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가 부릅니다. 인순이의 ‘아버지’”…코미디에 성역은 없었다 [고승희의 리와인드]
메타코미디 클럽 ‘스탠드업 어셈블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긴장될 때 술 한 잔 하면 풀리잖아요. 그래서 저도 초보 때 술 마시고 운전했어요. 김호중 노래 틀고요. 차 아니었어요. 전동 킥보드였어요. 아, 아니다 아니다. 전동 스쿠터예요.” (손동훈)
“전 교도소에 에어컨을 틀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대신 조건이 있어요. 교도소가 관광지가 돼야 해요. 교도소의 엔터테인먼트화에 찬성하는 죄수들만 에어컨을 틀어주는 거예요. 사람들이 와서 ‘와, 유영철 아직도 살아있어’ 하면서 구경하고, 박근혜가 인순이의 ‘아버지’를 부르는 거죠. 그럼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와서 ‘공주님, 하지 마세요’ 하면서 맨날 울고, 박근혜는 에어컨 방 가고요.” (송하빈)
지난 17일 저녁 9시.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가 발칵 뒤집어졌다. 세종문화회관의 여름 공연 축제 ‘싱크넥스트24’의 일환으로 열린 메타코미디클럽의 스탠드업 코미디 때문이다. 코미디 공연이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현재 대한민국 코미디의 현재를 이끌고 있는 메타코미디는 이번 ‘싱크넥스트24’를 통해 만담 어셈블(8월 15일), 스탠드업 어셈블(8월 16~17일) 공연 총 4회차로 선보였다.
메타코미디 클럽의 마지막 회차였던 이날의 공연은 총 4회의 공연 중 최고 수위를 자랑했다. 이날의 호스트로 함께 한 개그맨 김주환은 “스탠드업 코미디를 처음 보는 분들이 있을 것 같아 미리 말씀드린다”며 “이 공연은 정치, 종교, 섹스, 페미니즘, 세대, 이재명, 윤석열, 방시혁, 과즙세연 다 나온다. 이 곳에 성역(聖域)은 없다”고 경고했다.
이날 공연에선 송하빈, 이제규, 손동훈, 김동하와 멕시코에서 스탠드업 코미디를 하고 있는 코미꼬까지 총 다섯 명이 공연을 꾸몄다.
이날의 공연을 위해 블랙박스 공연장인 S씨어터는 일렬로 배치된 의자를 모두 뜯어내고 음료를 둘 수 있는 동그란 선반이 달린 의자를 일층 객석에 배치했다. 화려한 조명 아래의 자유로운 객석이 진짜 코미디 클럽에 온 듯한 착각도 들었다.
스탠드업 코미디를 처음 접하는 관객이라면 자지러지게 놀랄 만한 수위의 ‘센 농담’들이 쉴새없이 등장했다. 다섯 명의 코미디언 모두 기본은 19금이었다. 보수적인 사회에선 금세 낯부끄러워질 만한 아찔한 말발들이 줄을 이었다. 일상의 대화에선 결코 사용하지 않을 비속어도 난무했다. 메타코미디에 따르면 세종문화회관에선 이번 무대를 마련하며 개그의 수위에 대해선 그 어떤 검열도 하지 않았다.
‘스탠드업 어셈블’ 공연을 선보인 김동하는 앞서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유튜브 댓글을 보면 ‘코미디언이 왜 욕을 하냐, 왜 야한 이야기를 하냐’고 한다. 영화에선 통용되는 것이 왜 코미디에선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고민하게 된다”며 “단지 웃기기 위한 수단으로 여러 소재를 쓰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메타코미디의 정영준 대표 역시 “공간의 특성상 수위에 대해서도 고민을 하고 있다. 수위 조절이 자기 검열이 되거나 이야기를 흐름을 완전히 해칠 수 있어 적정한 수준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각 코미디언에게 주어진 시간은 총 20분. ‘소통형 공연’인 만큼 다섯 명의 코미디언들을 눈에 띄는 커플만다 말을 시키며 자신만의 무대를 만들어갔다. 7년차 커플, 한 달차 커플은 어김없이 타깃이 됐고, 짓궂은 개그맨들은 체위, 패티시에 대한 수위 높은 개그로 관객들을 들었다 놨다 했다.
19금 개그가 80% 이상을 차지하는 가운데 다섯 개그맨은 현재 우리나라에서 상당히 이슈가 된 사회문제나 연예인, 정치인들의 사건 사고와 루머를 입에 올리기도 했다.
송하빈은 ‘교도소의 관광지화’를 통해 죄수들에게 에어컨을 틀어주자며 희대의 연쇄살인마 유영철, 음주운전으로 구속된 김호중, 박근혜 전 대통령을 언급해 뜨거운 함성과 박수를 받았다. 멕시코에서 20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날아온 코미꼬는 비행기 기장, 부기장을 소재로 ‘게이 유머’를 빌드업해 배우 유아인까지 나아갔다. 그는 “너무 잘난 사람들을 볼 때 질투를 하다 게이일 거라고 생각하곤 한다. 유아인 씨도 마찬가지다”라며 “한국에서 김밥집에 갔는데 배우 유아인의 사인이 있었다. 마약 김밥인가 싶어 깜짝 놀랐다. 알고 보니 사장님 얼굴이 예뻤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유아인은 최근 30대 남성 성폭행 혐의로 고소 당했다. 이제규는 ‘출생률 저하’ 이슈와 ‘금쪽 같은 내 새끼’에 등장할 법한 안하무인의 초등학생 자녀들을 엮어 스토리텔링 했다. 마지막 타자 김동하는 지역, 세대, 정치, 섹스 등 모든 소재를 건드리며 ‘스탠드업 코미디’ 제왕의 면모를 보여줬다.
수위가 높은 만큼 늦은 시간 열린 이날의 공연은 2005년생부터 출입이 가능했다. 흥미로운 것은 갓 스무 살이 된 관객은 물론 20대 초중반의 관객들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유튜브를 장악한 메타코미디 클럽의 구독자들이 온라인을 벗어나 오프라인 공연장으로도 집결한 것이다. 세종문화회관에 따르면 네 번의 메타코미디 클럽의 공연 중 곽범 이창호의 ‘빵송국’ 공연의 연령대가 가장 어렸고, 스탠드업 어셈블 중 대니 초(8월 16일)의 공연은 3040 세대 관객이 가장 많았다.
스탠드업 어셈블의 마지막 회차 공연에서도 40대 이상 관객은 물론 20대 아들과 50대 어머니 조합, 20대 딸과 40대 엄마의 조합도 적지 않았다. 공연장에서 만난 이수경(49) 씨는 “딸과 맥주 한 잔 한뒤 스탠드업 코미디 공연을 보러 왔다. 딸이 유튜브로 많이 보는 채널인데 난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어떤 공연일지 상상도 못했다”며 “생각보다 굉장히 수위 높은 성적 농담이 많이 나와 민망하기도 했지만 이런 것이 스탠드업 코미디라는 경험을 해본 것 같다”고 말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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