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시민이 함께한 호흡, 대한민국 무용대상 본선…무더위도 꺾지 못한 열정 [현장리뷰]
암전 속에서 무용수들이 등장하고 심장을 울리는 소리가 한여름 밤 숲속에 울려 퍼지자, 시민들이 발길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인간이 가진 가장 아름다운 도구이자 악기인 몸을 가지고 근육 하나, 힘줄 하나까지 메시지를 표현하며 무대는 무용수들의 땀방울과 열정으로 가득 찼다.
무더운 날씨에도 시민들은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고 숨죽여 무대를 관람했다. 어린 자녀와 함께 공원을 방문한 이규현씨(38) 부부는 “무용은 거리가 멀게만 느껴지던 예술 장르였는데, 가까운 거리에서 수준 높은 무대를 관람하게 돼 잊지 못할 경험이 됐다”고 말했다.
지난 17일 국내 최정상 무용 단체와 최고의 무용 창작물을 가리는 ‘2024 대한민국 무용대상’ 본선 무대가 분당중앙공원 야외공연장에서 펼쳐졌다. 성남시와 (사)대한무용협회가 공동 주최하는 대한민국무용대상은 예선, 본선, 결선을 거쳐 오는 12월19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대통령상,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수상자를 가리게 된다. 특히 무용계에서 대통령상이 수여되는 것은 전국무용제와 대한민국무용대상 단 두 대회뿐이기에 최고의 권위로 뽑힌다.
연말 예정된 결선에 오를 최종 두 팀을 결정하는 이날 본선 무대에는 출사표를 내던진 27개 팀 중 예선을 통과한 9개 단체가 열띤 경쟁을 펼쳤다. 시민 참여형 축제를 기치에 내건 대한민국무용대상은 ▲전문 심사위원(80%) 7인과 시민심사위원(20%) 10인으로 구성된 심사시스템 ▲경연 결과 실시간 공개 ▲숲속 공원에서 열리는 개방형 무대 등 다양한 방식을 구성했다. 특히 대중에게 어렵고 생소하게 느껴지는 무용 장르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무용 전공자를 제외한 시민심사위원의 점수 반영은 예술성뿐만 아니라 무용의 대중성 확보를 목표로 했다.
■ 무용계 미래 이끌 예술고교 5개팀의 열띤 무대, 객석 환호와 미소 가득차
이날 현장에서 시민들의 열렬한 반응을 끌어낸 건 무용계 미래를 이끌어갈 국내 5개 예술고등학교 영재들의 사전축제 무대였다. ‘목멱, 만판놀이’라는 작품으로 서막을 힘차게 연 국립국악고 무대에서 꽹과리, 북 등 신명 나는 가락 소리가 울려 퍼지고 역동적인 퍼포먼스를 펼치자, 객석에서는 환호성과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땡볕 더위에 강렬한 무더위가 지칠 법도 했지만, 객석에는 300여 명이 훌쩍 넘는 관객들이 앉아 몰입하고 있었다. 객석에 앉지 못한 시민들은 일어서서 무대를 관람하거나, 뒤편에 자리한 풀밭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즐기는 등 제각기 다른 풍경으로 함께하고 있었다.
이어 덕원예고는 ‘해소 ver.2’라는 작품으로 대중을 압도하는 카리스마 넘치는 무대를 선보였다. 쪽진 머리에 파랑, 초록, 노랑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선화예고는 ‘음풍농월(吟風弄月), 신명으로 피어나다’는 작품으로 꽃과 같은 무대를 펼치며 객석에 자리한 시민들의 얼굴에 미소를 짓게 했다.
한껏 예열된 현장은 본격적인 본선 무대로 이어졌다. 경연은 한 팀 한 팀 무대가 끝날 때마다 전광판에 점수가 공개되며 긴장감을 더했다. 전문심사위원들의 점수와 시민심사위원들의 점수가 각각 표기되며 비교의 재미를 더했다.
■ 발레부터 한국무용까지 최정상 9팀 경쟁…전광판 실시간 점수 공개에 객석 몰입
한국 창작무용 3팀, 현대무용 4팀, 창작 발레 2팀 등 총 9개 단체의 엎치락뒤치락하는 뜨거운 경쟁 속 이날의 관전 포인트는 두 번째 무대에서 1위를 차지한 LINKINART(안무자 신창호) 팀의 ‘1위 자리 사수’ 여부였다.
이날 단 한 번도 1위 자리를 내주지 않은 ‘LINKINART’ 팀의 ‘March’는 오늘날의 ‘갈등과 대립’ 대신 새 시대를 열어가는 시작점을 내딛는 ‘첫걸음’을 주제로 창작된 현대무용 작품이다. 2000년대 초반 전쟁과 이슈라는 헤드라인에서 영감을 받은 영국의 록 밴드 ‘라디오헤드’의 음악이 세련되고 감각적인 무대 분위기를 한층 끌어올렸다.
뱃고동 같은 소리와 함께 등장한 백색의 무용수들은 좌에서 우로, 가운데서 양옆으로 파도가 퍼져나가듯 몸의 진동을 보여줬다. 끝내 하늘로 뻗어나가는 손끝은 관객들에게 긴장감을 더했다. 비폭력 시위 등 오늘날 거리에서 펼쳐지는 수많은 행진(march) 혹은 마치 패션쇼 모델처럼 무대를 십분 활용하는 워킹 군무가 압권이었다. 조명 빛이 퍼져나가며 무대 벽면에 드리워진 거대한 그림자는 웅장함을 더했고 파워풀한 워킹 퍼포먼스에 객석에서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Project S(안무자 정석순) 팀은 ‘시간이 지나도 미소를 잃지 않기를 소망한다’는 내용을 담으며 무용수들의 순수한 미소와 몸짓을 관객에게 전달하는 현대무용 작품 ‘The Hospital’로 2위에 올랐다. 암전 속에 등장한 하얀 환자복을 입은 무용수와 가운을 입은 의사. 내내 웃음을 보여주던 무용수들은 무대가 반전되며 온몸으로 울부짖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이들은 압권인 표정 연기와 표현력으로 마치 한 편의 독립영화를 보는 것과 같은 스토리로 관중을 몰입하게 만들었다.
■ 오직 인간의 몸…심오한 메시지, 즉각적인 표현의 창작 예술에 연말 결선 무대 기대감
이날 본선 경연에서는 단원 김홍도의 ‘씨름’에서 나타난 시대를 배경으로 한 ‘bnp company(안무자 배강원)’의 한국 창작무용 ‘씨름·시름의 해방’이 최종 3등에 오르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상의 영예를 안았다. 최종 4위를 차지하며 (사)대한무용협회 이사장상을 받은 팀은 ‘남다른.점 : Humankind’라는 현대무용 작품을 선보인 프로젝트 아트독(안무자 전예화)이었다. 특히 프로젝트 아트독은 인간이 가진 가장 아름다운 표현 도구인 신체의 장점 하나하나를 극대화한 무대로 9개 팀 중 시민심사위원에게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종아리 근육부터 머리카락 끝까지 활용하며 꽃처럼 혹은 무덤처럼 피어난 인간 더미는 땀과 열정으로 표현됐다.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년이 넘도록 쉼 없이 달려온 최정상 무용 단체 9팀의 열띤 경연은 시민을 감동하게 했다. 이날 최종 1, 2위에 선정된 ‘LINKINART’와 ‘Project S’ 두 팀은 각 1천만 원의 지원금과 함께 연말 결선 무대에서 30분가량으로 더욱 풍부한 이야기와 다채로운 구성으로 확장된 작품을 선보이게 된다.
조남규 대한무용협회 이사장은 “무용이 어떻게 하면 시민들에게 더 다가갈 수 있을까 고민했다”며 “예술이 시민과 함께 호흡하는 의미 있는 현장이 된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
이나경 기자 greennforest21@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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