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앞 편의점·동네 정육점까지 파고든 배달앱
혼자 사는 직장인 강모(48)씨는 파리올림픽 기간 TV 중계를 보다가 배달 앱을 켜고 집에서 100여m쯤 떨어진 편의점에서 맥주와 안줏거리를 주문했다. 그는 “퇴근길에 편의점에 들러서 장을 볼 수도 있겠지만, 이젠 배달시키는 게 훨씬 편하고 익숙해졌다”고 말했다.
편의점 물건마저 손가락으로 주문해 배달을 시키는 ‘핑거 커머스’ 시대다. 코로나를 거치며 비대면 배달 서비스가 크게 발달한 데다, 쿠팡의 로켓배송, 마켓컬리의 새벽배송에 익숙해진 이들이 장바구니를 더 이상 들지 않게 된 것이다. 배달에 익숙해진 소비자들을 공략하는 배달 앱들은 그동안 ‘배달 사각지대’에 있던 편의점은 물론 정육점, 방앗간, 문구점 같은 ‘골목 상권’으로 가맹 업소를 확장하고 있다.
배달앱 주고객층인 20~30대나 1인 가구는 단돈 100원이라도 저렴하게 쇼핑하려고 할인 제품을 꼼꼼히 찾으면서도 배송비 3000~4000원은 기꺼이 감수한다. 배달 최소 주문 금액을 맞추려 필요하지 않은 물건까지 사서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경우’도 많다. 한 유통 전문가는 “더욱 편해지고 싶은 생활 태도를 공략하는 배달 플랫폼의 확장으로 더 많은 소비자가 ‘배달의 굴레’에서 빠져나오기 어려울 수 있다”고 했다.
◇집 앞 편의점에서도 배달이 대세
지난 6월 GS25를 마지막으로 국내 양대 배달 앱인 배민과 요기요에 편의점 4사(GS25·CU·세븐일레븐·이마트24)가 모두 입점했다. 소비자가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유통 채널인 편의점마저 모두 배달 앱에 들어간 것이다. 2019년 CU가 편의점 업계 최초로 요기요와 손잡고 편의점 배달 서비스를 시작한 지 5년 만이다. 요기요는 2023년 1월 ‘요편의점’을 따로 오픈해 GS25의 모든 상품을 1시간 이내 배송하고 있고, 배민도 장보기·쇼핑에서 편의점 상품을 배송, 픽업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편의점 업체들도 자체 앱이나 네이버 장보기 같은 서비스를 통해 고객에게 상품을 배달한다. CU에 따르면 지난달 배달을 이용한 상권은 주택가(86.9%)가 압도적으로 많았고 이어 오피스 지역(5.3%), 유흥가(3.3%) 순이었다. 편의점 배달 서비스를 이용하는 정모(33)씨는 “집 1층에 편의점이 있지만 간단한 식사류나 생필품처럼 급히 필요한 물건을 한 달에 3~4회 주문한다”며 “최소 주문 금액이나 배달비가 아깝지만 귀찮음을 감수해 내는 비용인 만큼 감당할 만하다”고 했다.
◇방앗간·문구점·정육점도 배달 앱 이용
골목 상권도 배달 서비스가 사실상 접수한 상태다. 배민의 B마트에는 반찬가게, 정육점, 반려동물 용품점, 화장품 로드숍, 문구점, 방앗간까지 입점해 있다. 과거 대형 마트나 기업형 수퍼마켓(SSM)은 소상공인 영업을 침해할 수 있다며 규제 대상이 됐지만, 배달 앱은 아예 골목 상권을 흡수해버린 셈이다.
배민에서 음식 배달이 아닌 장보기 같은 쇼핑 서비스는 평균 34.6분이 소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1시간 이내 배달 완료 비율은 98% 정도다. 배민에 입점한 동네 가게는 전국에 총 1만2700여 곳이다. 요기요도 ‘요마트’와 ‘스토어’를 통해 편의점뿐 아니라 주류 전문점, 반려동물 용품, 생화 꽃배달, 문구점 등의 가게 상품들을 배달하고 있다. 최재섭 남서울대 유통마케팅과 교수는 “알리·테무 같은 중국 이커머스에서 파는 저렴한 상품과 경쟁하는 소상공인 중심으로 ‘즉시 배송 서비스’를 새로운 경쟁력으로 삼는 시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프라인 상권 위축에 고민하던 소상공인들은 배달 앱 가입으로 점포 홍보와 판로 확장, 신규 고객 확보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지나친 플랫폼 의존을 조심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배달앱의 수수료 정책을 비판하면서도 매출의 대부분이 발생하는 배달 플랫폼을 떠나지 못하는 음식점 업주들과 비슷한 상황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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