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詩 읽기] 항상 잘 지낼 수는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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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아는 사람을 만나 별생각 없이 어떻게 지내는지 물을 때가 있다.
어떻게 지내세요, 잘 지내시죠, 많이 바쁘시죠 학교에서 배운 듯 모두들 똑같이 건네는 무감한 안부 인사.
'잘 지낸다'는 건 어떤 일인가? 모든 일이 순조로운 것 같아 즐겁다가도 깊은 밤 창가에 서서 여름 풀벌레 울음소리가 작아진 것을 느끼면, 돌연 쓸쓸해지는 게 사람의 일이다.
요새 나는 잘 지내는지 '정말로'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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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아는 사람을 만나 별생각 없이 어떻게 지내는지 물을 때가 있다. 사실은 궁금하지 않으면서, 마음을 거치지 않은 말이 진부하게 튀어나올 때가 있다. 내가 질문을 받기도 한다. 어떻게 지내세요, 잘 지내시죠, 많이 바쁘시죠… 학교에서 배운 듯 모두들 똑같이 건네는 무감한 안부 인사. 이런 인사에 ‘진짜 대답’을 하기는 어렵다. 잘 지내지 못하면서도 잘 지낸다 하고, 바쁠 일이 없는데도 “바쁘죠, 정신이 없네요” 일부러 앓는 소리를 하기도 한다. 그렇지 않다면 금세 어색해질 게 뻔하다. ‘아는 사이’라면 이 정도의 안부나 주고받으며 진담보다는 한담이나 나누다 돌아서는 게 무리없는 일이라 생각한다.
시 속 화자는 어떻게 사느냐는 물음 앞에서 “울컥 짜증이” 난다고 고백한다. ‘왜 시를 쓰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처럼. 시인에게 왜 시를 쓰느냐 묻다니, 뭐라고 답한단 말인가? 그러는 당신은 왜 사느냐 물으며 괜히 눈을 흘기고 싶어질 것 같다.
‘잘 지낸다’는 건 어떤 일인가? 모든 일이 순조로운 것 같아 즐겁다가도 깊은 밤 창가에 서서 여름 풀벌레 울음소리가 작아진 것을 느끼면, 돌연 쓸쓸해지는 게 사람의 일이다. 요새 나는 잘 지내는지 ‘정말로’는 모르겠다. 자신이 없다. 책을 출간하고 이런저런 원고를 쓰고 독자를 만나는 자리에 참석해 신나게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누구보다 바쁘게 지내지만… 새벽에 저절로 눈이 떠진다. 캄캄한 거실 한가운데 우두커니 앉아 생각한다. 나는 사실 잘 지내고 있지 못한 게 아닐까, 틈틈이 삽니다만.
박연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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