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 독정종식(毒政終熄)

손균근 선임기자 2024. 8. 18. 19:5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초유의 두 동강 난 광복절, 비이성 독한 정치가 초래
양김의 상대 인정 지혜로 대통령 정치복원 나서야

“어른(김영삼·YS)께서 대통령에 취임하자, 김대중(DJ)을 그냥 둬선 안된다는 진언이 많았는데, 꿈쩍도 안했다.” YS를 서거 때까지 지근거리에서 보좌한 오랜 벗이 전해준 말이다. YS대통령 시절 간혹 DJ 관련 파일이 오면 “씰데 없는 짓”이라며 내쳤다고 한다. DJ는 YS를 이어 1997년 대통령이 된다. 헌정 사상 최초의 여야 정권교체였다. DJ는 전직 대통령인 YS의 외환위기 책임론에 대해 손사래를 쳤다고 한다. DJ의 영원한 비서실장으로 불리는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말이다.

양김(兩金)은 군정종식을 위한 동지이자 경쟁자였다. YS의 3당 합당 이후 두 사람은 앙숙에 가까웠다. 차례로 대통령이 됐지만 정치보복은 없었다. 상대를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설정하고 털었다면, 수 십 년 한국 정치무대를 이끈 YS나 DJ 모두 흠결이 없었을까. 단언하기 어렵지만 나의 짐작이다. 당시 청와대는 말 그대로 무소불위였다. 정치 9단인 그들은 알고 있었다. 정치보복을 불법이라는 포장지에 싸서 던지는 것이 소탐대실임을 정확히 꿰뚫었다. 무한정쟁과 사생결단식 정치가 몰고 올 국가적 파장과 국민의 손실을 감당하기 쉽지 않다는 것도 알았을 것이다.

양김 얘기를 꺼낸 이유를 짐작했을 것 같다. 정치가 독해지면 국민이 피해를 본다. 정치가 약이 아닌 독을 만들기 때문이다. 독정(毒政)은 민주주의 원리인 대화와 타협을 불가능하게 한다. 오로지 힘의 충돌이 무한반복된다. 이성과 합리가 사라진 시간이 된다. 양김은 대통령으로서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책무를 다하는데 더 집중했다. 그렇게 독정의 늪을 우회했다.

YS와 DJ이후 여야 정권교체기 마다 비극이 되풀이 됐다. 독정은 국민을 갈가리 찢었다. 전직 대통령이 수사선상에 오르는 장면이 반복될 때마다 지지자들의 독기도 배가된다. 진영마다 극단적 강경파가 설치는 공간이 넓어진다. 여야 할 것 없이 강경파의 눈치를 보지 않으면 존립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나아가 자신의 들보는 감추고 상대의 티끌을 나무라는 염치(廉恥)를 잃은 정치가 강경파의 환호 속에 판을 친다. 꼬리가 몸통을 흔들고, 머리가 따라 움직이는 반이성적 비합리적 상황이 연출된다. 양 극단에 갇힌 정치는 서로를 토론과 협상이 아니라 제거의 대상으로 설정한다. 정치적 내전상황이다.

독정은 조선 망국기에 여실히 드러난 바 있다. 독정은 공적 권력을 사유화 한다. 조선 말 권문세족은 공권력을 사익추구에 썼다. 이는 개인의 영달을 위해 나라까지 팔아먹는 친일매국으로 치달았다. 독정은 외부 환경변화에 둔감하다. 그저 자신과 가문의 안위를 챙기는 마당이니, 정세변화가 눈에 들어올 리 없다. 독정은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다.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은 외란에 맞선 주전파와 주화파간 경쟁을 담았다. 경쟁의 중심에는 나라와 백성이 있었다. 상대의 주장에 반대하지만 서로의 충(忠)을 의심하지 않고 존중했다. 하지만 조선 말 독정에서 자신의 반대편은 외세에 기대서라도 제거해야 할 대상이 된다. 쇄국과 개국파 모두 상대를 누르기위해 외세를 한반도에 끌어 들이는 일조차 서슴지 않았다. 독정의 시대 나랏일은 대전용 멘트에 지나지 않았다. 한 이방인은 이를 두고 ‘조선이 스스로 무너졌다’고 기록했다. 그리고 35년간 혹독한 민족 수난기를 겪었다.

79주년 올해 광복절 쪼개진 경축식은 독정의 한 단면으로 읽힌다. 광복 후 남북 분단도 모자라 한국의 분열상이 그대로 노출됐다. 반쪽 행사가 아니라는 대통령실의 반박은 공허하다. 여야는 물론 각각의 지지층이 쏟아낸 험한 말은 정치적 내전 상황을 보여줄 뿐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불안한 역사관을 가진 극단세력과 분명하게 선을 그어야 한다. 여야 모두 자기 진영의 극단세력에게 증오와 혐오를 멈추라고 요구해야 한다.


윤 대통령의 이른바 고독한 결단이 필요하다. 윤 대통령은 이미 집권자이고, 다시 대선에 출마할 일이 없다. 승자의 독식은 가능하지 않다. 견제와 균형이 민주주의 원리이다. 국민통합을 위한 승자의 아량이 필요하다. 야당이 아니라 윤 대통령의 성공적 국정을 위한 일이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대화의 문을 열라는 것이다. 입법과 거부권의 반복은 국정동력을 소진시킨다. 대화와 타협을 위한 정치협상에 나서야 한다. 국회 1당인 야당도 마찬가지다. 총선 승리를 강경지지층의 전리품으로 착각해선 안된다. 18일 더불어민주당 전대에서 다시 당선된 이재명 대표도 민주주의에서 ‘싹쓸이’가 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극렬 지지층에게 말해야 한다. 한번에 열 걸음을 가려하면 안된다. 협상을 통해 한 걸음 두 걸음이라도 앞으로 나갈 방법을 찾아야 한다.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는 군인이 아니라 평범한 시민이다. 한국정치가 독기를 빼는 용기를 보여주기 바란다. 그래야 국민이 편해진다.

손균근 서울본부장 겸 선임기자·㈔한국지역언론인클럽 이사장

Copyright © 국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