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학생인권법, 모두의 인권을 위한 법

기자 2024. 8. 18.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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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학교에 성소수자 인권을 주제로 특강을 나갈 때가 있다. 강의가 끝났을 때 조용히 한 학생이 찾아와서 자신도 성소수자 당사자라고 이야기를 꺼낼 때가 있다. 어렵게 찾아준 그 용기에 감동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안타깝기도 하다. 이러한 자리를 빌려서야 비밀리에 자신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 그 학생에게 학교는 어떤 공간일까.

또 다른 감동을 받은 일도 있다. 한번은 강의 때 알려준 주소로 한 학생이 e메일을 보내왔다. 주변에서 들은 이야기들로 인해 막연히 성소수자에 대해 편견을 갖고 있었는데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아직 성소수자를 완전히 지지하긴 어렵긴 해도 좀 더 노력해보겠다는 내용이었다. 한 번의 교육이 어떻게 개인을 바꿀 수 있는지를 느끼는 순간이었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교육이 특강이 아니라 상시적으로 이루어져야 함에도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성소수자 학생들이 학교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긍정받기보다는 존재 자체를 환영받지 못하는 일들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4월 충남 학생인권조례가, 6월에는 서울 학생인권조례가 의회 의결로 폐지되었다. 두 조례 모두 법원의 집행정지 결정으로 효력이 당분간은 유지되고 있으나, 여전히 학생인권조례 폐지 시도는 이어지고 있다.

그나마 국회가 움직이고 있다. 6월20일 국회에서 사회민주당 한창민 의원 대표발의로 ‘학생 인권 보장을 위한 특별법안(학생인권법)’이 발의되었고, 더불어민주당 김문수 의원 역시 법안 발의를 준비 중이다. 또한 현재까지 37명의 국회의원들이 의원실 앞에 인권방패 현판을 걸고 학생인권법 제정을 약속했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인권의 후퇴가 이루어지는 것에 맞서 국회가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문제는 주관 부처인 교육부가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학생인권법에 대한 국회 전문위원 검토보고서에서 교육부는 조항 하나하나마다 ‘신중검토’ 의견을 밝히고 있다. 특히 “모든 학생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실현하며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이루어나갈 수 있도록 한다”는 법의 목적에 대해 “법 적용 및 해석의 혼란, 학생·학부모의 권리와 책임에 대한 인식 저하, 교권침해, 교육현장의 갈등 초래 등이 우려된다”며 신중검토 입장을 밝혔다. 사실상 법 제정을 반대한 것이다.

학생인권이 보장되면 교권이 침해된다. 이는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한 이들이 한 주장이며 일각에서 학생인권법을 반대하는 이들의 주장이기도 하다. 그러나 교권과 학생인권은 대립하는 문제가 아니며 이것이 허구의 구도임은 이미 밝혀진 사실이다. 지난 4월 국회입법조사처 입법과 정책에 게재된 논문은 학생인권조례가 실시된 지역의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리고 있다. 학생인권이 보장될수록 교사의 노동권, 이른바 교권이 보장될 기대도 커진다. 자신의 권리를 충분히 보장받고 실현할 수 있다고 여기게 된 학습자일수록 다른 사람의 지위와 권위를 존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권은 각 주체에게 한정된 파이를 나누는 문제가 아니며, 각자의 인권이 구체적으로 규정되고 보장될 때 모두의 인권이 보장된다. 4월30일 “교육공동체 내 한 구성원의 인권을 지우는 방법으로는 다른 구성원의 인권 역시 지킬 수 없다”는 이름으로 학생인권조례 폐지 규탄 성명을 낸 1478명의 교사들 역시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다. 학생인권법은 그 사실을 보다 명확히 규정하는 법이고 그렇기에 필요하다.

한 가지만 더 지적하고 싶다. 김문수 의원이 발의 준비 중인 법안에서 ‘성적지향’이라는 문구와 ‘소수자 학생 권리 보장’에 대한 내용이 없다는 점은 심히 우려스럽다. 학생 인권 보장이 모두의 인권을 보장하는 것처럼, 성소수자 학생의 인권이 보장될 때 모든 학생의 인권이 보장된다. 누구도 존재를 부정당하지 않고 존엄한 삶을 누려야 한다는 목적에 올바르게 부합하는 학생인권법이 제정되길 촉구한다.

박한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

박한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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