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의대 2000명 증원 배정 회의록 폐기, 그냥 넘겨선 안 된다
2025학년도 대학별 증원 규모를 결정한 ‘의대정원배정심사위원회’ 회의록을 정부가 폐기한 사실이 국회 청문회에서 드러났다. 정부가 회의록 자료를 국회에 제출키로 했으나 청문회 당일 뒤늦게 없앴다고 밝힌 것이다. 갈등이 생길까봐 그랬다는 교육부 해명도 한심하지만, 2000명 배분 같은 중요 정책을 결정한 회의록을 임의로 없앴다는 것은 상식에도 어긋난다.
배정위 회의록 논란의 핵심은 두 가지다. ‘회의록 작성 의무’와 ‘회의록 존재와 폐기 여부’다. 의사들의 반발이 거센 첨예한 사안을 다룬 만큼 추후 논란 등을 감안하면 정부는 회의록을 당연히 남겼어야 했다. 그러나 지난 16일 청문회에서 오석환 교육부 차관은 배정위 운영 기간에 회의록을 파기했다고 밝혔다. 공공기록물 관리법 위반이라는 야당 의원들의 질타가 쏟아지자, 회의록을 만든 적 없고 파쇄한 것은 참고자료였다고 말을 바꿨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갈등을 촉발할 수 있어 자료를 파기했다”고 했다. 어처구니가 없는 해명이다.
교육부는 “배정위는 법정기구가 아닌 장관 자문을 위한 임의기구”라며, 이 때문에 폐기해도 문제는 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공공기록물관리법 시행령은 차관급 이상 참석 회의 외에도 주요 회의에 대해선 회의록 작성을 의무화하고 있다. 교육부의 설명대로라면 정부는 각 대학 의대 증원을 결정하는 배정위가 ‘주요 회의’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인데, 이 설명을 누가 납득할 수 있겠는가.
윤석열 정부 들어 ‘회의록 감추기’가 여러 부처에서 관행처럼 이뤄지고 있다. 18일 경향신문 보도를 보면 여성가족부, 보건복지부 등에서 회의록을 남기지 않거나 작성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참에 부처들이 공공기록물을 선택적으로 공개하고 있지 않는지 규정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정부의 의사결정이 어떤 논의를 거쳤는지 기록으로 남기고, 그 과정을 시민이 아는 일은 중요하다. 그런데 의대 증원이라는 주요 현안을 논의하는 자리를 기록한 문서가 없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2000명이란 증원 결정이 대통령의 뜻으로 이뤄졌다는 의혹이 의정갈등과 장기간의 의료공백을 초래했던 만큼 행정의 신뢰성 확보를 위해서도 기록을 남겼어야 했다. 교육부가 정책 잘못을 은폐하기 위해 회의록을 파기했다면 국기 문란 행위다. 이번 사안은 진상을 철저히 밝히고 책임자를 엄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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