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장쳐라? 깡깡이 쳐?…조선소 현장용어, 손짓발짓 대신 AI로 소통
HD현대 TF ‘AI 통역기’ 만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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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장쳐라’라는 말을 현장에서 자주 해요. (일반) 번역기를 이용하면 ‘부족장을 공격하다’로 알려줘요. 그런데 이건 작업을 하기 위한 임시 받침대(스캐폴딩·scaffolding)를 깔라는 말이에요. 현장에서 외국인 노동자는 이런 지시를 못 알아듣는 경우가 많아서 손짓발짓까지 해야 하는데, 우리가 개발한 통역 프로그램을 사용하면서 소통이 이전보다 잘 됐죠.”
15일 기준 국내 조선산업의 외국인 노동자 수는 전체 20%인 2만명가량으로 추산된다. 고강도·저임금 노동현실에 숙련공이 떠나고, 앞으로는 외국인 노동자 수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안전 수칙 준수가 필수적인 용접 작업 등을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이 맡고 있기 때문에 현장에서 정확한 소통이 매우 필요하다. 그러나 모든 현장에 통역사를 두기도, 일반 번역기를 사용하기도 힘든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통역 서비스 개발이 이뤄졌다. 13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에이치디(HD)현대 사옥에서 만난 김명현 에이치디현대삼호 디지털전환(DT)혁신추진부 선임매니저와 강유진 에이치디한국조선해양 미래기술연구원 인공지능(AI)센터 선임연구원이 직접 개발한 프로그램을 설명하며 이같이 말했다.
에이치디현대는 지난해 11월 조선·에너지·산업기계 등 모든 계열사 관계자들이 모여 각 사업 부문에 맞는 생성형 인공지능 서비스 개발 작업의 필요성을 확인한 뒤 12개 과제를 도출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조선업 맞춤형 번역서비스인 ‘인공지능 에이전트’였다. 지난해 12월 말 구글 클라우드와 전략적 인공지능 협력관계를 맺은 뒤 구글의 인공지능모델 ‘제미나이’(Gemini)를 활용해 개발에 나섰다.
이정민 에이치디현대 인공지능전략팀장과 정천환 에이치디한국조선해양 미래기술연구원 인공지능센터 생성형 인공지능팀장, 강유진 선임연구원·김명현 선임매니저 4명이 팀을 이뤄 지난 5월께 2주 동안 온·오프라인 미팅을 통해 시범버전부터 만들었다. 6월부터 전라남도 영암군의 에이치디현대삼호 1만4천명 직원(협력사 포함)들이 스마트폰에 시범버전 애플리케이션을 깔아 회사 메신저로 사용 중이다. 한국인 관리자가 한국어로 문장을 입력하면, 각 나라 직원들은 모국어로 번역된 문장을 볼 수 있다. 반대로 외국인 노동자들이 모국어로 입력하면 한국인 직원들은 한국어로 볼 수 있다. 영어·한국어를 제외한 네팔·우즈베키스탄·태국·베트남 4개국어로의 번역을 성공했다. “4개 나라 노동자가 (HD현대 조선 3사) 전체 외국인 노동자의 71%로 인원이 많은 국가부터 적용했다.” 정 팀장의 말이다.
한국인에게도 생소한 현장용어를 번역기라고 알아들을 리 없었다. 조선업계에서 많이 쓰이는 단어들은 줄임말이거나 건설현장 용어, 한국어로 변용된 일본어, 비속어 등이 많다. 자동 인공지능 번역 기능이 탑재된 최신형 스마트폰을 사용해도 소통이 쉽지 않은 이유였다. 결국 팀원들의 발품·손품이 많이 들었다.
팀원들은 현장에서 작업자들이 나누는 대화를 녹음해 1만4천개 표현을 수집한 뒤 1천개를 선별해서 인공지능에 학습시켰다. 다만, 그대로 적용할 수가 없었다. 예를 들어 조선업계에서 흔하게 사용하는 용어 ‘전장’은 선박에 있는 모든 전기·전자설비에 전력이 원활하게 공급되도록 전선 등을 설치하는 작업(전기의장)을 뜻한다. 그러나 번역기는 전장을 ‘배틀필트’(싸움터)로 번역했다. 전기의장으로 입력했더니 ‘일렉트리컬 체어맨’으로 표기됐다. “깡깡이로 얼음쳐”도 그랬다. 깡깡이는 ‘단단하다’를 뜻하는 전라도 사투리인 깡깡하다에서 파생된 말로 망치를 뜻한다. 즉, 망치로 얼음을 깨라는 말이다. “야리까리해라”라는 말은 ‘오늘 할당량만 끝내고 퇴근해’라는 의미이다. “시마이쳐”도 이만 끝내라는 말이지만 맥락이 완전히 같지 않았다.
김명현 선임매니저는 “현장에서 일하는 다양한 나라 노동자들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통역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갔다”고 했다. 또 “인공지능에게 언어를 학습시킨다고 해도 사용자 중심으로 이를 조정하는 것은 결국 사람 몫이었다. 현장의 피드백을 꼼꼼하게 수용해 적용했다. 현장 설명회를 하면 반응이 나쁘지 않아 잘 만든 것 같다”고 정 팀장이 덧붙였다.
보완할 지점은 여전히 많단다. 올해 말까지 방글라데시·인도네시아·러시아·미얀마·스리랑카·튀르키예·아랍어 번역을 추가하고 음성 번역 기능도 완성하는 게 목표다. 전라도 사투리 ‘거시기’와 같이 구어체로는 많이 쓰이는데 문어로 치환하기 영 어려운 한국어 처리도 도전 과제다. “오사마리 쳐라”(정리하라)와 같은 표현은 아직 언어모델이 정확히 인식을 못 하고 있다고 한다.
정기선 부회장이 올해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시이에스(CES)2024에서 ‘인공지능 기술을 건설기계 현장에도 적용하겠다’는 취지의 기조연설을 할 때 같이 무대에 오르기도 했던 이 팀장은 “음성은 현장 소음이 많고 발음이 부정확할 경우 번역이 쉽지 않다. 그렇지만 올해 말 개발 목표로 정확도를 높이는 단계에 있다. 전라도뿐 아니라 에이치디(HD)현대중공업·에이치디현대미포 울산조선소의 경상도 사투리 반영을 위한 추가 개발이 필요하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 생활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안전 교육을 포함한 포괄적 서비스를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인공지능을 가리켜 ‘팬시’(유행이고 감각적이란 뜻)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현장의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활용한다면 외국인 노동자의 업무 숙련도를 높이고 나아가 조선 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데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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