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금융사 빼면 맞벌이 지원 외면…육아휴직 아빠들 '눈치'

성승훈 기자(hun1103@mk.co.kr), 김희수 기자(heat@mk.co.kr) 2024. 8. 18.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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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G경영 기업마다 천차만별
삼성전기·롯데정밀·신한카드
임신·출산·육아 단계별 지원
초등 돌봄 휴직 1년 더 주기도
남성 육아휴직 의무화 기업
전체 300곳 중 15개사 불과
日 이토추, 유연근무 도입 후
10년간 출산율 3.3배 높아져

◆ 기업 인구대응 평가 ◆

매일경제와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의 EPG(환경·인구·투명경영) 경영 평가에 따르면 조사 대상인 자산 규모 1조원 이상 국내 기업 300곳 가운데 인구 위기 대응에서 합격점인 80점 이상을 받은 기업은 삼성전기·롯데정밀화학·신한카드·KB국민카드·KT&G 5곳에 불과했다. 다양한 출산·육아 지원 제도를 마련해 둔 우수 기업들도 실제 운영에 있어 부족한 부분이 많았던 셈이다. 남성 육아휴직 의무화를 도입한 기업은 극소수였고, 배우자 출산휴가도 법적 기준을 충족하는 데 그쳤다. 전반적으로 여성에게만 출산·육아 책임을 떠넘기고 있는 현실이 여전하다는 지적이다.

18일 한미연에 따르면 세부 17개 지표를 기준으로 기업들을 평가한 결과 삼성전기가 85.3점으로 1위를 차지했으며, 롯데정밀화학(83.8점)과 신한카드·KB국민카드·KT&G(80.9점)가 80점을 넘겼다. 업종별로는 반도체·금융·화학업 등이 높은 점수를 받았으나 건설·제조업 등은 하위권에 머물렀다. 5개 기업을 포함한 상위 50위권 기업들은 평균 71.5점을 받았다.

1위에 오른 삼성전기는 생애주기에 맞춰 '준비→임신→출산→육아→복직' 단계별로 지원 정책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호평받았다. 실제로 삼성전기 직원 A씨는 난임으로 오랫동안 고생했으나 회사에서 의료비와 난임휴가·휴직을 지원해준 덕분에 임신에 성공했다. 임신 기간 중에는 근로단축제를 활용했으며 태아검진 휴가도 따로 받았다. 아이를 낳고선 배우자와 함께 출산휴가를 보내며 양육에 집중할 수 있었다.

2위에 오른 롯데정밀화학은 여성 임직원에게 법정 육아휴직(1년) 외에도 최장 1년간 추가적으로 휴직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남성 임직원에 대해 육아휴직 의무화를 시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3위에 오른 신한카드는 임신 초기·후기 직원을 대상으로 하루에 근로시간 2시간을 줄여주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출산 전후에는 영업 일수 기준으로 휴가 110일을 제공한다. 배우자도 최장 10일까지 출산휴가를 쓸 수 있다.

삼성전자는 79.4점을 받으며 6위에 올랐다. 삼성전자는 법률 제·개정 이전부터 육아·난임·자녀돌봄 휴직 제도와 근로시간 단축제를 운영해온 기업이다. 전국 8개 사업장에서 직장 어린이집 12곳도 운영하고 있다.

한미연은 "반도체업은 출산·육아 지원책을 마련해둔 국내 대표 기업들로 구성돼 있으며 금융업은 높은 정규직 비율과 장기근속 등으로 일·가정 양립이 가능했다"고 분석했다. 다만 건설업은 비정규직·계약직 고용 형태가 많고 남성 임직원에 대한 출산·양육제도가 미비했다며 여러 근무 형태를 고려한 제도를 도입하고 여성 고용정책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유혜정 한미연 연구위원은 "특히 임산부 근로보호제와 직장 어린이집 운영 여부에 따라 점수 차이가 두드러졌다"며 "일·가정 양립을 위해서는 기업 공시 항목과 세부 지표에 인구위기 대응 실적을 포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는 남성 육아휴직을 의무화한 기업은 15곳(5%)에 불과했다. 남성 배우자 출산휴가제를 운영하는 기업은 211곳(63.3%)에 달했으나 법정 의무 기간보다 많은 휴가를 보장하는 기업은 22곳(7.33%)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복직자 지원 프로그램도 27개 기업(9%)만 운영했다.

이에 한미연은 △남성 육아휴직 활성화 △복직자 경력 관리 지원에 주목했다. 유 연구위원은 "양육자의 역할을 여성에게 국한하는 한계에서 벗어나 남녀가 함께하는 근로문화를 조성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복직자를 업무에서 배제하는 불이익을 방지할 수 있는 제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미연은 해외 사례를 적극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스웨덴은 세계 최초로 아빠 육아휴직을 도입한 나라다. 남성 육아휴직 기간도 60일(2002년)에서 90일(2016년)로 늘렸다. 스웨덴에서 출산율은 2010년 1.98명까지 올라갔으며 최근까지 1.4~1.5명대를 유지 중이다.

유연근무제 확대에도 힘을 실었다. 일본 이토추상사처럼 근로시간을 유연하게 바꾸는 것만으로도 출산율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토추상사는 오후 8시 이후 야근을 폐지하고 오전 5~8시 근무자에게 추가 근로수당을 지급하는 '아침형 유연근무제'를 도입했다. 일·가정 양립 정책을 새로 설계한 이토추상사는 10년 만에 출산율을 3.3배, 생산성을 5배나 높였다.

대기업뿐 아니라 중견·중소기업도 인구 위기 대응에 동참해야 한다는 주문이 나왔다. 이인실 한미연 원장은 "중소벤처기업부가 기술·경영 혁신보다는 인구 위기 대응에 초점을 맞추고 가족친화인증기업 제도를 효율화하자"고 제안했다.

EPG 경영

EPG(환경·인구·투명경영) 경영은 ESG 경영에서 S(책임·Social)를 P(인구·Population)로 바꾼 용어다. 지난 3월 매일경제와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이 제34차 국민보고대회에서 EPG 경영을 제안했다.

[성승훈 기자 / 김희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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