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개의 공간 ‘어둠’ 속에서…얽매이지 않고 맘껏 상상하다

조봉권 기자 2024. 8. 18.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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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부산비엔날레 가보니

- '현대미술관' 전체가 메인 전시장
- 원도심 '근현대역사관' 금고전시관
- 실험적 작품으로 주제 의식 표출
- '한성1918' 정보창구 겸 앵커시설
- '초량재'는 가옥 특성 살린 전시회

어둠 속에서 한 번 보기로 했다. ‘해적 계몽주의’라는 은유와 ‘불교 도량(道場)’의 속성이 어떻게 만나는지도 궁금했다.

지난 16일 부산 중구 한성1918에서 전국 언론인이 모여 올해 부산비엔날레에 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지난 17일 2024 부산비엔날레가 개막했다. 개막에 앞서 지난 16일 ㈔부산비엔날레 조직위원회(이사장 박형준 부산시장·집행위원장 김성연)는 부산을 비롯한 전국 예술·문화 담당 언론인을 초청해 프레스 프리뷰 행사를 열었다. 이어 이날 오후 5시 부산현대미술관에서 2024 부산비엔날레 개막식을 개최했다. 프레스 프리뷰에 참가한 취재진은 버스 2대를 가득 채울 정도로 많아 높은 관심을 짐작할 수 있게 했다. 오전 9시30분 출발해 모든 전시 장소를 돌아보고 오후 4시께 끝난 프레스 프리뷰에 동참했다.

▮4곳 모두 돌아봤더니

부산현대미술관에서 김경화 작가가 동학의 사상과 마음을 표현한 본인 작품 앞에 선 모습.


전시 감독은 뉴질랜드 국적 여성 기획자 베라 메이(Vera Mey)와 벨기에국적 남성 기획자 필립 피로트(Philippe Pirotte)가 맡았다. 박수지 협력 큐레이터도 함께했다. 36개 나라 62팀(또는 개인), 78명 작가가 참여한다.

올해 부산비엔날레는 4곳 공간에서 열린다. 부산현대미술관(사하구 하단동 을숙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전시가 차려졌다. 부산근현대역사관(중구 대청동)에서는, 이 역사관에서 가장 유명한 금고(金庫)미술관을 중심으로 다채로운 실험성 작품이 주제의식을 표출한다. 초량재(동구 초량동)는 주택가 골목에 자리한 1970년대 지은, 지금 봐도 놀라운 데가 많은 독특한 가옥이다. 여기에는 공간 특성에 잘 맞는 우버모르겐 팀의 눈길 끄는 영상 ‘은빛 특이점’ 등 개성 선명한 전시를 배치했다. 한성1918(부산 중구 동광동)은 앵커 시설 또는 정보 창구 역할을 하면서 전시도 일부 연다.

▮나름대로 들여다보기

1970년대 지은 가옥을 전시공간으로 꾸민 부산 동구 초량재.


프레스 프리뷰는 복잡하고 상세한 설명은 최소한으로 줄이고, 필립 피로트·베라 메이·박수지 기획자가 전하는 간명한 정보 전달 중심으로 이뤄졌다. 관객 각자 나름대로 느끼기를 권하는 듯했다. 김성연 집행위원장은 한성1918에서 전체 일정을 안내하며 “원도심 공간인 부산근현대역사관·한성1918·초량재는 공간이 크지 않고 오래돼 관람에 불편한 점이 있을 것”이라고 양해를 구했고 “부산비엔날레가 가을이 아닌 한여름에 개막하는 건 처음”이라며 더 많은 관객과 만나고자 한 뜻이 있었음을 알렸다.

한성1918에는 니카 두브로브스키, 홍진훤, 프레드 모튼·스테파노 하니·준 리의 작품이 전시됐다. 올해 부산비엔날레는 ‘어둠에서 보기(SEEING IN THE DARK)’를 중심에 놓고 ‘해적 유토피아’와 ‘불교의 도량(道場)’을 각각 축으로 삼았다. 전시 감독 2인의 설명을 듣고, 자료를 읽으면서도 되도록 거기 얽매이지 않고 나름대로 보기로 마음먹었다.

부산근현대역사관 지하 1층 금고미술관에 들어서자 비로소 ‘어둠에서 보기’가 실감 나게 피부에 와 닿았다. 실제로 짙고 독한 어둠 속에서 봐야 했던 중국 출신·프랑크푸르트 활동 작가 지시 한(Zishi Han)의 영상 ‘나방들’과 ‘허물’은 도무지 형체·형상 알아보기 힘들었다. 그런데 알아보기 힘드니, 마음껏 상상할 수 있었다. 저게 뭐지? 저게 뭐지? 하다가 ‘저건 죽은 메뚜기가 해체되어 가며 새로운 생명을 위한 퇴비 구실을 하는 걸 거야! 아니면 형체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운동 같은 걸 거야!’ 하고 ‘나름대로’ 감상하는 식이다.

옆방에는 영국 출신 올라델레 아지보예 밤보예 작가의 사진 시리즈가 있다. 어떤 사진 연작은 보는 순간 프랑스 영화감독 프랑수아 오종의 영화 장면 같다는 인상이 강렬하게 끼쳐왔다. 작품 곁에 밤보예 작가가 서 있기에 이런 소감을 전했다. 그는 활짝 웃었다. “고맙다. 나는 영상 작업도 한다. 런던에서 공공 부문에서도 일했다. 예술과 공공이라는 두 정체성은 서로 부딪히며 내게 영향을 끼쳤다. 사람·세상·관계를 이해한다는 건 단순하고도 매우 복잡했다. 그래서 프랑수아 오종을 좋아하는데 그렇게 봐주니 고맙다.”

자전거 경주 선수로 활동하다가 부상으로 선수 생활을 접은 한 남자를 찍은 연작 사진도 있다. 그렇듯 곤경에 빠진 남성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에서 ‘어둠’이 떠올랐다. 근데 그 어둠이 거기서 그렇게 끝나고 말까? 어둠이 어둠으로 끝날까? 설마. 유명한 그래피티 작가 구헌주는(KAY2) ‘무궁화 해적단’ 연작에서 풍자 기법으로 민주주의 속성에 관해 질문한다. 공연예술 언어를 다루는 이양희 작가의 영상 ‘해일’은 춤 영상을 통해 보는 이가 억압에서 해방되는 느낌을 느끼게 했다.

▮어둠은 그저 어둠일 뿐일까

부산현대미술관 금고미술관에 전시된 구헌주 작가의 ‘무궁화 해적단’.


부산근현대역사관을 나온 일행은 초량재로 갔다. 유튜브 영상 등에서 가성비 맛집으로 잘 알려진 ‘천백돈가스’ 근처 골목이다. 1970년대 지은 주택이라고 했다. 양옥 2층집 자체가 견고하고 아름다웠다. 탁월한 짜임새와 건축상 변주(variation)도 품었다. 건물 자체로 놀라운 데가 있다. 비엔날레 측은 슈룩 하브 with 페데리카 부에티, 김지평, 정유진, 스리화나 스퐁, 슈쉬 술라이만&아이 와얀 다르마디, 우버모르겐의 작품을 배치해 이 집을 비엔날레 주제의식을 담은 배 한 척으로 꾸몄다.

부산현대미술관은 전체가 비엔날레 전시관으로 변신해 있었다. 제대로 비엔날레를 즐기려면 여기엔 꼭 와야 한다. 지하 1층, 1층, 2층을 모두 다니면서 수많은 작품과 작가를 만나고 내내 ‘해적’과 ‘불교’를 생각했다. 아나키즘이 그러하듯, 권력·체제·규범에 얽매이지 않고 억압을 뿌리치며 자유자재로 치고 빠지면서 유랑·유목하듯 다니는 존재가 (좀 낭만화된) 해적이다. 해적은 유연하게 변화해야 산다. 불교의 도량은 속세 어둠과 혼탁이 마침내 ‘받아들여지고 조화와 평안을 얻는’ 곳이다.

부산 작가 김경화와 방정아의 작품 또한 그런 점에서 인상 깊었다. 김경화 작가가 ‘동학’의 세계관 그리고 부산 지역 보도연맹 희생자 추념을 위해 만든 대형 걸개 공예작품 3점은 이런 주제의식을 해적처럼 찔렀다. 방정아 작가가 그린 큰 그림 가운데 ‘반야용선’이 있다. 서로 낯선 이들이 그래도 함께 모여 한배를 타고 어딘가로 향하는 모습을 절묘하게 잡았다. 이 그림에서 ‘어둠에서 보기’와 ‘해적’과 ‘불교’는 만났다. 불교를 형상화한 작품, 아시아 아프리카 정치 민주화에 초점을 맞춘 여러 작품도 자꾸 들여다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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