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 발언대]의료급여 개악안을 전면 철회하라
지난 7월25일 보건복지부는 의료급여 환자들이 부담하는 병원비를 정액제에서 정률제로 바꾸겠다고 통보했다. 현행 1000~2000원이던 외래진료비 본인부담금은 최대 8%까지 높이고, 500원이던 약값은 최대 5000원으로 올린다. 이는 의료급여 수급자들의 일상에 큰 파장을 일으킬 변화지만 최소한의 공론화 과정도, 의견수렴도 없었다. 여러 만성 질환을 가진 수급자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이번 조치의 목표에 대해 정부는 ‘재정 부담’ ‘비용 의식 제고’를 들며 예산 절감이 목표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적정 의료 이용’ 같은 말로 수급자들의 건강을 우려하는 양 분칠조차 하지 않았다. 대단한 자신감이지만 동원하는 논리는 매한가지다. 정부는 수급자들이 비용 부담이 적어 병원을 너무 자주 가고 있다고 또다시 호도하는 중이다.
의료급여 환자의 병원 이용이 잦은 것은 당연하다. 빈곤층일수록 더 많이 아프고, 아픈 사람은 가난해지기 쉽기 때문이다. 기초생활수급 가구의 41%가 노인이고, 만성 질환자가 있는 가구 비율은 91%다. 건강보험 가입자들과 비교하며 병원 방문 일수를 논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그간 전체 재정 지출이 늘어났다 해도 그것은 비급여의 급여화 등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수준을 반영할 뿐이다. 실제 최근 5년(2018~2022)간 의료급여의 총진료비 연평균 증가 추세(7.3%)는 건강보험(7.2%)과 유사하다. 이렇듯 의료급여 환자들이 특별히 더 많은 재정 지출을 유도한다는 증거는 없다.
이런 모든 사실보다 더 우위에 있는 한 가지 진실은, 진료 내용을 결정하는 것은 환자가 아니라 병원이라는 점이다. 아파서 병원에 갈 따름인 사람에게 ‘재정 절감’을 해내라는 요구는 아파도 병원에 가지 말라는 주문에 불과하다. 이는 이미 실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아파도 치료를 포기한 비율은 수급 가구에서 27.8%에 달하고, 진료비 부담이 포기 사유인 경우가 87.1%다(보건사회연구원).
이 건조한 숫자는 현실의 비참을 담지 못한다. 인슐린과 혈당 체크기를 사는 비용이 부담스러워 주사기를 다시 쓰는 당뇨환자, 아픈 딸을 업고 병원에 갔다가 10만원을 선수납하라는 요청을 받고 당황했던 수급자 엄마의 기억, 수급자가 부담할 만한 수준에서만 검사를 권한 병원 때문에 방광암을 방광염으로 알고 수년간 방치한 사람, 심한 복통에도 야간 응급실 비용이 비쌀 것을 염려해 참다 복막염에 이른 쪽방 주민. 전 국민 건강보험과 의료급여를 실시하는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이번 의료급여 개악안은 이 좌절의 농도를 더욱 짙게 만들 것이다. 정액제에서 정률제로의 변경은 비용 증가를 넘어 예측 불가능성의 신설이기 때문이다. 사회보장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이번 의료급여 개악안은 하루속히 전면 폐기되어야 한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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