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사상 감별’이라는 야만
중세 마녀 감별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지목된 여인을 돌덩이에 매달아 호수에 던졌다. 가라앉으면 무죄, 떠오르면 마녀였다. 마녀면 화형이다. 뜨겁게 달군 쇠판 위를 걷게 해서 쓰러지면 무죄, 견뎌내면 마녀였다. 한번 지목되면 어차피 죽었다. ‘말레우스 말레피카룸’이라는 15세기 책에 나와 있다. ‘마녀를 심판하는 망치’라는 뜻인데 지침서 역할을 했다. 일본 에도 시대에 기독교를 탄압하면서 신자를 색출하는 방법도 기가 막혔다. 십자가 상이 새겨진 금속판 위를 밟고 지나가게 했다. 밟으면 집으로 갔고, 거부하면 망나니에게 붙들려 갔다.
▶중국 문화혁명 때 베이징의 어떤 여교사는 학생들에게 “지진이 나면 최대한 빨리 대피하라”고 했다. 학생들이 “모택동 초상화를 들고 나갈까요?” 물었다. 교사는 얼른 대답을 못하고 “최대한 빨리 피해”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이 50세 여교사는 반모택동주의자로 몰려 홍위병 여학생들에게 맞아 죽었다. 캄보디아 ‘킬링필드’ 때는 손에 굳은 살이 없거나, 안경을 썼으면 학살 대상인 지식인이었다.
▶한국에서도 인간의 속생각까지 가려내는 ‘감별 DNA’가 정치판을 흔들곤 했다. 2016년 총선을 앞두고 ‘진박 감별사’ 파동이 벌어졌다. 박근혜 대통령의 마음, 즉 ‘진짜 박심’을 얻은 후보를 감별한다는 사람들이 여당 공천을 좌우했다. 특정 지역의 일부 후보들은 마치 암수 판정을 기다리는 병아리라도 된 신세였다. 이것이 탄핵으로 이어진 보수 몰락의 시발점이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야당에 횡행하는 ‘수박’ 감별은 원래는 간첩 잡는 데 쓰던 말이었다. 겉으론 선량한 시민이지만 속으로 빨강 사상을 가졌다는 뜻이다. 근년에 야당 개딸들에 의해 완전히 의미가 뒤집힌 수박 감별은 비명계 색출용으로 쓰인다. 작년 가을 인터넷에 퍼졌던 ‘수박 감별기’가 섬뜩하다. 모두 6가지 기준으로 채점을 했다. 1) 검사탄핵 발의 2)불체포특권 포기 3)대의원 1인1표제 같은 쟁점에 어떤 입장인가를 물었다. 당도(糖度)를 0~5점으로 매겼는데, 5점이면 축출 대상이 됐다.
▶며칠 전 독립유공자의 자손들이 주축이 된 광복회에서 누군가의 속생각을 들여다본다는 감별법을 제시했다. 이른바 ‘뉴라이트 판별법 9가지’인데, ‘이승만을 건국 대통령이라고 하는 자’ ‘1948년(8·15)을 건국절이라고 하는 자’를 우선 찍어냈다. ‘건국’ ‘건국절’을 입에 올리면 ‘친일 매국’이 된다는 식이다. 한 발자국 삐끗하면 사상 검증 종교 재판소가 될 판이다.
김광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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