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개혁 논의 재점화]①정부, 세대별 보험료 차등 인상과 지속가능성 확보에 방점
[헤럴드경제=이태형 기자]정부가 세대별 보험료 차등 인상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연금 논의에 다시 불을 붙을 전망이다. 이달 말이나 다음 달 초에 윤석열 대통령이 연금·교육·노동·의료개혁에 저출산 대책까지 더한 ‘4+1’의 패키지 대책을 발표할 계획으로, 특히 연금은 개인의 노후생활과 직결되는 만큼 사회적 합의 과정과 국회 논의까지 거치려면 그 과정이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18일 대통령실과 정부에 따르면 정부의 연금개혁안은 세대에 따라 적용하는 보험료율 인상을 달리할 것으로 알려졌다.
연령과 관계없이 요율을 일괄 적용하는 현재의 형태에서 나이 든 세대일수록 상당 기간 보험료를 더 내는 차등 구조로 전환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보험료율을 13∼15%로 인상하기로 하면 장년층은 매년 1%포인트씩 인상하고, 청년층은 매년 0.5%포인트씩 인상해 목표로 한 보험료율에 도달하는 시기를 조정하는 방식이다.
이같이 보험료율을 나이 든 세대일수록 더 빨리 올리는 방식은 지난해 정부가 발표한 제5차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안에서 나온 바 있다.
보건복지부는 “그룹 인터뷰를 통해 젊은 분들이 본인들은 많이 내도 똑같이 받고, 기성세대는 조금만 내고 많이 받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있었다”며 “보험료율을 올린다면 차등하는 게 세대 간 형평성과 공정성 측면에서 바람직하다는 생각에서 안을 마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세대에 따라 보험료율에 차등을 두는 사례는 세계적으로 전례가 없다. 중장년층의 반발 또한 거셀 것으로 전망된다.
오종헌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사무국장은 “세대를 구분하는 기준도 명확하기 어려울 뿐더러, 계층을 고려하지 않은 방식”이라며 “50대 비정규직이나 자영업자의 보험료를 20∼30대 정규직보다 더 빨리 올리는 게 형평한 것이냐”고 비판했다.
급격히 오르는 보험료가 부담스러운 중장년 취약계층은 국민연금 납부를 회피할 수도 있어 이들의 노후 생계를 위해 기초연금과 생계 급여 등이 투입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영준 연세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도 “막상 실제로 도입하게 된다면 어느 세대를 올리고 어느 세대는 올리지 않을지 등 상당히 많은 난관이 있을 것”이라며 “연금개혁을 기한 없이 늦추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양재진 연세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는 “‘독박 쓴다’고 생각하는 젊은 세대의 불만을 줄이고 곧 혜택을 받을 세대에게 더 걷는다는 면에서는 합리적”이라면서도 “이례적인 형태이기도 하고, (재정이 투입될 경우) 조세 저항이 거셀 것으로 예상한다”고 평했다.
정부는 세대별 차등 인상과 함께 연금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자동 재정안정화 장치’도 도입해 연금 구조를 개혁한다는 구상이다.
자동 안정화 장치는 경제 상황에 따라 보험료율이나 소득대체율 같은 모수를 자동으로 조정하는 제도이다. 상황이 안 좋아지면 연금 지급액을 낮추는 등 연금의 안정성을 자동으로 보장한다. 다만 목표 보험료율 등 세부적인 수치는 국회 논의를 통해 확정한다는 방침이다.
양재진 교수는 “대부분의 OECD 국가들이 안정화 장치를 도입해 자동으로 소득 대체율을 낮추든지 수급 연령을 뒤로 미루고 있다”며 “방향은 불가피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재정 안정에 방점을 둔 장치인 만큼 재정안정론 반대편에 서 있는 소득보장론자들의 반발이 나올 수 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오종헌 국장은 “자동안정화 장치는 노인빈곤율이 낮아진 상태에서 도입을 고려해야 하는 것이지, 지금 노인 빈곤율이 40%에 육박하는 우리나라에서 보장성 강화에 대한 논의는 하나도 없이 자동안정화 장치만 도입한다는 건 연금의 본 목적을 외면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최영준 교수도 “빈곤을 해소할 급여를 보장해 주지 못한다면 연금 제도가 존재할 이유가 없다”며 “(빈곤층이) 결국 나중에 공공부조의 도움을 받게 된다면 연금의 의미가 없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최 교수는 “재정안정화 장치를 반대한다기보다는 논의는 할 수 있지만 도입하려면 원점에서 엄청나게 많은 논쟁이 필요하고, 그러다 보면 개혁을 할 수 없다고 보는 입장”이라고 덧붙였다.
th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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