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1회 영농·생활 수기 가작-일반부문] 늦게 철이 들었습니다

관리자 2024. 8. 1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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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회 영농·생활 수기 가작-일반부문] 정정선 (77·경북 김천시 황금동)
퇴직 후 일로 선택한 명이농사
아내에 대한 존중·배려 가르쳐
정정선씨(오른쪽)가 부인 이향순씨(왼쪽)와 함께 경북 김천에 있는 명이나물밭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영원할 줄 알았던 나의 푸름이 늦가을로 접어들어 한기를 느낄 즈음 정년퇴직을 했다. 남들처럼 퇴직 후유증을 심하게 앓았다. 이대로 헛되이 보낼 수 없다는 강박으로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특별한 기술이 없었으므로 마땅히 소일거리를 찾을 수가 없었다. 불현듯 울릉도에서 보았던 눈 속을 헤집고 움을 틔우는 명이가 생각났다.

‘남은 생 명이농사를 지으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명이에 대해서 여러가지 정보를 수집했다. 명이는 병해충이 거의 없어 농약을 치지 않아도 된다. 노지 재배를 하므로 시설비가 필요 없고 여러해살이 작물이므로 종잣값이 들지 않는다. 종자를 채취해서 팔거나 모종을 길러 팔 수가 있다. 명이는 일조량이 많은 곳보다 반그늘이 좋다. 다른 작물보다 가뭄이나 추위에 강하다. 잎을 채취하는 기간이 3월 중순부터 4월 중순까지 한달 남짓하므로 다른 작물처럼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 다른 잎채소보다 단가가 높아 수익성이 있고 다양한 먹거리를 만들어 판매할 수가 있다. 잎을 채취하고 난 다음부터는 풀을 뽑아주고 가을에 퇴비를 주면 된다. 농사 지식이 없는 나한테 안성맞춤인 작물이다. 한가지 흠이라면 첫 수확 기간이 길다는 것이다. 씨를 뿌려놓고 4년 차에 두 잎이 나온다. 그것도 두 잎을 따면 좋은데 아쉽게도 한 잎만 따야 한다. 두 잎을 따면 세력이 약해진다.

나름 명이에 대해서 지식을 쌓아놓고 밭을 사서 농사를 짓는다고 아내에게 말했다. 나이 들어 웬 농사냐며 펄쩍 뛰는 아내에게 명이의 장점을 조목조목 설명하면서 설득했으나 막무가내다. 급기야 자식들까지 나서 나이 들어 힘쓰는 일은 건강을 해친다면서 한사코 반대했다. 하지만 이만한 일에 주저앉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결기로 밀어붙였다. 밭은 991㎡(300평) 정도면 나한테 적당하지 않을까? 염두에 두고 알아보았으나 마땅한 곳이 없었다. 결국 감나무 80주가 심겨 있는 1652㎡(500평)가 넘는 밭을 샀다. 밭은 집에서 3㎞ 정도 떨어져 있어 그리 멀지도 않을뿐더러 감나무가 그늘을 만들어 명이 재배지로 최적의 장소다.

나를 위하여 평생 헌신한 아내에게 무언가 하나 남겨주고 싶었다. 아내 명의로 밭을 샀다. 아내는 당신 앞으로 하지 왜 그랬냐고 핀잔을 주면서도 내심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나는 농업경영체에 등록했다. 바라던 대로 명이농사를 짓는다는 설렘, 컨테이너로 농막을 설치했다. 남들이 말하는 세컨드하우스가 생겼다. 아침만 먹으면 밭으로 출근했다. 숨 쉬기가 살갑고 밥맛이 나서 살 것만 같았다. 농사를 짓는다라는 생각을 하면 힘들다. 그냥 소일거리 삼아 내가 쉴 수 있는 쉼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명이를 심으려고 적당한 간격으로 밭이랑을 만들고 잡초를 뽑아냈다. 제법 큰 규모의 명이밭이 조성되었다.

씨를 뿌린 지 4년 차로 접어들었다. 두 잎이 난 명이가 2월 영동할매의 을씨년스러운 바람과 동장군의 마지막 시새움 앞에서 푸른 잎이 온 밭을 뒤덮었다. 올해부터는 수확을 할 수가 있다. 해냈구나, 하는 뿌듯함이 온몸을 감싼다. 잎을 잡고 아래로 살짝 누르면 똑하는 맑은 소리가 난다. 그 소리에 마음이 심쿵하면서 힘들었던 일들이 다 씻겨 내려갔다. 그 일이 엊그제 같았는데 명이농사를 지은 지 십수년이 지났다.

명이는 돼지고기를 싸서 먹으면 환상의 궁합이다. 명이지를 담아놓으면 새큼달큼한 맛에 잃어버린 입맛이 돌아온다. 명이 김치도 김장 김치 못지않게 오래 저장할 수 있고 익을수록 맛이 좋다. 명이잎을 삶거나 생으로 깻잎처럼 담그면 사철 밑반찬으로 먹을 수가 있다. 마늘 대신 넣어 먹거나 국을 끓여도 괜찮다. 그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명이잎을 삶아서 냉동시켜 놓았다가 푸른 잎이 부족한 겨울에 꺼내 쌈으로 먹는 것이다. 그리고 비 오는 날 장떡을 부쳐 놓으면 막걸리 한병은 마파람에 게 눈 감춘다는 말은 이때 사용하면 제격이다. 이처럼 명이는 다른 작물보다 더 다양하게 식재료로 활용할 수가 있다. 3월 중순쯤, 하우스에서 재배하는 상추 외에 노지에서는 푸른 잎이 나오지 않는다. 이른 봄에 농약도 치지 않는 명이, 말 그대로 보약이다. 명이는 마늘의 열배가 넘는 항암 작용이 있다고 한다. 이런 점이 제대로 홍보된다면 고소득 작물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어본다.

올해 명이를 따는 첫날이다. 매년 명이를 딸 때마다 명이밭 조성할 때의 힘듦과 첫 수확의 기쁨이 어제의 일처럼 떠오른다. 주문이 들어온 먼 거리는 택배로 부쳤다. 가까이 사는 사람들은 내가 직접 배달을 갔다. 그리고 이른 봄, 푸른 잎이 덮인 명이밭을 구경도 할 겸 명이를 구입하려고 밭으로 오는 사람들도 많았다. 힘들게 농사지어 손에 쥔 돈, 봉급 받을 때 느껴보지 못한 소중함을 알았다.

성한 잎은 아까워서 못 먹고 상품 가치가 없는 잎을 집으로 가지고 왔다. 삼겹살을 노릇노릇 구워 명이 잎에 싸서 먹었다. 마늘 향기가 나면서 싱그러운 풋내가 입안에 가득하다. 이 좋은 날 막걸리 한잔 안 마실 수가 없었다. 석잔까지는 마음 놓고 마셨는데 넉잔째는 눈치가 보였다.

“허허, 명이가 술을 부르는구나.”

너스레를 치면서 한잔 더 마시려고 술병을 집어 들었다.

“내일 주문량이 많은데 술에 취하면 어떡해요?”

아내의 눈에 힘이 들어간다.

“내일 주문량이 많은가?”

얼버무리면서 들었던 술병을 슬그머니 내려놓았다. 내 나이 77살. 아내와 농사를 지으면서 서로 배려하고 걱정스러워서 한 말이 말대꾸가 되고 말다툼이 되다가 급기야 샐쭉하게 토라지고 언성이 높아지는 일이 다반사다. 연민과 사랑이 함께 어우러진 삶, 이게 우리 부부가 살아가는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농사를 지으면서 우리 부부는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그리고 삼라만상의 모든 생명체와 연결이 되어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땀 흘려 노력해서 얻은 농작물을 나누어 먹는다는 게 다른 방법으로 도와주는 것 못잖게 마음이 풍족해지고 나를 더 겸손하게 만든다는 것도 알았다. 필연(必然)으로 맺은 부부는 부족한 점이나 어려운 일은 서로 보듬어주고 조금씩 양보를 해서, 나들이 나온 삶이 끝나는 날까지 품앗이하면서 살아가는 인생의 도반(道伴)이라는 것을 알았다. 무엇보다 가장 소중한 것은 늦게 철이 들어 아내를 더 위해주고 사랑해야지 하는 연애 시절 초심으로 돌아가서 삶을 한단계 상승시켰다는 것이다.

산과 들에 봄이 서서히 무르익으면 명이가 억세져 농사는 끝난다. 이른 봄부터 활동이 왕성한 명이의 위세에 움츠려 있던 풀은 명이잎을 수확하고 틈새로 하늘이 보이면 서서히 세력을 펼친다. 초여름으로 들어서는 길목에 쇠뜨기·쇠비름·괭이밥·바랭이·제비꽃·별꽃 등이 맹위를 떨친다. 이제부터는 풀과 한판 겨루기를 해야 한다. 제초제를 뿌려도 되지만 내가 먹고 자식이 먹는 명이 그리고 돈을 내고 사 먹는 사람들을 위하여 풀과 정정당당하게 겨루기로 했다. 이른 아침 달달한 커피를 한잔 마시고 일복으로 갈아입었다. 엉덩이 방석을 걸치고 풀 앞에 자리를 잡았다.

“잘 잤는가?”

“오늘도 오셨군요. 하루걸러 오셔도 되는데.”

풀을 뽑을 때는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아 무아지경으로 빠져들었다. 풀을 뽑는다는 것은 나한테는 수행인 셈이다. 그리고 풀을 다 뽑아 놓은 밭을 보면 해냈다는 성취감이 들었다. 한때 야생초의 매력에 빠져 다양한 종류를 재배했다. 특히 앙증맞은 잎에 샛노란 꽃이 피는 괭이밥을 좋아했다. 화분에 소복이 심어놓으면 진달래나 매화 못지않게 보기가 좋았다. 그리고 작은 몸으로 많은 씨앗을 퍼뜨리는 번식력에 감탄했다. 농사를 짓고 있는 지금은 괭이밥 번식력에 지레 겁을 먹고 보이는 대로 족족 뽑아냈다. 밭 귀퉁이에 괭이밥이 꽃을 피웠다. 샛노랗고 앙증맞은 꽃에 호미를 잡은 손이 움츠러들었다.

“우리가 예쁘다고 했잖아요. 왜 마음이 변했어요?”

“오래 살아서 그래. 오래 살면 생각이 많아져 마음이 자주 변해.”

“왔다는 흔적이라도 남기게 사흘 있다가 뽑으면 안 돼요?”

“글쎄. 그게.”

“여보, 빨리 뽑고 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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