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태준의 가슴이 따뜻해지는 詩] [33] 소나기
소나기
노랑멧새들 총알처럼 덤불에 박히고
마루 밑 흰둥이는 귀를 바르르,
갑자기 컴퓨터 화면이 시커메졌다
화악, 입안 가득 차오르는
화약 같은 생흙 냄새
세상이 아픈 자들, 대속(代贖)의 맨발들이 지나간다
-전동균(1962-)
곧 처서이지만, 중천에 솟은 해는 여전히 화염을 세게 뿜는다. 그나마 소나기가 대지의 더운 기를 조금은 덜어낸다. 여름 소나기는 갑자기 쏟아지다가 뚝 그친다. 우레가 울어 예고를 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대비할 겨를을 주지 않고 내리므로 여기저기 소란이 일어난다. 멧새는 황급히 탄환처럼 전속력으로 날아간다. 털빛이 흰 개도 빗소리에 화들짝 놀라 마루 밑에 들어가 비를 피한다. 세상은 일순에 정전이 된 듯 캄캄해진다. 굵은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져 내린 땅바닥에서는 흙냄새가 물큰물큰 올라온다.
그런데 시인은 왜 “화약 같은 생흙 냄새”라고 썼을까. 아마도 이 세계에 내리는 소나기와 흙냄새가 이제는 되레 낯설게 여겨지고 문명의 쇳내마저 풍겨나게 되었으니 그 씁쓸한 심사를 이렇게 표현한 것이 아닐까. 한편 시인은 생땅의 흙바닥에 세차게 떨어지는 빗줄기를 망연히 바라보면서 삶의 바닥을 생각하고, 아픈 사람을 생각하고, 또 종교적인 희생과 어떤 구원을 떠올리기에 이른다. 이러한 사유는 시 ‘배론’에서 “좀더 낮게/ 좀더 아프게/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하소서”라고 기도하는 것과 다를 바 없이 염결한 신앙심에서 비롯된 것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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