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공소장 공개와 美 검찰의 자신감

뉴욕/윤주헌 특파원 2024. 8. 19.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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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밥 메넨데스 상원의원(뉴저지)은 뇌물 등 혐의로 법원에서 유죄 평결을 받았다. /로이터 뉴스1

미국 검찰의 정치인 관련 수사가 재판에 이르는 과정을 보면서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한국 법조계에는 ‘검사는 공소장을 통해 말한다’는 격언이 있는데 그 표본이 미 검찰이다. 미 법무부는 보통 기소하면서 범죄자의 혐의가 담겨 있는 공소장을 공개한다. 기자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공소장을 볼 수가 있는데, 대상이 실력자라고 해서 이 법칙에 예외가 있는 것은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공소장도 전부 공개됐다. 한국에서는 공소장을 먼저 공개하는 법이 없다. 기자들은 주로 국회 법사위 의원실을 통해 법무부로부터 받는다.그마저도 증거 관계 중 중요한 부분은 가려진 상태로 제공된다.

미 검찰은 기소하면서 구체적인 혐의와 증거를 공개한다. 예컨대 지난해 9월 검찰은 미국 연방 상원의 민주당 중진 밥 메넨데스 상원의원(뉴저지)을 기소하면서 언론 브리핑을 통해 증거물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그가 받은 금괴나 현금 뭉치 사진 등이 포함됐는데, 이를 본 유권자들은 재판 결과와 관계없이 메넨데스로부터 등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한국에서 이랬다면 정치인들이 ‘무죄 추정의 법칙’을 운운하며 펄펄 뛰었을 것이다.

한국에서 ‘표적 수사’라고 불릴 만한 일도 벌어진다. 대표적인 사례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다. 그는 1년 남짓한 시간에 4개 형사사건에서 기소됐다. 당내 대선 경선이 진행되는데 이리저리 법정에 불려나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미국에서는 표적 수사 ‘논란’은 있을지언정 나라가 두 쪽 나지는 않는다. 기소된 정치인의 소속 정당에서 “검사를 탄핵하자”는 선동질도 하지 않는다.

정치인 수사에 대해 한국과 미국의 차이 나는 태도는 기본적으로 각 나라 국민과 정치권의 사법 시스템에 대한 존경과 수사받는 정치인의 수준 및 품격에 따른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은 강력한 법의 통제하에 유지되는 국가이며 이를 아는 국민도 사법 시스템을 존중한다. 수사의 대상이 된 정치인은 지지자들을 향해 억울함은 호소할지언정, 당 전체가 나서서 괴롭히지는 않는다. 나라의 분열 대신 통합을 바라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재판 결과다. 트럼프는 ‘성추문 입막음’ 의혹 재판에서 34개 혐의를 받았다. 사실상 한 개의 범죄에 대해 많은 혐의가 적용돼 논란이 있었지만 이를 잠재운 것은 검찰의 유죄 입증이었다. 모든 혐의에 대해 배심원 12명 전원이 만장일치로 유죄 평결을 내렸다. 그만큼 검찰이 수사를 제대로 했다는 것이다. 공소장과 증거물을 거리낌 없이 공개하는 것도 이런 자신감이 바탕이 된다. 미 검찰의 모습을 지켜보며 새삼 힘이 센 정치인 관련 수사는 철저히 수사해 결과로 입증하는 정공법을 택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민의 신뢰를 되찾겠다는 한국 검찰이 참고해야 할 단순한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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