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디저트는 재료에서 시작… ‘자연소재의 순수함’이 내 철학”

권이선 2024. 8. 18.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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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디저트 대가, 요로이즈카 도시히코
종주국 프랑스 위협 일본 최고 권위자
손님 앞 즉석 조리 ‘라이브 디저트’ 선봬
20년간 이어와… 日 정·재계 인사들 발길
“재료 직접 재배… 모든 과정에 정성 녹여
韓 제과문화 고유의 것 발굴 땐 더 성장”
25일까지 롯데호텔·백화점서 팝업 운영

블루베리 색이 짙어지는 여름이 오면 그의 제자들은 분주해진다. 약을 치지 않아 모여든 벌레들을 핀셋을 들고 종일 골라낸다. 일본 최고로 꼽히는 그의 디저트는 하나하나 벌레를 고르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번쩍번쩍 분주히 흘러가는 도쿄의 중심에서 길고 느릿한 그의 음식을 찾는 이유다.

“똑같은 블루베리를 사용해서 디저트 제품을 만들었을 때 저보다 잘 만드는 사람도, 훨씬 기술 수준이 높은 사람도 물론 있을 수 있죠. 하지만 제가 ‘온리 원’(Only One: 독보적 존재)이 될 수 있던 이유는 모든 과정에 들어간 이 정성이 제자들에게도, 손님들에게도 모두 전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장인의 디저트 맛보러 가볼까 지난 16일 일본 디저트 권위자 요로이즈카 도시히코 파티셰가 롯데호텔 서울에 열린 팝업매장을 살펴보고 있다. 팝업매장은 지난 16일부터 25일까지 롯데백화점 본점 지하 1층 식품관과 롯데호텔 서울 델리카한스에서 열린다. 최상수 기자
‘오모테나시’(おもてなし·환대). 온 마음을 다해 정성껏 대접하는 일본 특유의 이 접객문화는 요로이즈카 도시히코(58) 파티셰의 디저트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화려하고 자극적이고 빠른 것들 속에서 전통적이고 기본에 충실한 그의 디저트는 거장들의 고전 명화에 가깝다. 여기에 일본 오다와라시와 에콰도르에 있는 그의 농장에서 재배된 소재들은 음식의 깊이와 진정성을 더한다.

16일 롯데호텔 서울에서 만난 요로이즈카 파티셰는 “블루베리, 오렌지, 밤, 카카오 등 전 점포에서 사용하는 15개 작물을 직접 재배하고 있다”며 “모든 음식은 재료에서부터 나온다는 신념을 직원들에게 전파하고 있다. 자연소재 그대로의 순수함을 살려 섬세하고 풍부한 맛을 내는 것이 내 디저트 철학의 기본”이라고 설명했다.

요로이즈카는 이 같은 장인정신을 기반으로 종주국 프랑스를 위협하는 일본 디저트 업계를 이끈 최고 권위자다. 일본인이면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일본 디저트 문화에서 한 획을 그은 인물이다. 그중에서도 ‘라이브 디저트’를 20여년 전 처음으로 선보이며 그만의 디저트 세계를 구축했다. 바 테이블에 앉은 손님들 앞에서 즉석 디저트를 만드는 형태의 영업으로, 일본 정·재계 인사들도 그의 매장을 줄지어 찾는다. 밀가루 반죽을 여러 겹으로 겹쳐 바삭하게 구운 페이스트리에 크림을 넣고 층층이 쌓아 올린 밀푀유에 수박을 얹어낸 ‘수박 밀푀유’가 요로이즈카 매장의 대표 메뉴다. 수분이 많은 탓에 절대 미리 만들 수 없어 ‘라이브’로만 맛볼 수 있다.
라이브 디저트는 미각은 물론 그가 작품을 만드는 모습을 보며 시각까지 충족시킨다. 먹는 것을 넘어 음식과 소통하며, 육체적 허기는 물론 마음의 허기까지 달래는 일이다. 요로이즈카는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은 미각뿐만이 아니라 오감을 만족시키는 일이라고 흔히들 말한다. 그러나 이를 넘어선 육감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소신을 드러냈다.

한때 일본에서는 라이브 디저트 매장이 유행처럼 번졌다가 지금은 거의 사라졌다. 이유는 명확하다. 수지타산에 맞지 않기 때문. 정해진 메뉴 없이 셰프가 즉석에서 코스를 내놓는 ‘스시 오마카세’의 경우 1인당 50만원에 달하지만 디저트의 경우 한 품목당 2만원 정도가 상한선인 탓이다. 요로이즈카는 “라이브 디저트는 저의 자존심”이라며 “노동이 생활 유지를 위해 능력을 활용해 돈을 버는 것이라면 장인은 손님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며 자존심을 이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손님들과의 소통을 계속 이어나가는 것은 나의 장인정신을 유지하고 전파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요로이즈카의 이번 방한은 롯데호텔 초청으로 성사됐다. 요로이즈카는 2022년부터 매년 롯데호텔과 롯데백화점에서 팝업스토어를 열고 있다. 2022년부터 롯데호텔 서울과 함께 매년 팝업 매장을 열었다. 첫해부터 문전성시를 이뤘을 뿐만 아니라 지난해에도 전년 대비 매출이 15% 이상 증가했다. 올해도 25일까지 실제 그의 매장에서 판매되는 제품들을 맛볼 수 있다. 개점 첫날인 이날도 요로이즈카 디저트를 경험하려는 손님들로 매장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3년간 한국을 오가며 지난 몇 년간 국내 디저트 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하는 모습을 목도한 요로이즈카는 “일본이 프랑스 디저트 업계와 동등해질 수 있었던 것은 프랑스는 가지지 못한 일본만의 것을 구현해냈다는 데 있다”며 “한국도 한국에만 있는 제품이나 한국 식재료를 이용해 만드는 제품이 많아져야 디저트 시장이 한 단계 더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K팝이나 한국 영화가 세계 수준으로 성장했듯 제과 분야에서도 한국만의 문화가 구축되고, 한국이 시장을 리드할 수 있는 날이 충분히 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그동안 출판이나 강연 제안이 숱하게 들어왔지만 모두 거절했던 요로이즈카는 이제 35년간의 제과 경력을 완결 지을 준비를 해나가고 있다고 말한다. 그의 레시피를 집대성한 책을 내후년 60세까지 완성하는 것이 목표다. “화려한 제과 책들은 이미 시중에 많습니다. 하지만 그런 책들은 한 번, 두 번 보면 더는 겉표지를 들추지 않아요. 제 인생에서 책은 오직 한 권뿐일 테고, 그 이상은 필요가 없을 겁니다. 내용에 충실하고 오래오래 남을 그런 책을 쓸 계획입니다.”

권이선 기자 2s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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