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헌의 히스토리 인 팝스] [225] 부통령의 징크스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하찮은 자리, 혹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하찮은 자리.” 조지 워싱턴에 이은 미국 두 번째 대통령이면서 최초 부통령이기도 한 존 애덤스가 미국 부통령을 두고 한 말이다. 부통령의 가장 큰 권한이 대통령 유고 시 권한 승계이므로 대통령이 멀쩡하게 살아 있으면 아무래도 존재감이 없는 자리이기도 하다. 루스벨트 시대의 부통령이었고 그다음 대통령이 되는 해리 트루먼도 비슷한 말을 했다. “부통령의 업무는 결혼식과 장례식에 가는 일이다.”
하지만 1970년대 이후로 미국 대통령제에서 부통령 역할은 결코 작지 않다. 무엇보다 상원 의회의 의장으로서 캐스팅 보트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경우도 많고, 대통령이 일일이 챙길 수 없는 외교 분야에서도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그다음 대선의 유력 후보가 된다는 점이 부통령직의 가장 큰 보상인 점만큼은 분명하다.
현재 민주당의 대선 후보이자 현 부통령인 카멀라 해리스까지 미국 부통령은 총 49명이 있었다. 이 중에서 임기 중에 대통령직을 승계했거나 그다음 대선에서 승리하여 대통령이 된 이는 15명이며, 부통령직을 지낸 뒤 대통령 후보로 승리한 이는 존 애덤스부터 지금 대통령인 조 바이든까지 6명뿐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대통령이 된 이 15명 중에 8년 이상 재임한 대통령, 즉 선거로 두 번 이겨 대통령을 유지한 이는 토머스 제퍼슨 한 명뿐이다. 하지만 ‘건국의 아버지’라고 하는 존 애덤스와 토머스 제퍼슨 시대의 부통령은 대통령 선거 차점자가 부통령을 차지했으므로 지금과 같은 러닝 메이트 시대가 열리고 난 이후에는 단 한 명도 재선에 성공한 이가 없다는 것이다. 오바마의 부통령으로 출발한 조 바이든도 결국 이 징크스를 벗어나지 못했다.
“나는 너를 둘러싼 저주야(I’m the curse hangin’ around you).” 펑크밴드 그린 데이의 인상적 후렴구처럼 이 저주의 징크스는 언제쯤 깨질까? 이 노래를 담은 음반 표지에 얼굴이 가린 해리 트루먼 사진이 있는 것도 공교롭다. 그 역시 재선에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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