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결핍은 나의 힘?
중학교 동창이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 걸 우연히 알게 돼 최근 자주 만났다. 친구 엄마는 어린 시절 학교 근처 노점에서 호떡을 팔았다. 어느 날 친구에게 “너희 엄마한테 같은 반이라고 했더니 호떡 하나 더 주시더라”고 했다가 싸늘한 반응이 돌아왔다. 알고 보니 그 애 앞에서 호떡 얘기는 금기였다. 하교할 때 엄마 노점 앞을 지나지 않으려 일부러 먼 길을 돌아다닌다고 했다. 그날 이후 별로 말을 섞어 본 적이 없다. 공부 잘하고 자존심 강하고 별로 웃지 않는 친구였는데 30년 훌쩍 지난 지금도 여중생 시절 인상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오랜만에 만났을 때 호떡 얘기는 그가 먼저 꺼냈다. 자신은 엄마가 호떡을 팔 정도로 가난해 이를 악물고 노력했는데 미국 유학 간 딸은 열심히 살아야 할 동기가 없는 것 같아 걱정이라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그럼 너도 호떡을 팔아봐” 했더니 희미하게 웃었다.
딸의 소셜미디어엔 온통 친구들과 놀러 다닌 사진뿐이라며 차라리 인종차별이라도 당해서 틀어박혀 공부나 했으면 좋겠다고 한 말에 당황스러웠다. 딸이 상처를 받더라도 그게 살아가는 원동력이 된다면 괜찮다는 투였다. 친구의 지나온 삶을 짐작케 했다. 그런데 머지않아 일이 터졌다. 딸이 따돌림당하는 친구를 생일 파티에 초대했다가 그날부터 같은 취급을 받게 돼 방에만 틀어박혀 지낸다고 했다. 그는 자기가 딸에게 저주를 한 것 같다고, 오기로 점철된 자신의 삶 때문에 딸의 행복까지 망친 것 같다고 자책했다. 뜻하지 않게 오기와 결핍을 원동력 삼아 지금껏 버텨왔다는 친구의 고백을 들은 셈이다.
까치발을 서면 잠깐 더 높이 더 멀리 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오래 서 있을 수는 없다. 친구에겐 아마도 증오·분노·결핍 같은 감정이 까치발이었을 것이다. 이젠 그가 뒤꿈치를 땅에 대고 편해지기를 바란다.
나 역시 어떤 까치발로 서 있었나 되돌아보았다. 친구를 우연히 다시 만났을 때 ‘너 얼마나 잘됐는지 좀 보자’는 삐딱한 심정이 없지 않았다. 어린 시절 뭐든 잘하는 친구에게 한 가지라도 이겨보려고 체력 시험에서 이를 악물고 철봉에 매달리기도 했다. 나도 누군가에 대한 결핍과 질투가 삶의 원동력이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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