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거없고 어이없는 전기차 마녀사냥
충전율 100% 애초에 불가능
전문가 "사실상 공무원 태만"
인천 청라 아파트 단지 전기차 화재사고 이후 서울시 등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90% 이상 충전된 전기차의 지하주차장 이용 금지'를 잇따라 추진하는 것을 두고 자동차·배터리업계는 물론 전문가들도 "갈등만 부추기는 미봉책"이라며 비판하고 있다.
대부분의 전기차는 이미 100% 충전이 불가능하도록 설계가 돼 있는데, 지자체들이 '과충전'을 화재 원인으로 단정하고 차주들 간 갈등만 부추기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러다 자칫 반도체에 이은 차세대 수출 주력으로 떠오르고 있는 'K-전기차·배터리'의 위상까지 실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18일 배터리업계에 따르면 서울시와 포항시, 충남도 등 주요 지자체들은 잇따라 일명 전기차 완충 금지 조치를 추진하고 있다. '공동주택 관리규약 준칙'을 개정해 아파트 등 지하주차장에 90% 이상 충전한 전기차의 출입을 금지하는 게 골자다.
◇모든 전기차 충전율 이미 최대 97%로 제한·과충전 방지 기술 탑재
전문가들은 이 같은 대책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전기차 제조사들은 배터리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차량에 3~5%의 충전 안전마진을 설정해 둔다. 계기판에 '충전율 100%'라고 표시되도 실제로는 95~97%만 충전되는 것이다.
또 전기차의 이상신호를 감지하는 BMS(배터리 매니지먼트 시스템)에는 과충전을 원천 차단하는 기술이 내재돼 있다. 윤원섭 성균관대 에너지과학과 교수는 "충전을 100% 이상으로 하면 위험할 수 있지만, 과충전은 몇 가지 방법으로 이미 차단돼 있다"며 "(배터리)셀을 만드는 회사도 독자적인 기술로 과충전을 막는 기술을 갖고 있고, 혹시 불량이 나더라도 자동차 회사에서도 이미 제어 시스템이 있다"고 말했다.과충전 차단 기술은 BMS의 주요 역할 중 하나로, 배터리가 특정 전압에 도달하면 충전을 자동으로 중단하거나 속도를 줄여 과충전을 방지한다. 전기차의 과충전은 기술적으로 해결된 상태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전기차 매뉴얼과도 상반된다. 전기차 제조사들은 월 1회 이상 20%에서 100%까지 완충을 권고한다. 오히려 장기간 90% 이하로 충전해 사용할 경우 배터리 성능과 수명이 저하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예컨대, LFP(리튬인산철) 배터리를 쓰는 테슬라는 주 1회 완충을 권고한다. 월 1회 완충을 권고하는 이유는 셀 밸런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셀 밸런싱이란 배터리 팩 내 수많은 각 셀의 전압을 균일하게 맞춰 배터리 성능과 수명을 최적화하는 과정이다. LFP 배터리는 완충 상태에서만 셀 전압의 정확한 상태를 확인할 수 있어 주기적으로 완충해야 한다.
이 밖에도 국내 전기차와 배터리 업계는 이미 화재 방지 기술 개발에 공을 들이고 있다. 고온에서의 안전성을 강화한 배터리 소재 개발, 배터리 팩 내 화재 감지와 억제 시스템 등을 개발해 전기차에 적용하고 있다.
◇전문가들 "섣부른 규제"
결과적으로 서울시 등 지자체가 이 같은 현실을 몰각한 채 부랴부랴 섣부른 규제부터 발표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자체는 시민들의 불안감을 진정시키기 위해 신속하게 대처했다고 생각하겠지만,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지 않은 채 내연기관 차주와 전기차 차주 간 불화만 가중시켰다는 것이다.
인천 청라 전기차 화재사고가 발생한 지 3주 가까이 지났지만, 지금도 전기차 커뮤니티에서는 "사유재산 침해" "당장 전기차 충전 90% 제한 논의 중인 공무원들은 핸드폰과 태블릿, 노트북 충전부터 90% 이하로 차단하라" "89% 충전과 90% 차이는 뭐냐"는 등의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대해 이항구 자동차기술융합원 원장은 "소비자들이 불안해하니 이번 조치를 취했지만 미봉책에 불과한 데다 전동화를 위축시킬 뿐"이라며 "140년 역사를 가진 내연기관차는 지금도 불이 난다"고 말했다. 이어 "산업과 국가 경쟁력을 위해서 안전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 집행과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문학훈 오산대 미래전기자동차학과 교수 역시 "전기차는 모빌리티 커넥티비티 서비스를 통해 배터리 모니터링이 가능한데 충전을 90%로 제한하는 것은 사실상 공부하지 않은 공무원들의 근무 태만"이라며 "내연기관차와 전기차주의 갈등 조장보다는 지하주차장에 스프링클러나 소방시설을 강화하는 등의 프로세스 의무화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윤원섭 교수도 "법제화하거나 규정화 할 때는 더 시간을 두고 전문가들이 모여 심도 있게 토의를 하고 검증을 한 다음에 대책을 세우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지하주차장 들어가면 안 된다는 것은 마녀 사냥의 느낌이 나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박한나기자 park2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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