모델이 아니라 과거 2세대, 3세대 HBM은 수출할 수 있도록 해달라거나 실익이 될 만한 차원에서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규복 부원장은 “미국이 무역정책에서 너무 많은 변수를 두고 있어 국내 기업들이 이에 대한 영향을 예측하고 대비할 필요가 있다”며 “민간 기업에만 협상을 맡길 게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 문제 해결에 함께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소연 (sykim@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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