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이혼' 뒤집히나…"비자금 300억, 노태우가 요구한 돈" 잇단 증언
'선경 300억' 적힌 '김옥숙 쪽지 메모' 관련 논란 지속
6공 경제수석 김종인 "노태우, SK에 노후자금 요구"
[더팩트ㅣ이성락 기자] '비자금 300억원'을 놓고 "노태우 전 대통령 측이 SK에 요구한 노후자금"이라는 증언이 잇달아 나오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소송 2심 판결과 완전히 반대되는 내용이다. 앞서 2심 재판부는 '선경(현 SK) 300억'이라고 적힌 '쪽지 메모'를 유입된 비자금의 근거로 해석해 SK 성장에 노 관장의 기여가 있었다고 판단, 역대 최대 규모 재산 분할액(1조3808억원) 지급을 결정했는데, 판결 이후에도 이 메모의 증거력을 둘러싼 의심은 지워지지 않은 상태였다.
19일 재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 소송 상고심에서는 '노 관장의 기여'로 인정된 대목에 대한 법리적 확인이 중점적으로 이뤄질 전망이다. SK 주식에 대한 몫이 인정되며 1조3808억원의 재산 분할액이 책정되는 데 있어 노 관장의 '내조 기여'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현재 노 관장의 '내조 기여'가 2심 재판 과정에서 과다하게 부풀려진 것이 아니냐는 시선도 적지 않다. 최 회장 측도 이달 초 상고이유서를 제출하며 이 부분에 대한 여러 오류를 문제 삼은 것으로 파악된다.
구체적인 물증이 없어 추후 기여에 대한 사실 여부를 다퉈야 하는 대표적인 내용이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300억원'이다. 최근 유튜브 채널 '어벤저스 전략회의'에서는 이현종 문화일보 논설위원이 이 비자금의 실체를 다루기도 했다. 이 논설위원은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을 취재했다며 약속어음 300억원이 노 전 대통령의 '노후자금'이라고 밝혔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노태우 정부에서 보건사회부 장관, 경제수석, 민주자유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지낸 노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었고, 현재도 재단법인 '보통사람의시대 노태우센터'의 고문을 맡고 있다.
이는 이혼 소송 2심 재판부의 판단과 비교하면 정반대 내용이다. 재판부는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300억원이 최종현 SK그룹 선대회장 쪽으로 흘러 들어가 SK그룹의 종잣돈이 됐고, 따라서 노 관장이 SK 성장에 기여했다고 봤다. 판단에는 50억원짜리 약속어음 6장과 노 관장의 모친 김옥숙 여사가 '선경 300억'이라고 쓴 쪽지 메모가 핵심 근거가 됐다.
김 전 비대위원장의 증언을 고려하면 메모와 약속어음은 '받았다'라는 의미인 차용증이 아닌 '주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 논설위원에 따르면 김 전 비대위원장은 "노태우 자금 문제를 관리하는 이원조 씨가 있는데, 사돈 기업에 통치자금 이야기를 해서 (선경에서 노태우 측에) 꾸준히 줬다"며 "그런데 노 전 대통령 측에서 퇴임 이후에도 이게 과연 제대로 줄 것이냐 이런 부분에 대한 의문이 있어 이를 확약하는 증표로서 일단 뭘 좀 주라고 해서 어음 자체를 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증언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앞서 SK 2인자였던 손길승 명예회장도 진술서와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심부름을 하던 이원조 경제비서관이 노 전 대통령 퇴임 이후 지낼 거처와 생활비 등을 요구해 생활비 명목으로 매달 전달했다"며 "정권 말이 되니 퇴임 후에도 지속 제공하겠다는 증표를 달라고 요구해 어음으로 준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어음 발행일은 지난 1992년 12월, 노 전 대통령의 퇴임 이틀 전이다.
사실 최 회장 측은 재판 과정에서 이러한 내용을 지속 제시하며 노 관장의 주장을 반박해 왔다.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300억원이 SK에 유입된 적이 없고, 약속어음은 노 전 대통령 측 압박에 노후자금 명목으로 준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물론 2심에서는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검찰 수사에서도 증거가 발견되지 않은 비자금 유입을 쪽지 메모만으로 인정한 이유, 구체적인 비자금 사용처 등에 대해서는 별도로 설명하지 않았다.
최 회장 측 주장에 힘이 실리는 내용이 최근 알려지면서, 상고심을 통해 2심 판결이 뒤집힐지 귀추가 주목된다. 만약 비자금 조성과 유입을 놓고 사실 관계가 확정되지 않는다면 이를 재산 분할의 근거로 볼 수 있을지 증거력 논란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최 회장 측은 비자금 300억원과 함께 2심 재판부가 언급한 '6공 특혜설'에 대해서도 "오히려 노 전 대통령 측 압력으로 각종 재원을 제공할 수밖에 없었다"며 '역차별 화두'를 던질 것으로 예상된다. 재계 관계자는 "항소심 판결 이후 회사가 마치 부정한 방법으로 성장한 것처럼 비친 것에 대한 낙심이 가장 컸을 것"이라며 "상고심은 'SK그룹의 가치'가 걸린 문제로 보인다"고 밝혔다.
한편, 약속어음 300억원의 존재는 재산 분할 기여도 산정뿐만 아니라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노 전 대통령의 은닉 재산이 공개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해석도 나온다. 1998년 작성됐다는 '김옥숙 쪽지 메모'에는 '선경 300억원' 외에도 여러 실명과 금액들이 쓰여있고, 이를 합치면 904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 전 대통령이 스스로 밝힌 비자금 규모는 4600억원이다. 이 중 기업을 통해 뇌물로 받은 2682억원만 추징되고, 나머지는 환수되지 않았다. 그 이유로는 출처가 제대로 확인되지 않은 점이 꼽힌다. 만약 이혼 소송을 통해 쪽지 메모의 윤곽이 더욱 뚜렷해질 경우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을 추가로 회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재차 커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국세청은 불법 통치자금에 대한 과세 여부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rocky@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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