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금쪽이 늘고 '상담 대기' 반년인데…채용 50%를 줄여?"
전문상담교사들 반발…신규 채용 규모 감소 때문
순회교사로는 태부족…상담 순번 반년 기다리기도
노조 "학교 규모에 상관 없이 상담교사 수 늘려야"
[세종=뉴시스]김정현 기자 = #1. 서울의 한 고등학교 2년차 기간제 전문상담교사인 김정연(가명·36) 교사는 올해 3월 한 신입생에게 "선생님은 여기 몇 년 계세요?"라는 말을 들었다. 학생에게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중학교 때 반년 마다 교사가 바뀌었다고 털어놨다.
김 교사는 "학생에게 '너 졸업할 때까지는 있을 거야'라고 하자 학생이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학교에 문제행동 학생인 '금쪽이'가 많을수록 업무 강도가 높아져 그만두는 일이 잦은데다, 임용시험을 치르기 위해 2학기에 관두는 사례가 많다고 한다. 김 교사도 고민이다. 자신도 4년차 수험생인데, 어렵게 안정감을 찾아가는 학생이 걱정되기 때문이다.
#2. 현재 경기 지역 한 고등학교에서 정규 전문상담교사로 일하고 있는 15년차 이혜정(가명·47) 교사는 과거 한 교육지원청에서 순회교사로 일했던 때를 떠올렸다. 전문상담교사가 없는 학교에서 하루에 4~5명을 만나는데 매일 학생들이 줄을 서 있었다고 털어놨다. 그렇지만 학교에서는 '금쪽이'를 봐 달라고 요구한다.
이 교사는 문제가 없는지 여부를 빨리빨리 '분류'하는 게 일상이었다고 토로했다. 상담을 받길 원하는 다른 평범한 학생들도 많지만 인성지도나 인성교육은 꿈도 못 꾼다고 했다. 학부모가 상담을 청해도 반 년이나 걸린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교육부가 최근 심리·정서적 어려움을 겪는 초·중·고 학생들을 지원하는 '학생 맞춤형 마음건강 통합지원 방안'을 마련했으나 전문상담교사들은 분통을 터트린다. 전문상담교사를 모든 학교에 배치하겠다는 방안도 포함됐으나 수험생들조차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다.
현장에서는 이미 '상담 대기'가 일어나고 있는데 내년도 신규 채용 인원이 줄면서 정부를 향한 불신의 골이 깊어지는 것이다. 전문상담교사들은 그간 역대 정부가 교사 규모를 늘리겠다고 했으나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고, 채용 규모가 들쑥날쑥 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19일 교육계에 따르면, '전문상담교사'는 주로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교직이수 등으로 교원 자격을 딴 후에 임용시험에 합격해 학교에 배치된 교원이다.
높은 비용이 드는 민간 상담 대신 위(Wee) 클래스에서 전문적인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2005년 도입됐다.
전문상담교사는 2020년 코로나19 유행에 따른 등교 수업 중단으로 우울감을 느낀 학생들이 늘어난 '코로나 블루'와 최근 교권침해의 원인으로 꼽히는 문제행동 학생, 일명 '금쪽이'의 증가로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전문상담교사노동조합에 따르면, 매년 학교 내 위 클래스에서 이뤄진 상담 건수는 2020년 231만건에서 2022년 355만건으로 2년 만에 53.7% 늘어났다.
교육부와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이 최종 공고했던 2020~2024학년도 공립 초·중·고 신규 전문상담교사 임용시험 선발인원 추이를 살펴보면, 선발 규모는 2022학년도까지 증가하다 최근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2020학년도에 679명을 선발했던 전문상담교사는 2021학년도 739명, 2022학년도 801명까지 증가했다. 그러나 2023학년도에 246명으로 전년 대비 무려 69.3%를 줄였고, 2024학년도에 31.7%를 늘린 324명을 뽑았다.
그리고 지난 7일 전국 교육청이 공고한 내년도 신규 전문상담교사 선발 인원 사전예고 인원은 총 155명(-52.2%)이다. 올해 선발 규모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규모다.
공교롭게도 교육부는 지난 9일 경기 의정부시 한서중앙병원에서 사회관계장관회의를 갖고 '학생 맞춤형 마음건강 통합지원 방안'을 발표하면서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의 정신건강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이 방안에는 전문상담교사 인력 보강 방침도 담겼다. 없는 학교에 정규 교사 결원 없이도 쓸 수 있는 '한시적 정원 외 기간제 교사'를 순회교사로 지원한다.
학생 수가 일정 규모 이상인 학교에 전문상담교사를 반드시 배치하도록 '초·중등교육법'도 개정하기로 했다. 현행법은 학교나 교육행정기관(교육지원청 등)에 전문상담교사를 두도록 정해져 있으나 배치 기준은 하위 시행령상 교육청마다 따로 정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전문상담교사 노동조합이나 임용시험 준비생들이 모인 카페에는 정부가 신규 채용 규모를 줄이기로 하면서 이틀 뒤 채용을 늘리겠다는 대책을 내놓은 것을 두고 "농락 하나" 등의 격한 반응이 나온다.
이들이 정부를 믿지 못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인력 보강 약속이 하루 이틀 나온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2011년 대구에서 학교폭력에 고통 받다 중학생이 숨진 사건으로 이듬해 학교폭력 근절 종합 대책을 마련하고 전문상담교사 배치 확대에 나섰다.
중학교부터 전문상담교사와 공무직인 전문상담사 등 인력을 배치하고 위클래스를 설치하겠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 시기인 2019년 5월 내놓은 '포용국가 아동정책'으로 학생 수 101명 이상인 공립 초등학교에 전문상담교사를 배치하겠다고 밝혔다. 2018년 30.2%인 배치율을 2022년 50% 이상으로 높이기로 했었다.
그러나 한국교육개발원(KEDI)의 지난해 교육통계 분석자료집 '통계로 보는 한국교육'에 따르면 전문상담교사 배치율은 초등학교 31.5%, 중학교 56.5%, 고등학교 63.1%로 목표 달성은커녕 여전히 낮은 상태다.
정규직 전문상담교사 배치율만 따로 살피면 상황은 더 악화한다. 초등학교는 26.0%, 중학교는 48.3%, 고등학교는 48.5%로 모든 학교급이 절반도 못 미친다.
일각에서는 학생 수가 줄어들고 있어서 초등 담임과 중등 교과 교사 선발도 감소하는 마당에 전문상담교사를 마냥 늘릴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임용시험 준비생인 기간제 전문상담교사 A씨는 "학교에 적어도 한 명의 학생 정신건강 전문가를 두자는 이야기가 어째서 어려운지 묻고 싶다"며 "정부는 신규 선발 인원을 정해 오면서 젊은이들이 전문상담교사로서 전문성을 갖추는 데 들이는 에너지와 시간을 쏟는 것을 쉽게 생각하는 게 아닌가"라고 했다.
전문상담교사노동조합은 최근 성명을 내 "올해 신규 교사 임용규모는 예상되는 현직자의 퇴직 규모 수준"이라며 "내년 임용이 이뤄진 후 전문상담교사가 배치된 학교는 거의 늘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전문상담교사는 교과교사 외에 둘 수 있도록 돼 있기에 학교 교원 정원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며 "학교 규모와 상관 없이 전문상담교사를 배치하는 게 학생과 교원, 학부모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교육부는 지속적으로 전문상담교사 배치 확대를 추진하고 있으며, 내년도 신규 채용 인원이 감소한 것은 관계 부처와의 협의 과정에서 정해졌다고 해명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모든 학교에 적어도 1명의 전문상담교사가 필요하다는 게 우리 입장"이라며 "신규 채용은 정년퇴직과 명예퇴직 등 현직 교사들의 자연감소분 등을 고려해 관계 부처와 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ddobagi@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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