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 알고 먹으면 더 맛있는 대전 맛집- ② 칼국수

김재근 선임기자 2024. 8. 18.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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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물도 면발도 곁메뉴도 각양각색… 대전 칼국수는 진화중
미국이 원조한 밀가루를 배급받은 시민들. 사진=농림축산식품부

대전의 음식 중에 소문난 것 중의 하나가 칼국수이다.

대전은 1905년 경부선, 1914년 호남선 개통과 1932년 충남도청이 공주에서 이전하면서 급성장한 도시이다. 일제 강점기 성장, 발전했지만 일본 음식문화의 흐름은 별로 남아있지 않다.

대전의 칼국수는 1945년 해방과 한국전쟁, 50-70년대 궁핍한 시대의 애환이 서려 있다.

미국이 보내준 밀을 가공하여 만든 밀가루를 담았던 포대. 사진=글로벌지식협력단지

해방 이후 대한민국은 경제와 식량의 상당 부분을 미국에 의존했다. 미국은 1955년 공법 480호(PL 480)을 만들어 기아에 허덕이는 개발도상국에 미국내 과잉생산된 잉여농산물을 제공하기 시작했고, 한국에도 56년부터 밀과 콩, 원면, 보리, 쌀, 보리 등이 들어왔다. 이 지원은 71년까지 계속됐는데 지원액의 41%가 밀이었다.

□ 미국산 원조 밀가루와 혼분식운동이 출발점

정부는 미국산 밀을 가공하여 국민들에게 공급했다. 인천과 부산, 목포 등 항만 인근 대형공장에서 밀가루를 생산, 철도와 트럭에 실어 전국에 보냈다. 중부권 최대도시인 대전에도 많은 양의 밀가루가 들어와 배급되고 인접도시로도 보내졌다.

혼분식장려운동도 칼국수 탄생에 영향을 미쳤다. 정부는 60-70년대 쌀 소비를 줄이기 위해 잡곡이 섞인 '혼식'과 밀가루로 만든 '분식'을 권장했다. 식당들은 잡곡을 섞어 밥을 짓도록 했고, 학교에서는 도시락을 검사했다. '분식의 날'도 운영했다. 이 운동은 통일벼가 등장, 식량난이 해결되자 77년 종료됐다.

대전에서 칼국수가 유독 성행한 것은 특이한 현상이다. 미국산 밀가루 공급과 혼분식운동 전개가 대전만의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대전에 다양한 음식이 등장한 것은 1950년 한국전쟁 이후 인구 구성의 변화와 밀접해보인다. 1949년 12만7천명이던 대전시 인구는 55년 17만3천명, 60년에는 22만명으로 늘었다. 충청 출신 외에 영호남과 수도권, 북한 실향민들이 대거 유입된 것이다.

당시 대전은 짧은 도시역사 탓으로 특유의 전통 음식문화가 없었다. 다양한 인적 구성과 개방적인 분위기도 한몫했다. 타지역 음식이나 새로운 메뉴가 정착되기 쉬웠던 것이다.

대전 칼국수는 원도심 대전역과 중앙시장을 중심으로 발달했다. 인구가 몰려있는 데다, 전국에서 올라오는 식재료를 구하는데도 용이했기 때문이다. 수십년째 원도심 동구 중구에서 장사를 하는 곳도 있고, 신도시 서구와 유성구로 이전하거나 분점을 낸 칼국숫집도 있다.

□ 대전역과 중앙시장 칼국숫집 속속 등장

사실 칼국수는 만들기 어려운 음식은 아니다. 빵을 만들려면 밀가루 반죽에 효모를 넣어 발효시키고 이것을 구워낼 수 있는 장치도 필요하다. 반면에 칼국수는 밀가루 반죽을 홍두께로 민 뒤, 칼로 썰어 끓여 먹으면 된다. 기술이나 전문성이 크게 필요하지 않아 가정에서 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다.

대전을 '칼국수 도시'라고 자랑할 수 있는 것은 식당도 많거니와 맛도 훌륭하기 때문이다. 점포마다 독특한 면발과 국물, 곁메뉴(사이드메뉴)로 맛을 자랑한다.

대전의 칼국숫집은 얼마나 될까? 대전세종연구원이 조사에 따르면 2023년 말 현재 700여 개가 넘은 것으로 나타났다. 칼국수 전문식당만 그렇고 분식집이나 라면, 김밥집 등에서도 팔아 실제 칼국수를 파는 식당을 1500개가 넘을 것으로 보인다. 대전시내 웬만한 동네에서는 으레 한두 개 칼국숫집을 볼 수 있다.

식당의 숫자만큼이나 맛도 모양새도 다양하다.

초기에는 멸치국물에 면과 감자, 애호박 등을 넣는 게 전부였지만 요즘은 육수도 건새우와 민물생새우, 가츠오부시, 바지락, 동죽, 홍합, 사골, 돼지뼈, 표고버섯, 다시마 국물 등 다양하기 이를 데 없다.

□ 치열한 생존 경쟁, 다양한 맛집 성업

신도칼국수(본점)는 1961년부터 대전 원도심인 동구 정동에서 영업을 해왔다.

면의 재료도 밀가루에 쑥이나 버섯가루, 녹두를 섞어 쓰는 곳도 있다. 고명도 지단이나 쑥갓, 부추를 올리고 김가루, 계란, 돼지·닭고기 편육, 볶은 고기, 양념간장 등을 얹혀주기도 한다.

대전 사람들의 까다로운 칼국수 입맛을 만족시켜온 맛집이 꽤 많다. 이런 식당은 대개 뭔가 내세울 만한 필살기가 있다.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해왔기 때문이다.

대전의 오래된 칼국숫집으로 대선칼국수와 신도칼국수가 있다.

대선칼국수는 대전시민 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소문난 맛집이다. 벽에 식당을 방문한 유명인들의 사진이 걸려 있다.
대선칼국수의 칼국수는 멸치, 다시마, 바지락 국물에 고명은 김가루와 다진고기, 부추가 올라온다. 사진=김재근 선임기자

대선칼국수는 1958년 원도심 중구 은행동에서 시작, 현재는 서구 둔산동에 본점이 있다. 대전의 대표적인 칼국수 맛집으로 칼국수와 비빔국수 등을 판다. 고명으로는 호박, 감자, 다진 고기, 부추 등이 올라온다. 돼지수육이 맛있어 특별히 이것을 먹으러 오는 손님도 많다. 관저, 관평동과 세종 나성동에 분점이 있다.

신도칼국수의 칼국수는 사골육수에 숙성된 양념장이 어우러져 부드럽고 깊은 맛을 낸다.

신도칼국수는 1961년 신도분식이란 상호로 장사를 시작했고, 본점은 지금도 대전역 앞 정동에서 영업 중이다. 소뼈와 멸치를 우려낸 국물에 숙성된 양념간장을 얹혀주는 데 이게 잘 어우러져 구수하고 깊은 맛을 낸다. 식당 안에 오랜 역사를 전해주는 칼국수 양푼을 전시해놓았다. 월평, 중촌, 대사동에 분점을 냈다.

물총칼국수로 이름난 대전시 동구 삼성동의 오씨칼국수.

동구 삼성동의 오씨칼국수도 개성이 뚜렷한 맛집이다. 특이하게도 이곳은 동죽 조개를 재료로 사용한다. 동죽이 숨을 쉬며 물을 뿜는 게 물총을 쏘는 것 같다고 해서 '물총 칼국수'라는 별명이 붙었다. 시원하고 담백한 동죽 국물이 일품이다. 직접 반죽하여 만든 굵고 쫄깃쫄깃한 면발도 맛있다.

중구 대흥동의 스마일칼국수도 남녀노소가 즐겨 찾는 맛집이다. 담백한 다포리(밴댕이)국물에 자가제면한 꼬들꼬들한 면이 담겨 나온다. 고명은 애호박과 부추, 들깨 등이 올라온다. 손님이 주문하는 대로 말아주는 김밥도 맛있다. 백종원의 3대 천왕에 나왔고, 2019년 문재인 대통령이 방문, 유명세를 탔다.

□ 대전 대표먹거리 자리매김… 축제도 열려

대흥동 소나무집은 오징어칼국수라는 독특한 음식을 판다.

대흥동 소나무집은 오징어칼국수라는 독특한 음식을 판다. 오징어와 무김치를 넣고 끓인 오징어찌개에 면을 넣어 먹는다. 오래 숙성된 무김치의 신맛과 오징어가 어우러져 시원하고 개운한 맛을 느끼게 한다. 간단하게 익혀 내는 두부부침도 맛있다. 50년이 넘은 노포로 대전의 숨은 맛집이다.

서구 월평동 동원칼국수도 맛집이다. 황태, 멸치, 바지락 육수에 자가제면한 손칼국수가 담겨 나오고, 고명은 김과 쑥갓이 올라온다. 두툼하게 자른 두부에 애호박, 양파 등의 야채를 넣은 매콤한 두부두루치기도 인기가 많다. 1995년 개업한 식당으로 중소벤처기업부 인증 백년가게에 이름을 올렸다.

이 외에도 중구 문화동의 밀밭칼국수와 시민칼국수, 용두동의 뽀뽀분식, 서구 둔산동의 수목칼국수, 유성구 봉명동 온천칼국수와 하기동의 오시오칼국수, 대덕구 신탄진의 맛집부추해물칼국수 등도 지역민이 즐겨 찾는 맛집들이다.

대전의 칼국수는 진화하고 있다. 오래된 맛집은 꾸준하고 한결같은 맛으로 단골을 유지하고, 새로운 맛집은 신박하고 독특한 감성으로 고객을 유혹한다. 대전 중구청에서는 매년 9-10월 칼국수축제도 연다.

궁핍한 시절 살아남기 위해 만들어 먹었던 칼국수가 21세기 대전의 대표적인 먹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칼국수축제에서 면을 만드는 모습. 사진=대전 중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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