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저 사람들 이상하잖아요, 안 그래요?”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2024. 8. 19.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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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월즈 민주당 부통령 후보, 트럼프 세력 ‘이상한 사람들’ 규정
정상 對 비정상 프레임과 보수의 언어로 보수 공격
진보·급진적 태도 앞세우기보다 유연하게 바람직한 변화 추구
태도로서의 보수주의 내세운 그런 리더십이 우리도 절실

“그거 이상한 사람들입니다.”(These are weird people.)

미 민주당 부통령 후보인 팀 월즈 미네소타 주지사가 트럼프 전 대통령과 그 주변인들을 두고 한 말이다. 한국에서는 중학생도, 미국에서는 어린이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평이한 문장이다. 그런데 바로 이 한마디가 지금 미국 정치를 뒤흔들고 있다.

‘돗자리’를 깔고 미국 대선 결과를 예측하겠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변으로 점철된 이번 미국 대선의 결과를 누가 감히 예단할 수 있겠나. 여기서 논하고자 하는 건 좀 더 거시적인 차원의 문제다. 정치 담론의 측면에서 보자면, 설령 이번 대선에서 민주당의 해리스-월즈 대신 공화당의 트럼프-밴스가 당선되더라도, 민주당이 승기를 잡았고 공화당은 수세에 몰렸다는 것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월즈의 ‘이상한 사람들’ 발언 때문이다. 월즈는 ‘정상’ 대 ‘비정상’의 대결 구도를 만들었다. 자신과 민주당을 정상으로, 트럼프와 밴스, 그리고 공화당을 비정상으로 규정했다. ‘저 사람들 이상하잖아요, 안 그래요?’

이러한 프레이밍의 함의와 여파는 결코 간단치 않다. 민주당이 기존에 트럼프를 향해 던지던 비난의 화법과 비교해 보자. 성차별주의자, 혐오 선동가, 사기꾼, 감옥에나 가야 마땅한 사람, 등등. 이런 식의 공격은 ‘집토끼’들의 속을 후련하게 하며 결집시키지만, 정치 담론으로서 구조적 약점을 지니고 있다. 보수 진영을 공격하기 위한 진보 진영의 전형적 화법에 갇혀 있다는 것이다.

‘이상한 사람들’ 발언은 그렇지 않다. 저들이 이상하다면 이쪽은 누구일까. 이상하지 않은 사람들, 기존의 상식을 깨지 않는 사람들, 즉 침묵하는 다수와 그 대변인일 수밖에 없다. 보수와 진보로 나눠본다면 보수의 사고방식에 더 가깝다. 누군가를 콕 찍어 ‘이상하다’고 말하는 것은 보수가 진보를 공격할 때 동원할 법한 화법이다. 팀 월즈는 보수의 언어로 보수를 공격하고 있는 셈이다.

2019년 미네소타 주지사가 된 후 그가 걸어온 행보를 보면 이 언어 전략은 더욱 이채롭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월즈는 낙태권(權), 인공수정, 성소수자 인권 등 미국 정치의 첨예한 이슈에서 가장 ‘왼쪽’에 있고, 강경 진보파로 분류된다. 하지만 출산하지 않는 여성을 향해 폭언을 내뱉었던 밴스를 향해 ‘여성혐오자’라 하지 않는다. 그저 ‘이상한 사람’ 취급을 할 뿐이다. 왜? 미국은 자유의 나라고 모든 사람에게는 자신의 몸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권리가 있으니까. 모든 미국인이 동의할 수밖에 없는 가치, 즉 보수적인 가치를 앞세워, ‘문화 전쟁’의 진보적 가치를 옹호하고 있는 것이다.

안에 담긴 내용은 보수적이지 않지만 그것을 보수주의의 언어에 녹여 내는 이러한 화법을 ‘태도로서의 보수주의’라고 이름 붙여보자. 태도로서의 보수주의는 필승 카드다. 정치에 100%는 없지만 대체로 그렇다. 대부분의 사람은 세상이 좀 더 좋은 방향으로 바뀌기를 원하지만 나의 일상이 급격하게 뒤흔들리는 것은 원치 않는다. 급진적 개혁의 필요성을 스스로 절감할 때조차 그것이 최대한 평화롭고 차분하게 진행되기를 희망한다. 말하자면 유권자는 대체로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는 경향이 있다. 유의미하고 바람직한 변화를 추구하되 보수적 태도를 취하는 것은 진보적, 급진적 태도를 앞세우는 것보다 대체로 우월한 전략일 수밖에 없다.

이는 우리 정치의 역사에서도 입증된 사례다. 1997년, 대한민국은 IMF 외환 위기라는 초유의 사태를 겪고 있었다. 기존의 경제 시스템이 한계에 달했고 급진적인 구조 개혁이 필요하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다. 하지만 바로 그런 위기 상황이기에 최대한 안정적인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것도 분명했다. 새천년민주당 후보 김대중은 유권자의 모순적 요구를 잘 이해했다. ‘준비된 대통령’이라는 구호를 내걸어 평생을 야권 대선 후보로 살며 70대의 나이가 된 스스로의 단점을 장점으로 다시 프레이밍했다. 태도로서의 보수주의를 앞세워 염원하던 대통령의 자리에 올랐던 것이다.

이 교훈은 오늘날까지도 유효하다. 특히 지난 총선 이후 정치권은 ‘이상한 사람들’이 넘쳐 나고 있으니 말이다. 북한에서도 나오지 않는 지지율로 똘똘 뭉치는 그 수준에 대한민국이 몽땅 빨려들어가지는 않을까 두렵다. 국민을 안심시키는 태도로 국민이 필요로 하는 변화를 추동하는 리더십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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