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금투세를 걱정하는 이유 [세상읽기]
최영준 |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주식시장에 투자해서 5천만원 이상 버는 사람이 이렇게 많아? 왜 이렇게 반대가 많아? 나의 말에 친구가 타박했다. 교수가 그것도 몰라? 금투세(금융투자소득세)가 도입되면 큰손들이 다 떠난단 말이야. 증시 폭락이고. 그러면 우리 같은 사람들이 다 피해를 본단 말이야. 절대 안 돼.
논쟁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말이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러면서 최근 우리 사회를 떠도는 이야기들이 떠올랐다. 법인세도, 상속세도, 종합부동산세도 폐지하거나 낮춰야 한다. 왜냐고? 결국 소수의 대기업이나 부자 때문이 아니라 서민들이 피해를 보기 때문이다.
예전에 읽었던 책의 내용이 떠오른다. 자본의 구조적 권력에 대한 내용이었다. 대자본과 대기업은 직접 로비나 정책제안을 하지 않아도 영향력을 발휘한다. 그 국가에 기여하는 재정적 역할이나 고용의 규모 때문이다. 그래서 정부는 기업의 필요에 맞추어 정책을 할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 구조적 권력은 시민들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지배까지 나아간다. 즉, 시민들이 대자본의 이익을 나의 이익과 동일시하기 시작한다.
한 사회는 기업으로 대표되는 시장권력, 정치와 정부로 대표되는 국가권력, 그리고 시민사회와 노동으로 대표되는 대중권력의 삼각형으로 구성되어 있다. 자본주의하에서 기업은 중요하다. 다만, 국가나 시민의 이익이 항상 자본의 이익과 부합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세가지 권력이 균형을 이룰 때 기업, 국가, 그리고 사회도 모두 건강해질 수 있다. 서구 사회에서는 전통적으로 자본과 노동이 힘의 균형을 이루고, 정치권력이 때에 따라 좌와 우로 변화하며 균형 있는 사회를 만들어왔다.
반면 우리는 개발주의하에 수출 주도 성장을 하면서 수출 주도 기업의 성공이 국가의 성공이자 우리 모두의 성공이었다. 어느 정도 사실이었지만, 그 전략의 첫번째 파산선고는 1997년 경제위기였다. 한쪽으로 쏠려 있는 힘의 균형은 항상 부패를 낳고 경쟁력을 떨어뜨린다. 그리고 시민사회와 노동을 중심으로 한 대중권력이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며 시민권력을 역사상 처음으로 유의미한 힘으로 만들어내는 것 같았다. 흥미롭게도 그 시기에 대기업들뿐 아니라 새로운 정보기술(IT) 기업들이 빠르게 성장했다.
지금은 어떨까? 탈산업화와 디지털화는 대중권력을 더욱 파편화시키고 있다. 반면, 시장권력은 기존에 사용했던 고용의 외주화나 해외이주뿐 아니라 인공지능과 휴머노이드까지 활용이 가능해지면서 그 구조적 권력을 확대하고 있다.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의 저자들을 포함하여 서구의 학자들은 현재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위기를 이 삼각형의 균형이 무너지고 있는 데에서 찾곤 한다.
역설은 자본이 권력을 이용해 고용 외주화 등을 할수록 그 구조적 권력이 줄어든다는 점이다. 고용과 재정에서 그 기여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본의 구조적 권력의 또 다른 무기는 금융화이다. 우리나라 40대 대기업이 고용한 인원은 국민연금 가입자 기준 70만명에 지나지 않는다. 2900여만명의 취업자 중 2.4%에 그친다. 하지만 삼성전자 주주 중 내국인 수만 460만명이 넘는다. 그러니 다수가 삼성전자를 걱정한다. 이제 미국 대기업들까지 걱정하는 우리다.
개별 기업들이 시장에서 사투에 가까운 경쟁을 하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와 지구는 멍들어가고 있다. 오죽하면 투자자들이 이에스지(ESG: 환경·사회·지배구조를 고려한 경영)를 들고나왔다. 기업의 발전이 우리 모두의 발전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 힘의 균형이 필요하다. 생태계에 욕구를 제어하지 못하는 절대 포식자가 나타나게 되면 결국 그 절대 강자도 지속가능하지 않다.
정치가 존재하는 이유는 무너지는 힘의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지금 국가권력은 균형을 잡아주기보다는 승자의 손을 더욱 높이 들어주고 있다. 금투세를 주제로 공개 토론 하자는 여당 대표의 당당한 모습을 보라. 물론 그 뒤에는 금투세를 반대하는 다수의 우리가 있다. 성찰적 시민이 필요한 이유다.
저출산, 지역소멸, 기후위기 등 힘의 불균형은 우리를 무너뜨리고 있다. 이 녹아내리는 힘의 균형을 되잡고 시대적 과제들을 풀어낼 정치세력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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