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잡아 해치우는 ‘멍빨’ 옛말…반려동물 목욕도 어엿한 레저산업
멍빨- 반려견 씻기기
- 전국에 반려견 동반 온천·찜질방
- 개고깃집 성업하던 구포시장엔
- 반려견 목욕업체 개업 격세지감
- 빗질부터 세정·보습·팩·건조까지
- 6시간 정성 들이는 목욕 출장도
- 휴양·치유 기능 ‘탑재’ 계속 진화
- 2010년대 불붙기 시작한 산업
- 팬데믹 때에도 불황 없이 잘돼
- 우후죽순 창업하며 출혈경쟁도
경남 창원시 성산구의 한 가정집. 사모예드 ‘설구’(7)가 복슬복슬 흰 털을 자랑하며 차량 위로 뛰어든다. 전문가의 능숙한 손길이 닿자 그간 엉킨 털이 빗 틈새로 우수수 쏟아졌다. 사모예드는 모량이 풍부해 정기적으로 빗질을 해주지 않으면 털이 엉켜 피부병이 생길 수 있다.
2시간 여의 빗질을 마친 뒤, 메인이벤트가 시작됐다. ‘반려견 목욕’이다. 관리사는 30여㎏에 육박하는 설구를 들어 안아 욕조에 올려놓았다. 이어 털 곳곳에 샴푸 거품을 냈다. 낯선 환경에도 설구는 거품을 내는 손길에 편안히 몸을 맡겼다. 졸린 듯 눈을 끔뻑거리기도 했다.
목욕은 1시간에 걸쳐 총 4번 진행된다. ▷세정샴푸 ▷보습샴푸 ▷보습팩 ▷컨디셔너 순이다. 목욕이 끝나면 2시간 동안 털을 뽀송뽀송하게 말려야 한다. 가장 고된 과정이다. 이날 목욕 대장정에는 꼬박 6시간이 소요됐다.
반려동물 출장 목욕업체 ‘멍빨데이’는 목욕·미용 설비가 딸린 차량과 함께 고객의 집으로 직접 방문한다. 반려견과 함께 목욕탕을 찾는 것이 어려운 이들을 대상으로 2021년부터 출장 목욕업을 시작했다. 김재훈(36) 대표는 “골든리트리버를 직접 키우면서 대형견 목욕이 힘들다는 사실을 몸소 느꼈다. 같은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많을 것이라는 생각에 창업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견종에 따라 다르지만 미용부터 시작해 목욕을 마치기까지 짧게는 4시간에서 많게는 8시간이 소요된다. 이 때문에 서비스 이용은 하루에 한 집으로 제한해 받는데도 인기를 자랑한다. 지난 3년간 욕조에 몸을 담근 강아지 손님만 1000마리가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온천욕·찜질 즐기는 개들
바야흐로 반려동물도 목욕을 즐기는 시대다. 단순히 몸만 씻는 것이 아니다. 온천과 찜질방에서 ‘멍캉스’를 즐기며 호사를 누리기도 한다.
강원도 양양군 ‘복골온천’에서는 반려동물이 온천탕에 몸을 담근다. 2008년 처음 발견된 이곳 온천공에선 31.3도의 중탄산 온천수가 솟아오른다. 모든 객실에 반려견을 동반할 수 있고, 함께 들어갈 수 있는 온천탕도 딸려있어 여유롭게 온천욕을 즐길 수 있다. 반려인들 사이에선 이미 입소문이 자자한데, 인스타그램에 5000개 이상의 관련 게시물이 올라왔을 정도다.
‘개 찜질방’에서 몸을 지지기도 한다. 충북 청주 ‘휴일도’에서는 반려동물과 사람이 나란히 누워 찜질을 즐긴다. 이 업체 김가은(22) 대표는 “사람과 동물이 함께 쉴 수 있는 여가 공간을 마련하고 싶었다. 휴식과 놀이를 함께 경험할 수 있는 장소로는 찜질방만 한 곳이 없다고 생각해 반려견과 함께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을 창업하게 됐다”고 밝혔다. 국내 최초의 반려동물 동반 찜질방인 셈이다.
이곳 내부는 찜질시설 3곳과 매점 식당 놀이방 수면방으로 구성돼 있다. 사람 찜질방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찜질시설은 모두 건식으로, 내부 온도는 비치된 기구를 작동해 직접 조절한다. 반려동물이 화상을 입지 않도록 최대온도는 50도 미만으로 제한한다. 김 대표에 따르면 치와와 등 추위를 많이 타는 단모견이 찜질을 특히 선호한다고 한다. 매점에서는 사람과 강아지 간식을 함께 판매한다. 히트 상품은 단연 ‘강아지용 단호박 식혜’다. 김 대표는 “찜질은 동물에게도 관절 통증 완화, 신진대사 촉진, 혈액순환 등의 효능을 보인다”며 “지난해 개업 이후 방문객이 점차 증가세를 보여 현재 2호점 개업을 준비 중”이라고 설명했다.
업종을 180도 뒤집은 사례도 있다. 설무호(69) 대표는 3년 전인 2021년 부산 북구 구포시장 상가에 반려동물 목욕업체 ‘댕댕이목욕마을’을 개업했다. 불과 2019년 여름까지만 하더라도 이곳은 ‘개 잡는 집’이었다. 5년 전까지 구포시장은 경기 성남 모란시장과 함께 전국 양대 개시장으로 불리며 ‘악명’을 날렸다. 설 대표 역시 이 자리에서 35년간 개고깃집을 운영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다. 동물복지 개념이 뿌리내리며 개 식용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결국 지자체와 상인의 합의 끝에 2019년 7월 구포가축시장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 무렵 설 대표도 식당을 폐업했다. 대신 반려동물 목욕업체를 차리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은연중에 개에 대한 죄책감이 있었는지 ‘반려동물을 키우시는 분들을 위한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려동물 관련 업종으로 전환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부산 북구의 권유도 있어 목욕탕을 개업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반려동물 목욕업 흥망사
전국에 다양한 목욕시설이 생기고 있지만, 업계에서는 “섣부른 창업은 금물”이라고 입을 모은다. 농림축산식품부 ‘2023 반려동물 보호·복지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3년 반려동물 영업장 수는 2만575곳. 전년 대비 1501곳(6.8%) 감소했다. 영업장 수가 감소한 것은 통계가 시작된 2018년 이후 처음이다. 댕댕이목욕마을 설 대표는 “개업 당시에는 희망에 찼었지만 최근에는 하루 수입이 2만 원에 못 미치는 날도 있다”며 “가게를 접어야 하나 고민이 들기도 한다”고 토로했다. 멍빨데이 김 대표 역시 “돈이 된다는 이야기에 무작정 창업에 뛰어드는 분들이 많았다. 대부분이 6개월도 안 돼서 폐업하고 말았다”고 말했다.
그동안 반려동물 산업은 불패로 여겨졌다. 팬데믹 시기에도 성장을 거듭할 정도였다. 30여 년째 반려동물 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경남정보대 정은겸(반려동물학과) 교수는 “산업이 본격적으로 커지기 시작한 시기는 2010년대 중후반이다. 1인 가구가 늘면서 대표적인 유망산업으로 주목받았다”고 설명했다.
가장 흔한 목욕업 형태인 ‘무인 반려동물 목욕탕’이 국내에 모습을 드러낸 것도 이 무렵이다. 1세대 프랜차이즈 목욕업체 ‘마이리틀프렌드’는 2016년 창업 이후 3년 만에 전국 18곳으로 불어났다. 이곳 김현중(41) 대표는 “반려동물 목욕업이 성장할 것으로 보고, 호주의 무인 목욕 시스템을 국내에 들여왔다”고 설명했다. 일본에서 입탕식 대중목욕 문화가 유입됐듯 호주에서는 반려견 목욕문화가 건너온 것이다. 특히 팬데믹 시기 무인점포 형태로 창업이 간편하다는 입소문을 타고 붐이 일었다. 동네 상가에서 ‘반려견 셀프목욕’ 간판을 마주치는 일은 어렵지 않은 일이 됐다. 경쟁하듯 솟아오르던 1980~1990년대의 목욕탕 굴뚝을 보는 듯했다.
▮대중목욕탕 데자뷔
분위기가 바뀐 건 코로나19 사태가 끝난 지난해부터다. 반려동물 영업장 수가 감소세로 돌아섰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동물미용업의 경우 464개 업체가 문을 닫았다. 정 교수는 “유행에 편승해 자격증만 취득한 뒤 곧바로 가게를 차리는 식의 무분별한 창업이 이어진 결과”라고 말했다. 현행법상 반려동물 목욕탕은 ‘도·소매업’으로 등록되는 경우가 많아, 통계에 잡히지 않은 폐업 사례 또한 적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미용을 병행한다면 동물미용업으로 등록되지만, 목욕 서비스만을 취급하는 경우 등록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마이리틀프렌드 김 대표는 “팬데믹 시기 무인 목욕탕이 난립하며 출혈경쟁이 이어졌다. 18곳에 달하던 매장도 점차 줄어 현재는 4곳만이 운영 중이다”고 설명했다.
집에서 목욕을 시키는 이들도 늘었다. 설 대표는 “가정용 목욕기기가 보급돼 중·소형견은 집에서도 충분히 관리를 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돼 목욕탕을 찾을 이유가 줄어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멍빨데이 김 대표는 “출장 목욕 서비스를 이용하는 견종은 한정적이다. 주기적인 털 관리가 필요한 골든리트리버·삽살개·사모예드 등 대형견이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목욕의 역사를 축약해 놓은 듯 그 흐름이 닮았다. 대중탕도 2000년대 들어 욕실을 갖춘 아파트가 보급되며 쇠락하기 시작했다. 집에서 씻는 샤워문화가 대세로 자리 잡으며 목욕객의 발길이 뜸해졌기 때문이다. 정 교수는 “전통적인 목욕탕이 지고 찜질방·온천워터파크 등의 목욕시설이 주목받았듯, 반려동물 목욕업 역시 휴양·놀이·치유와 같은 기능을 갖춘 업체들이 떠오를 것”으로 분석했다.
영상= 김태훈 김진철 김채호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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