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서 칼럼] 죽기 전에 죽여라, 이스라엘이 `암살 국가` 된 이유

박영서 2024. 8. 18.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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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서 논설위원

"너를 죽이려는 자가 오면 네가 먼저 그를 죽여라." 유대인의 정신적 지주로 불리는 '탈무드'에 나오는 문장이다. 자신이 죽기 전에 먼저 상대방을 죽이라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죽이지 않으면 죽임을 당한다'는 상황을 수없이 겪어본 민족이다. 이로 인해 '싸우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을 자연스레 배웠을 것이다. 지금도 총리, 장관 등 이스라엘의 정치 지도자들, 그리고 군인이나 정보 당국자들은 이 논리에 따라 행동한다.

지난달 31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무장세력 하마스의 최고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가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암살당했다. 이란 새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뒤 테헤란의 숙소에서 잠을 자다가 폭탄이 터져 사망했다. 아직까지 하니예가 어떻게 폭살당했는지는 불분명하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설계하고 실행한 것은 분명하다.

자기 집 안방에서 손님이 살해됐다는 굴욕을 겪은 이란으로선 그냥 넘어갈 수는 없다.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자 중대 도발이기에 이란은 보복을 천명했다. 그런데 이스라엘 지도부는 크게 개의치 않는 분위기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보복하려면 하라'는 식이다. 대신 댓가는 톡톡히 치를 것이라 경고한다.

이렇게 중동에서 전운이 고조되자 미국은 노심초사다. 전쟁 확산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대선을 앞두고 있는 바이든 행정부 입장에겐 이란의 보복으로 중동 정세 전체가 요동치는 것은 큰 악재다. 미국은 최근 재개된 가자지구 휴전 협상에 외교력을 집중하고 있다. 이란 역시 비슷한 입장이다. 경제가 피폐해 민생고가 가중되고 있고, 새로운 핵 협상도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라 전쟁이 터지면 엄청난 부담을 안게 된다. 이란은 휴전 협상에 필요한 시간을 주기 위해 이스라엘에 대한 보복 공격을 미루고 있다.

그런데 네타냐후 총리가 바이든의 말을 잘 듣지않고 있다. 하니야 암살 작전을 감행해 지난 6~7월 전개된 휴전 협상 국면의 판을 뒤집은 당사자는 바로 네타냐후 총리였다.

이스라엘은 태어날 때부터 '싸울 운명'을 갖고 탄생한 나라다. 이 나라는 건국 다음날부터 이웃 나라들과 전쟁을 벌였다.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은 건국을 선포했고, 다음날인 15일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 등 주변 아랍국가들은 이스라엘을 공격했다. 이 전쟁을 '1차 중동 전쟁'이라고 부른다. 승자는 이스라엘이었다. 그 이후로 이스라엘은 계속 전쟁을 치렀다. 이스라엘의 영토는 점점 넓어졌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비극은 커졌다.

또 한 가지 이스라엘이 배운 것이 있었다. 단순히 '싸우겠다는 결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된 것이다. 싸우기 위해서는 '준비'가 필요하다. 정보기관 모사드는 이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모사드는 유대국가 이스라엘의 가장 강력한 방패다. 모사드는 '적은 반드시 찾아서 죽인다'는 이스라엘의 원칙을 전 세계에 알렸다.

모사드는 지금까지 약 2,700건의 암살 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추정된다. 암살이 이스라엘 정부의 일상적인 도구인 셈이다. 아직 모사드가 죽이는 데 성공하지 못한 인물은 하마스의 새 수장이 된 야히야 신와르다. 그가 끝까지 살아남을 지는 미지수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땅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은 항상 있어 왔다. 살육전에서 승리한 나라는 많은 땅을 얻어 더 큰 나라가 됐다. 패배한 나라는 쪼그라들거나 아예 역사에서 사라졌다. 팔레스타인 뿐만 아니라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우리나라도 그랬다. 남루한 차림의 팔레스타인 독립운동가들을 보면 상해 임시정부 요인들이 생각나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전 세기와 비교해 볼때 기술·사회·문화 등 다양한 측면에서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는 21세기에 '죽기 전에 먼저 죽여라'라는 명제는 여전히 유효한 것일까. 지금까지의 관성에 밀려 전쟁으로 향하는 수레바퀴를 더욱 열심히 돌려서는 안될 것이다. 물론 대화와 타협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은 고리타분한 이야기일 수 있다. 하지만 대화와 타협의 중요성은 여전히 유효하며, 오히려 더욱 강조되어야 한다. 이는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무거운 교훈이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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