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호의 와인 한 잔] 언젠가는

최태호 부산가톨릭대 와인전문가과정 책임교수 2024. 8. 18.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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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와인을 마시는 문화에 미적 요소가 가미되면서 가장 많은 변화를 겪은 것은 와인잔이다.

17세기 이전에는 컵 은 토기 나무 가죽으로 만든 그릇에 와인을 마시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근대 초기 고급 와인이 등장하고 포도 품종 생산지 생산자에 따라 와인 맛이 달라진다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와인을 일상적으로 즐기는 일반 대중과 심미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전문가 집단은 뚜렷한 대조를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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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호 부산가톨릭대 와인전문가과정 책임교수

역사적으로 와인을 마시는 문화에 미적 요소가 가미되면서 가장 많은 변화를 겪은 것은 와인잔이다. 17세기 이전에는 컵 은 토기 나무 가죽으로 만든 그릇에 와인을 마시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영성체 때 유리잔을 쓰지 말라는 교황의 지시가 일상생활에 그대로 적용되었기 때문일까? 공교롭게 유리잔이 갑작스럽게 인기를 얻기 시작한 시기도 교황의 지위가 땅에 떨어진 종교개혁 이후이다. 하지만 사실 유리잔의 인기는 종교개혁뿐만 아니라 기술의 발전 덕택이다. 전통적으로 유리 제작의 중심지인 베네치아의 유리잔은 유럽 상류층에서 귀한 대접을 받았다. 영국의 경우, 17세기 들어 유리 제작 기술의 혁신을 이루면서 유리 제품 생산 중심지로 발전했다. 초기의 와인잔은 가격이 비싸 일반인은 엄두도 낼 수 없었지만 기술이 발전하면서 와인잔 가격은 낮아졌다. 와인잔의 특징인 손잡이는 17세기 초반에야 등장했지만 오늘날의 와인잔 처럼 향이 날아가지 않고 맛을 잘 느낄 수 있도록 둥글고 얇게 만든 잔은 거의 없었다.

와인을 음미하는 연인들의 모습을 형상화한 이탈리아 몬탈치노 지역의 와이너리 상징물.


유럽 와인 애호가들이 와인 온도와 맛 사이의 상관관계를 알아차린 것도 이 시기다. 16세기 프랑스에서는 사회적 지위와 계절에 상관없이 와인을 데워 마셨다. 또한 화이트와 레드와인의 구분은 두지 않았지만 저장실에 보관했던 와인은 몇 시간 전에 미리 꺼내 놓은 뒤 상온에서 마셔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반면, 체질 교정을 강조하는 의학계 변화를 반영해 혈기가 뜨거운 사람일수록 차가운 음료를 마셔야 한다는 정반대의 주장도 나왔다. 이후 프랑스에서 여름에 시원한 와인을 마시는 풍습이 유행했으며 스페인 이탈리아처럼 눈과 얼음으로 와인을 차게 식혀 마셨다.

근대 초기 고급 와인이 등장하고 포도 품종 생산지 생산자에 따라 와인 맛이 달라진다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와인을 일상적으로 즐기는 일반 대중과 심미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전문가 집단은 뚜렷한 대조를 보이기 시작했다. 와인 역사에서 전문가 집단의 역할이 중요해진 시기로 와인을 어떻게 느끼고 표현할 수 있느냐에 따라 그 기준은 정해졌을 것이다. 하지만 와인 문화가 발전하고 대중화될수록 그 기준은 변할 수 있다.

스포츠 경기에서 팽팽한 긴장감의 순간을 이겨내고 승리했을 때, 최선을 다했는데 만족스러운 결과를 만들지 못해 좌절감을 느낄 때, 매 순간 박수를 보내며 기쁨을 나누고 실망스러운 결과에 대해 평을 하려는 마음은 인간 본연의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공연에서 좋아하는 음악에 꽂히는 순간, 기대 이상의 만족감이나 감동을 느낄 때도 그 감정을 나누기 위해 대화를 하고 찬사를 보낸다.

와인 역시 오감을 만족시키는 좋은 와인을 마시고 난 후의 감동이 있다면 그 경험을 생생하게 표현하고 싶어진다. 가벼운 와인을 마실 때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지만 그 와인에 대한 표현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잘 만든 고급 와인을 마신다면 훌륭한 미술 작품이나 음악을 접할 때처럼 와인이 가진 다양한 향과 맛에 대해 표현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게 된다.


직접 와인을 마시고 그 느낌과 감동을 표현하는 것은 우리의 욕망을 표현하는 자연스러운 방법이다. 좋아하는 것과 아닌 것을 가려 내기 위해서는 내면으로부터 오는 확신이 필요하다. 기본적인 맛을 묘사하는 어휘를 배우는 것도 좋지만 과장 없이 간결하고 감동적이며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다면 언젠가는 와인을 제대로 즐기는 재미에 빠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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