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무덤도 처형의 사유도 뚜렷하지 않은 시인의 죽음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스페인 시인 겸 극작가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Pederico Garcia Lorca)가 1936년 8월 19일, 알려진바 고향인 남부 그라나다의 베가 들판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서 극우파 경찰이 포함된 6명의 사형 집행인에 의해 재판 없이 총살당했다.
투우사와 교사 등 공화파로 낙인찍힌 2명과 함께 희생된 그는 총살되기 전 자신들이 묻힐 무덤을 직접 파야 했다는 설이 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스페인 시인 겸 극작가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Pederico Garcia Lorca)가 1936년 8월 19일, 알려진바 고향인 남부 그라나다의 베가 들판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서 극우파 경찰이 포함된 6명의 사형 집행인에 의해 재판 없이 총살당했다. 투우사와 교사 등 공화파로 낙인찍힌 2명과 함께 희생된 그는 총살되기 전 자신들이 묻힐 무덤을 직접 파야 했다는 설이 있다. 그의 무덤은 사학자와 논픽션 작가 등 다수의 추정을 근거로 여러 차례 발굴이 시도됐지만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았고, 심지어 처형당한 실제 이유에 대해서도 이견이 있다.
로르카는 이슬람교 지배의 흔적이 짙게 남은, 또 그래서 15세기 레콩키스타 이후 가톨릭 영향력이 성하던 안달루시아 지역 토박이였다. 지주였던 아버지의 강요로 예수회 학교를 거쳐 마드리드대에서 법학을 전공했지만, 그는 교사 어머니에게서 익힌 피아노 연주와 작곡 등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예술에 심취했고, 특히 대학 시절부터 시와 희곡 등 문학에 몰두했다. 1919년 마드리드 국립대에 진학한 뒤 한때 연인이던 화가 살바도르 달리 등 예술가들과 폭넓게 교유했고, 달리가 꾸민 무대에서 공연한 연극 등으로 큰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는 동성애자였다.
지주-가톨릭 중심의 억압적 전근대성을 혐오하던 그는 1936년 정교분리와 토지개혁을 앞세운 좌파 인민전선 정부를 환영했다. 하지만 그해 7월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내전이 시작됐다. 그는 고향 그라나다로 피신했지만 불과 한 달 만에 극우파 반군에 의해 체포됐다. 내전 극우파가 그를 체포-처형할 만한 이유는 그의 성정체성과 문학을 통한 집시 민족의 옹호, 공화파 동조 등 무척 많다. 하지만 그가 우파 민족주의자들과도 썩 잘 지냈던 점에 주목하는 이들은 사적인 동기, 즉 지역 토지 이권 등을 둘러싼 가문 간 알력이 주된 이유였다고 주장한다.
최윤필 기자 proose@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실종신고 40대 여성, 순찰차에서 36시간 갇혀있다 숨진 채 발견… 의문 투성 | 한국일보
- 박수홍, 23세 연하 아내에 지극정성 "25kg 쪘지만 예뻐" | 한국일보
- '바나나우유 모델' 신유빈, 1억 기부… 올림픽 스타들 선행도 '월클' | 한국일보
- ‘명팔이 척결’로 탈락한 정봉주 심경 밝혀 “저를 반대한 분들도 자산” | 한국일보
- "포르투갈 주차장서 테슬라 전기차 화재" 차량 200대 전소 | 한국일보
- "살아 돌아와 감사하다"…열대야 달리기대회서 28명 탈진 | 한국일보
- "심봤다" 지리산서 천종산삼 23뿌리 발견… 감정가 1억1,000만 원 | 한국일보
- 쓰레기더미 속 피부가 갑옷처럼 굳어버린 개 '준'이 보여준 변화 | 한국일보
- [단독] 박정훈 측, 군사법원에 사실상 대통령 서면조사 요구 | 한국일보
-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사랑한다" 김민희, 로카르노영화제 최우수연기상 | 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