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은 막고, 법원은 조건 달고…윤 정부서 ‘집회 제한’ 늘었다
경찰의 옥외집회 금지 통고 건수
박근혜 정부 때보다도 3배 많아
처분 정지하려 법원에 소송 내도
신고대로 집회 ‘전부 인용’ 17%뿐
조정 요구 ‘일부 인용’ 58%로 증가
“법원 중재자 역할에 머물러
집회의 자유는 점점 후퇴”
1985년 이래 매년 3월8일 ‘세계 여성의날’에 한국여성대회 행진 집회를 해오던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올해 40년 만에 처음으로 경찰에 집회 제한 통고를 받았다. 행진 경로(서울 세종대로·종로·우정국로)가 ‘교통 소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집회를 금지·제한할 수 있는 주요 도로’이기 때문에 오후 5시가 넘어 행진하면 퇴근 시간대와 겹쳐 교통혼잡이 우려된다며 경찰은 제한을 통고했다. 통상 평일 퇴근 시간대 행진을 포함한 집회신고서를 내왔어도 집회 금지·제한 통고를 받지 않았던 단체로선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여성단체연합은 법원에 경찰의 제한 통고를 취소해달라는 2건의 소송을 제기했다. 본안 소송(옥외집회 제한 통고처분 취소 소송) 결과가 나오는 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임박한 집회를 열 수 있도록 경찰의 집회 제한 집행을 막아달라는 소송을 함께 냈다.
법원은 집행정지 소송에서 ‘일부 인용’ 결정을 내렸다. 대신에 퇴근 시간대를 피해 행진하라며 행진 시간을 오후 5시~5시30분과 오후 7~8시로 쪼개서 허가했다. 여성단체연합은 결국 예정한 경로를 다 이동하지 못한 채 오후 5시30분 전에 행진을 마쳐야 했다.
■ 경찰·법원이 ‘이중의 벽’으로
집회의 자유가 윤석열 정부 들어 축소되는 경향이 뚜렷하다. 헌법 제21조는 ‘모든 국민은 집회의 자유를 가진다. 집회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지만, 이 조항은 2024년 한국 현실과는 괴리가 크다. 집회 자유는 경찰과 법원 ‘이중의 벽’에 가로막혔다. 경찰이 집회 장소·시간 등을 이유로 금지·제한 통고하는 비율이 늘었다. 이를 막아달라고 법원을 찾아가도 신고 내용대로 받아들여지는 비율은 떨어졌다. 집회를 ‘허가’하더라도 여러 조건을 다는 경우가 늘어났다.
경향신문이 18일 경찰청으로부터 확인한 박근혜 정부 출범(2013년) 이후 현재까지 옥외집회 금지 통고처분 현황을 보면, 2013년 204건, 2014년 281건, 2015년 193건, 2016년 96건 수준이었던 금지 통고처분은 문재인 정부 들어 2017년에는 74건, 2018년 12건, 2019년 9건으로 줄었다. 이후 2020년 4380건, 2021년 5129건으로 급증했다. 코로나19 유행 시기 감염을 막기 위해 집회를 국가적으로 제한하면서 증가한 것이다. 윤석열 정부로 넘어온 2022년엔 728건, 지난해 619건, 올해 상반기(1~6월)에는 235건을 기록했다. 코로나19 시기를 제외하면 윤석열 정부 때 경찰의 옥외집회 금지 통고 건수가 박근혜·문재인 정부보다 확연히 늘었다.
전체 집회 신고 건수를 감안해도 이런 경향은 확인된다. 전체 집회 신고 건수에 대한 경찰의 금지 통고처분율은 2013년 0.14%, 2014년 0.19%, 2015년 0.15%, 2016년 0.11%, 2017년 0.10%, 2018년과 2019년엔 0.01%로 감소하는 흐름을 보이다가 코로나19 유행기인 2020년(3.15%), 2021년(3.40%) 급등했다. 이후 2022년 0.42%, 지난해 0.49%, 올해 상반기 0.41%로 집계됐다.
집회 신고 내용 일부 제한 사례는 반영하지 않은 수치다. 경찰은 일부 제한 사례는 따로 집계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박지아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는 “법원의 명확한 기준이 없는 탓에 경찰이 기존에 개최한 집회와 같은 장소·규모·시간으로 신고한 집회에 대해 별다른 사유 없이 금지 통고를 반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향신문은 박근혜 정부 이후 집회 주최 측이 경찰의 금지 통고에 반발해 법원에 낸 본안 소송 중 1심 이상 선고가 이뤄진 사건의 판결문과 이 가운데 집행정지 소송이 함께 제기된 사건의 결정문을 전수 분석했다. 지난달 19일 기준 1심 선고 이상 이뤄진 경찰의 옥외집회 금지 통고처분 취소 본안 소송은 박근혜 정부(2013년 2월25일~2017년 3월10일) 당시 제기된 것이 24건, 문재인 정부(2017년 5월10일~2022년 5월9일) 9건, 윤석열 정부(2022년 5월10일~2024년 7월19일) 18건이다. 윤석열 정부 3년 차에 이미 문재인 정부 때의 접수 건수를 넘어섰고 박근혜 정부 4년여에 육박하는 수치를 나타냈다.
경찰의 집회 금지 처분을 정지해 집회의 자유를 보장해달라는 집행정지 소송을 분석한 결과, 법원이 집회 주최 측 주장을 모두 받아들인 비율(전부 인용률)은 윤석열 정부에서 확연히 낮았다. 전부 인용률은 박근혜 정부 때 40%(20건 중 8건), 문재인 정부 때 44.44%(9건 중 4건)였는데, 윤석열 정부에선 17.64%(17건 중 3건)에 그쳤다. 법원이 주최 측 주장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은 비율(기각률)은 박근혜 정부 때 20%(4건), 문재인 정부 22.22%(2건), 윤석열 정부 들어 23.52%(4건)였다.
■ 집행정지 인용률 하락 이유는?
윤석열 정부 들어 집행정지 전부 인용률이 10%대로 급락한 것은 법원이 집회 시간이나 장소 등을 재조정해 ‘일부 인용’으로 결정한 비율이 높아진 것과 관련이 있다. 일부 인용률은 윤석열 정부 시기 58.82%(10건)로, 박근혜(40%)·문재인(33.33%) 정부 때보다 높았다. 경찰이 1차로 집회를 금지·제한하고, 법원에서 2차로 집회 내용을 조정해 ‘조건부 허용’하는 구조가 늘고 있는 셈이다.
법원이 ‘일부 인용’ 판단한 결정문들을 보면, 주로 집회 장소나 시간, 시위 형태 등을 조정하라는 내용이 많았다. 민주노총이 지난해 7월 ‘노동과 민생을 도외시하는 윤석열 정권 퇴진’을 외치며 진행한 총파업 대회는 경찰의 금지 통고를 거쳐 법원에서 일부 행진 경로에 제한이 걸렸다. 민주노총은 “서울 용산역 앞 교차로에서부터 삼각지역 10번 출구를 거쳐 전쟁기념관 북문 전 구간 인도로 행진하겠다”고 신고했다. 경찰은 “신고한 행진 구간에 포함된 한강대로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시행령 12조에 따른 ‘주요 도로’에 해당해 행진 시 교통 소통이 우려된다”고 했다. 행진 경로 일부는 반대 성향 단체에서 먼저 신고한 장소와 중첩된다는 이유 등으로 행진 금지를 통보했다.
경찰은 지난해 10월 대통령실 앞 이태원로와 서빙고로 등 11개 도로를 집회 금지·제한 통고가 가능한 ‘주요 도로’에 새롭게 포함하는 내용으로 집시법 시행령을 개정해 시행 중이다. 이후 경찰의 금지 통고처분에는 집시법 시행령 12조가 사유로 따라붙는 경우가 흔해졌다.
이에 대해 법원은 “행진을 전면으로 허용하는 경우 교통 소통에 장애를 발생시키는 등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다만 위험이 덜한 ‘행진 허용 범위’에 한해 처분 효력을 정지함이 상당하다”고 밝혔다. ‘행진 허용 범위’에는 행진 장소와 내용에 관한 조건이 담겼다. 행진을 마치는 전쟁기념관 북문의 경우 ‘진행 방향의 차로에 인접한 인도로 한정해야 한다’고 했다. 또 ‘행진 장소 전 구간 진행 방향의 차로에 인접한 인도로만 행진하고 횟수는 한 방향으로 1회에 한해야 한다’는 조건도 달렸다. 이 밖에도 ‘행진 질서유지인을 20~50명당 1명의 비율로 최대 200명 범위에서 배치 및 질서유지인 구별을 위한 어깨띠 등 표식을 할 것’ ‘다른 집회 단체와는 4m 이상 간격을 둬야 할 것’ 등 세부 조건도 명시됐다.
윤석열 정부 초기인 2022년 7월2일 민주노총에서 주최한 전국노동자대회 행진 당시엔 법원이 시간도 조정했다. 민주노총은 오후 4시부터 3시간 동안 행진할 계획이었다. 경찰은 교통 문제를 들어 이를 금지했고, 법원은 오후 4시부터 6시30분까지 행진할 수 있다고 허가했다.
■ “집회의 자유가 허가제인가”
법률가들은 경찰뿐 아니라 법원마저 헌법상 권리인 집회의 자유를 손쉽게 축소·제한하려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서범진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는 “법원에서 집행정지를 일부라도 인용해주는 것을 감사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현재 상황은 사법부의 힘을 과도하게 키우는 것”이라며 “일부 인용은 집회 허가 주체가 경찰에서 법원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의미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종훈 변호사(법무법인 시민)는 “현 정부 들어 옥외집회 금지 통고 경향이 커졌고 법원은 중재자 역할에 머물면서 집회의 자유가 후퇴하고 있다”고 밝혔다.
재경법원의 한 판사는 “집행정지 사건은 집회 날을 며칠 앞두고 급하게 접수되는 경우가 많아 본안 소송처럼 시간적 여유를 두고 살피기 어려운 한계도 있다”고 말했다.
유선희·김나연 기자 y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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