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산 게 무슨 죄야, 내 돈 내놔”…티메프 사태 피해자 뭉쳤다
“열심히 산 게 무슨 죄야!” (퍽) “내 돈 내놔라!” (퍽) “구영배 구속하라!” (퍽)
고무망치를 치켜든 이들이 검은색 박을 사정없이 내리치자 박에 붙어 있던 기업인들의 웃는 얼굴이 속절없이 찢어졌다. ‘쩍’ 하는 소리와 함께 열린 박 사이로 ‘구영배 큐텐 재산 공개 및 구속 수사 촉구’, ‘정부 관리·감독 부실에 1조6천억 어디로…?!’라고 적힌 펼침막이 주르륵 펼쳐졌다.
18일 오후 4시,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금융위원회 옆 도로에는 검은 옷에 검은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줄지어 앉았다. 이날 열린 ‘검은 우산 피해자 비상대책위원회(검은 우산 비대위) 출범식’에 참석한 130여명의 참가자는 30도가 넘는 무더위보다 더 뜨거운 분노를 토해 냈다. 이들은 지난달 말 대규모 정산 지연 사태를 빚은 온라인 쇼핑몰 티몬·위메프(이하 티메프)의 피해자들로, 그동안 정부의 규제 사각지대에 놓였던 전자상거래 시장을 뜻하는 검은 우산을 들고 집회에 나섰다.
검은 우산 비대위 대표를 맡아 출범 성명서를 낭독한 신정권씨는 “고의적이고 악행에 가까운 큐텐그룹 구영배 사단의 미정산·미환불은 많은 피해자를 양산하고 있다. 버티던 인터파크커머스마저도 회생신청을 했다. 불과 2일 전 알렛츠(인테리어 제품 판매 온라인 플랫폼)의 돌연 사업 종료로 큐텐그룹 외에도 또 한 번의 플랫폼 피해자가 나타나게 됐다”며 “이는 추가적인 피해가 언제든 양산될 수 있음을 예고하고 있다. 전 국민 중 누구나 해당할 수 있는 중차대한 상황이기에 검은 우산 비대위를 만들어 다시는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대책 마련을 촉구한다”고 비대위 설립 취지를 밝혔다.
큐텐·티몬·위메프 대표들의 얼굴이 달린 박 터뜨리기 퍼포먼스 뒤엔 티메프 판매 및 소비자들의 절절한 피해 사례 발언이 이어졌다. 한 피해 입점업체 직원은 “티메프 합쳐 약 30억원이라는 거대한 정산금을 아직 받지 못했다. 그 와중에 대표는 암 투병 중이고, 수십 년 함께 일해 온 가족 같은 직원 15명 중 7명을 이번 달에 어쩔 수 없이 감축했다”며 “높은 고금리 대출 이자 비용을 부담하면서 가장 빨리 줄일 수 있는 것이 인건비였다. 이번 사태로 막대한 실업자가 발생할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티메프 피해 소비자 대표 ㄱ씨도 “이번 사건은 오늘은 우리지만 내일은 누가 당할지 모르는, 24시간 꺼지지 않는 ‘묻지마 범죄’”라며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을 반복할 거냐. 우리의 여름을 돌려달라”고 호소했다.
검은 우산 비대위는 티메프와 모기업 큐텐을 성토하면서도, 이미 2021년 머지포인트 사태를 겪었음에도 이와 같은 구조적인 플랫폼 미정산 사태를 방치한 정부 당국의 책임도 지적했다. 비대위는 “티메프는 완전자본잠식 상태였으나 금융감독원은 관리 감독의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 구영배 큐텐 대표가 적자 기업들을 인수할 때, 공정거래위원회는 충분히 검토하지 않고 합병을 승인했다. 티메프가 계약이행보증보험을 제출하지 않았음에도 중소기업유통센터는 검토 없이 지원 사업(소상공인 온라인 쇼핑몰 판매 지원 사업)을 진행했다”고 짚었다. 이에 대해 중소기업유통센터는 “아무런 검토 없이 사업자를 선정했던 것은 아니며, 당시 티메프의 신용평가서 확인을 거쳤다”고 설명했다.
검은 우산 비대위는 △정확한 피해 규모 파악 △실효성 있는 피해자 지원 대책 마련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법 등 근본적 제도 개선을 요구했다. 신 대표는 “저희가 파악한 (미정산) 피해액만 1조6천억원으로, 인터파크커머스만도 (피해액이) 550억원이라고 발표가 났지만 축소 발표됐을 가능성도 있다”며 “집단 이기주의자들처럼 저희만 구제해달라는 게 아니라, 근본적인 법 개정을 통해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해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티메프는 현재 자율구조조정(ARS) 프로그램을 밟고 있는데, 오는 30일 채권단과 정부 유관기관이 참여하는 2차 회생절차 협의회를 앞두고 있다. 협의회를 거쳐 채무자인 티몬·위메프와 채권자가 합의를 이루면 회생신청은 철회된다. 양쪽이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법원은 회생절차 개시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티몬과 위메프 쪽은 2차 협의회 전까지 투자자를 확보하겠다는 계획이다.
김채운 기자 cw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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