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최장 열대야와 폭염백서
한반도의 잠 못 이루는 밤이 오래 지속되고 있다. 서울의 경우 17일까지 28일째 열대야를 겪으면서 2018년(26일)을 제치고 최장 연속 열대야 기록을 경신했다. 19일부터 비 소식이 있지만, 열대야를 꺾기엔 역부족이라고 하니 한 달 연속 열대야가 현실로 다가왔다. 서울이 지난 30년간 가장 가파른 폭염 증가세를 보인 도시였다는 영국 국제개발환경연구소 분석결과가 실감나는 올해다. 부산과 제주도 각각 24일째, 34일째 열대야를 이어가고 있다. 17일 현재 전국 평균 열대야일은 15.9일로 역대 2위(2018년 16.6일)는 물론 1위(1994년 16.8일)도 넘어설 공산이 크다.
수면에 적당한 온도는 18~20도다. 이보다 높으면 체온조절 중추신경계가 흥분돼 몸을 자주 뒤척이게 된다. 열대야에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는 이유다. 수면 부족으로 피로가 쌓이는 ‘열대야 증후군’을 겪거나 면역력 저하로 건강에도 이상이 생길 수 있다. 기후위기가 일상 속으로 깊숙이 들어온 현실임을 절감하게 한다.
기상청이 사상 처음으로 ‘폭염백서’를 내기로 했다. 낮밤을 가리지 않는 무더위가 뉴노멀이 된 현실과 무관치 않다. 폭염의 기록과 폭염 발생 원인·구조, 중장기 폭염 전망, 폭염의 사회적 영향 등이 담긴다. 폭염을 태풍·엘니뇨 같은 재난과 이상 기후의 지표로 본 것이다. 사상 최악의 폭염을 겪은 2018년 폭염은 재난안전법상 자연재난에 포함됐다. 그해 온열질환자 4526명이 발생했고 48명이 목숨을 잃었다. 올해도 지난 15일까지 온열질환자는 2652명, 사망자는 22명을 기록했다.
폭염은 그 영향이 평등하지 않은 사회적 재난이기도 하다. 폭염은 근로·거주 환경이 열악한 약자들에게 더욱 가혹하다. 냉방기를 가동하기 어려운 쪽방촌 거주자와 거동이 힘든 독거노인들에게 낮밤의 무더위는 생존의 위협이 된다. 폭염 속 야외에서 일하는 건설·농업 노동자나 배달 노동자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폭염백서는 더위의 기록만이 아니라, 그 더위의 영향을 받는 삶들의 기록일 때 더욱 의미가 클 것이다. 에너지 빈곤층 지원과 폭염 시 작업중지권의 법제화 등 ‘폭염 안전망’을 위해 할 일은 많다. 인류 공동체의 이성을 시험하는 기후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일상의 지혜도 담아야 한다.
김광호 논설위원 lubof@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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